2024. 7. 28.
어제는 딱 자정까지 일을 하고, 제법 긴 수면을 한 하루였다. 심지어 잠에서 깼을 때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자는 것도 아닌 정자세로 잠에서 깼다. 이것이 내게 소중한 이유는 과거 양악 수술을 하기 전엔 잠을 왼쪽 방향으로 밖에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이유에서 정면을 보고 잠에 들면 가위에 눌리거나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면서 잠에서 깼던 게 일상이었다.
어제는 운동도 했기에 오늘은 몸 이곳저곳에 약한 근육통이 느껴졌다. 몸이 정상화되는 좋은 고통이었다. 하루종일 일하는 것도 필요했지만 멀리 가기 위해선 강한 신체를 가져야 한다. 단순한 원칙을 나는 일이라는 핑계로 후순위로 미루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내 삶에는 좋은 소식이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레알만 큼씩. 쌓여가고 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변화와 경험과 성장이 아주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랜만에 옛 사진들을 추억해 보았다. 회사를 운영하며 함께 땀 흘리며 달려왔던 순간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사진을 보면서 떠올랐다.
아마도 직원들은 나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했을지 절대 모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회사는 아기와 같았다. 연약하고 보잘것없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고, 아니 담대하게 성장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2022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나는 회사의 목표를 사무실마다 붙여두었다. 직원을 얼마나 뽑고, 어떻게 성장할지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그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 살았던 것 같다. 그 숫자가 뭐가 그렇게 대단했다고 그걸 지키려고 애썼던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인 내가 어떻게 그런 담대한 꿈을 꾸며 살아남아 보겠다고 외쳤던 것일까. 이제 와서 보면 어리숙하고 용기만 있던 대표였기에 가능했었을지도 모른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스스로 내가 고생하고 열심히 살아온 걸 떠들곤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이 맞았다. 나를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덕분에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믿어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여전히 프리랜서 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회사에 들어가 하루하루 열심히 코드를 쓰는 한 명의 개발자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믿음을 받을 때는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끼곤 했다. 모든 인연은 헤어진 후에 아쉬움이 남는 것처럼 믿음 역시 당연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믿음을 받았기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던 것이고, 믿음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의 삶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휩쓸린 운명의 피해자처럼 스스로에 대해 연민에 빠지고 싶은 마음도 들곤 한다. 힘든 날에는 푸념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누군가에게 감정을 토해내고 싶은 마음도 많았다. 세상에게 온갖 곳을 처맞고 다니면서도 다음 도전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믿음 때문이었다.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나는 그 믿음이 내 삶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했다.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잠 못 자게 한다. 조금이라도,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서 희망의 불씨를 밝히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주변의 만류는 들을 여유가 없었다. 신뢰를 잃은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 젊은 날에 더 큰 성공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가 가득했다는 것에 종종 감사하곤 한다. 실패를 하면서 나는 내가 가진 못난 모습들과 내가 할 수 없는 부족한 것들을 마주해야 했다.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도리어 그것을 강점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못난 모습들과 어쩌면 조금 나은 모습들까지도 그저 세상에 내려놓고, 대리석을 깎는 석공처럼 그렇게 다듬어 간다.
5년 후를 생각해보곤 한다. 5년 후에 나는 꿈꿨던 모든 것들을 쥐었을까. 아니면 그때까지도 채우지 못한 고난의 잔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할까. 5년 후 나의 모습은 오랫동안 꿈꿨던 그 모습으로 빛나고 있을까. 아니면 닮아가지 못한 현실에 아파하며 변명을 하고 있을까.
내 손에 쥔 작은 희망의 불씨는 타오르고 있다. 더 힘든 길이 더 나은 길이라면 그 길로 가면 된다. 아직까지 견뎌온 것보다 더 힘든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견뎌본다. 과거의 나로서는 견디지 못할 무게였지만, 어쩌면 이제 나는 더 큰 무게를 견뎌야만 할 때가 됐을지 모른다.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삶의 무게를 지고 있지만 그 안에 희망을 함께 쥔다. 그 힘으로 믿음에 보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