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창

2025. 5. 27.

by 한상훈

노예를 가혹하게 부리는 주인의 공포는 무엇일까? 아마도 노예가 어느 날 배신해 자신을 죽이는 상황일 것이다. 지금이야 노예 시스템도 없고, 노예에 준하는 일을 시키는 사람들도 안전한 집에서 살지만 인류사 수만 년의 과거를 돌이켜본다면 주인과 노예는 분리된 공간 정도에서 머물 뿐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노예가 어느 날이라도, 한 밤중이라도 주인을 공격하기로 마음먹고, 너 죽고 나 죽자 전략을 쓴다면 주인에게는 가장 끔찍한 일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예는 그러지 못했다. 왜 그럴까. 왜 많은 노예는 창을 들어 주인을 찌르고 자유를 얻지 못하고, 복종 속에서 살기를 택했는가.


완전한 노예의 삶을 겪어본 적이 없어 그들의 심정과 상황을 이해할 자격이 나에겐 전혀 없지만, 상상을 발휘해 보자면 노예의 창을 들었던 이들은 역사를 지나오며 점점 수가 줄어들어갔을 것이다. 창을 들고 자유를 위해 싸운 이들은 두 가지 결론에 이른다. 주인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 상황. 또는 주인을 죽이고 자신은 자유를 얻어 자유인의 삶이 시작된 사람. 그렇게 두 가지 결말로 향하기에 노예라는 신분은 적어도 소멸되고 죽음이냐 자유인이냐를 선택하는 것이다. 창을 든다는 것의 의미는.


현대는 다른가?


나는 노예의 창을 든 노예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상대해야 하는 적은 누구인가. 누가 내 삶을 굴종하게 만드는가. 현시대의 적은 눈에 보여서 적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여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세력이다. 현시대의 주인들은 노예를 보이는 끈으로 묶어둔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으로 묶어 그들을 통제한다. 사람마다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세계에는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주인과 그 악독한 주인으로 인해 주변 모든 이들까지도 고갈되어 가는 삶을 볼 수밖에 없었다.


노예의 자리에서 창을 든 자는 결정을 해야 한다. 창으로 주인을 찌르고, 주인을 호위하는 이들의 손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거나, 아니면 주인을 호위하는 모든 불한당 패거리를 무찌를 생각을 하던지. 아니면 날 선 창을 내려놓고 다시 노예로 숨죽여 살아갈 생각을 하던지.


창을 든 자는 창으로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결말 중 하나를 향해 나아간다. 죽음 또는 자유.


노예로 남기로 선택한 이들이 얻는 것은 생명과 굴종의 삶이며, 창을 든 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해방이다. 죽음도 자유인의 삶도 모두 해방의 순간이다.


노예의 신분으로 창을 든 자에겐 기회가 많지 않다. 자신에게 주어진 찰나와 같은 기회를 이용해 자유를 위해 주인의 심장을 노리지 않고는 자유를 얻을 수 없다. 그렇기에 창 끝이 적을 향해 올곧이 나아가야 한다. 노예의 창을 든 사람들은 해방의 결말을 향해 가는 이들이다. 이들의 창이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면 그것만큼 창피한 결말도 없겠지만, 설령 창 끝이 빗나갈지라도 우리는 해방을 얻는다. 자유의 삶은 아니지만 자유로운 마지막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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