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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Mar 06. 2024

학교 폭력

2024. 3. 6.

학창 시절 일진이 없는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경험에 비추어보면 언제나 학교에 10% 정도는 학교에서 친구들을 괴롭히고, 그보다 많은 비율의 학생들은 그러한 10%에 동조했다. 그뿐인가 문제가 생기면 침묵하고, 자신이 타깃이 되지 않게 숨기 바쁜 이들이 있었다. 


사회라고 다를까? 그렇게 악했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상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게 불가능하고, 하루라도 친구를 괴롭히지 않고는 하루를 보낼 수 없는 인간들은 이 사회에 어디로 갔을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악인의 어린 시절을 살았던 이들은 악인답게 나머지 인생도 살아간다. 참으로 일관성 있는 비루한 인생. 타인을 괴롭히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괴롭히거나, 속이거나, 비웃거나. 


자신보다 약한 게 많으면 많을수록 끊임없이 끌어내리려는 인간들이 얼마나 세상에 많은지. 그들이 천연덕스럽게 문제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 것처럼 사회에 스며들어 살아간다는 사실은 소름 끼치기도 한다. 


그들이 사과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들의 범죄가 자신의 밥그릇을 위험하게 할 때. 그때가 돼서야 그들은 자신의 죄를 사과하는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상처를 잊기 위해 오랜 시간 애써온 피해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사과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없는, 미안한 사죄의 마음도 없는, 사과. 그것이 사과인가. 아니면 또 다른 역겨운 죄악인가.


세상 사람들 중에는 본인이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세상을 살면서 체급을 키워 그만 괴롭힘을 당해야지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숨기에 바쁜 이들이 많다. 또는 그때나 지금이나 악한 일들에 대해 침묵하면서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이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금언




자신이 폭력을 당했을 때도, 친구가 폭력을 당했을 때도 침묵했던 것처럼 사회의 범죄에 침묵해라. 그러면 내가 또다시 폭력 아래 놓였을 때 누가 구해줄까. 학창 시절 때부터 단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한 한심한 인간으로 살아간다. 


악인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기에,

악인을 대할 나의 결정이 중요하다.


악인과 손을 잡고 같이 낄낄 거리던 무리에 들어갈 것인가

담대하게 진실의 목소리를 낼 것인가




고통 속에서 핀 찬란한 영혼은 아름답다.

사람의 인생은 그가 살아가기로 결정한 방식대로 살게 된다.


어둠으로 살거나,

침묵하며 살거나, 

비루하게 살거나,

빛나는 길을 택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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