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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아이 환 Jan 18. 2022

나는 대체 왜 읽는가?

일상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질문 하나

지난밤 김영하 작가께서 진행하시는 인별 라방에서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을 하였다. 잠에 들지 못하고 인별 세상을 기웃하던 난 얼결에 방송에 입장을 해버렸다. 소설을 읽지 못한 관계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방송 듣듯 보고 있었는데, 작가께서 참여자들에게 던진 질문 중에 가슴을 스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힘들었을 때 무슨 소설을 읽으셨어요?"


이 질문 뒤에 나눈 이야기들은 한동안 귀에 들리지 않았다. 생각으로 빠져들어 헤어 나오기 어려울 만큼, 이 질문은 일상을 관통하는 중요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휴직 중인 현재, 틈만 있으면 책을 만지작거리는 나. SNS에 올릴 줄 아는 사진이라곤, 그날 읽은 책과 차 한 잔의 사진뿐인 나. 책을 그리고 소설을 꽤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사람인 편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낼 자신이 실은 없었다.


'힘들었을 때가 언제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난 힘들지 않게 살아온 사람인가? 아냐, 힘든 순간은 늘상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읽었다고 떠오르는 소설은 마땅히 없었다. 난 힘들 때 소설을 읽는 사람이 아닌가?'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내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고 노력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 이유가, 아이들이 살면서 힘들고 지칠 때를 예비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함이 한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역할을 하는 책의 상당수는 이야기이고 소설일 텐데, 나조차 그런 사람이 아녔으면서 아이들에게 난 강요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니, 문학이라는 걸 친구 삼아 지내야 하는 일을 20년 가까이하고 있지만, 문학은 늘 어려웠고, 소설은 더 어려웠다. 무엇을 열심히 읽었나?, 기억나는 순간들을 찬찬 돌이켜 보았다.


중학생 때 읽었던 <나는 조선의 국모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잃어버린 너>와 같은 소설들이 떠오른다. 고등학생 땐 겨울 방학에 이문열 <삼국지>를 붙들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문학 수업이 있었으므로, 한국문학사에 등장하는 소설들을 조금씩 알아가던 때였을 것이다. 대학 땐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한강> 같은 대하소설들을 붙들고 있거나, 임고 준비를 위해 연대별로 계획을 세워 한국 단편 소설들을 읽어 나갔다. 한창 연애를 할 땐, 칙릿이라 불리는 연애 소설도 많이 읽었지 싶다. 그리고 지난 20년가량엔 수업 준비를 위해 꼼꼼하게 읽어나갔던 교과서나 수능 문제지 속 소설들이 있을 테고, 몇 년 전부터 읽는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폴 오스터나 레이먼드 카버 같은 작가들이 쓴 영미권 소설들도 있다.


책을 읽었던 순간은 생각이 나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힘이 들 때 소설을 읽었던 생각은 나지 않는다. 내게 책이란? 특히 소설이란?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니까, 카페인이 필요할 때 커피를 찾듯이 읽고 있었나?

나름 읽는 일을 중요시 여기고 살았는데, 나의 읽기 활동의 정체성에 대해 이제야 생각해 보고 있다. 마흔 무렵, 이제는 무얼 하든 질문 없이 넘어설 수 없는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읽는가?  


*덧 : 이 글을 쓴 지는 몇 달 되었어요. 질문한 지 몇 달 되었는데, 아직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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