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갑을고시원체류기>를 읽고 떠오른 기억
대학 졸업 직전, 딱 한 달 학교 앞 고시원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방은 소설 속 갑을 고시원에 비해서 컸나 보다. 적어도 다리를 구부리고 잘 필요가 없었고(내 키가 작아서 그럴지도.),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나, 작은 텔레비전이 있었다. 그 고시원에도 소설에서처럼 밥통엔 밥이 늘 있었고, 내겐 엄마가 챙겨주신 멸치와 깻잎의 든든함까지 있어서, 갑을 고시원에 비하면 호화로운 생활이었다.
임용고사가 고시라면 고시일 지도.
그 공부를 해보겠다고 창문 없는 그 밀실에 들어갔지만, 옆방에서 들려오는 알듯 말듯한 소리에 속 끓이며 예민함을 키우다가, 속이 미친 듯이 답답해지는 병을 얻어서는 한 달만에 그곳을 뛰쳐나왔다.
그전에 몇 가지가 더 있다. 그곳에서 <해리포터>를 그때까지 나온 건 모조리 읽었으며, 드라마 <인어아가씨>를 정주행 하며 보았다. 아, 모 대학 편입 시험과 두 군데쯤의 대학원 입학 시험도 보았다. 이건 내게 플랜 B였으며, 플랜 A인 고시 공부를 위해 아직 육교가 철거되지 않았던 노량진을 기웃거리고, 눈을 뜨면 밥을 먹고 학교도서관에도 가 있기도 했다. 그때가 4학년 2학기였으니까, 수업도 일주일에 한 번 있었다. (있었지 싶다. 수업에 관한 기억이 그렇듯 가물가물하다.) 아, 맞다. 차라리 즉시 취업을 해보겠다고 몇 군데쯤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종이 깡통이다 싶은 이력서를 써서 내기도 했다. 그건 플랜 C였나 보다.
사회로 나가기 전, 이런저런 시도를 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돌이켜 보면 인생 최고로 속 시끄러웠다.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와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던 때도 각자 살 길을 도모하느라 서로에게 힘이 돼주지 못했던 이 즈음이었지 싶다.
정리하면 난,
동기들에게 학과 공부보다는 딴 세상 기웃거리기에 열 올리던 아이로 기억될 만큼, 그 밀실에서도 하던 대로 딴 세상 열기의 방점을 한 개 정도는 찍었다. 그리곤 옆 방 사람 사는 소리-알 수 없는 웅얼거림,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매캐한 냄새 따위에 반응하며 슬슬 미쳐가다가 집으로 뛰쳐 돌아갔던 것이다.
신경증이나 조급증, 강박증 정도의 병명을 붙여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억을, 소설 한 편을 읽으며 떠올렸다. 지금은 산너머 저쪽 이야기가 된 연애에 대한 희미한 추억과 함께.
대학생활은 - 어느 교육학 책에 나오는 말이었던가- 내내 결정 유예시기였는데, 더 이상 유예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연기하다가, 종을 친,
그때가 월드컵이 끝난 2002년 겨울이었다.
그리고 난 지금 어쩌다 플랜 A에 의해 살고 있다. 20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