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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아이 환 Jan 25. 2022

대학 4학년 2학기의 재구성

박민규, <갑을고시원체류기>를 읽고 떠오른 기억

대학 졸업 직전,    학교  고시원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방은 소설  갑을 고시원에 비해서 컸나 보다. 적어도 다리를 구부리고  필요가 없었고( 키가 작아서 그럴지도.),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나, 작은 텔레비전이 있었다.  고시원에도 소설에서처럼 밥통엔 밥이  있었고, 내겐 엄마가 챙겨주신 멸치와 깻잎의 든든함까지 있어서, 갑을 고시원에 비하면 호화로운 생활이었다.


임용고사가 고시라면 고시일 지도.
 공부를 해보겠다고 창문 없는  밀실에 들어갔지만, 옆방에서 들려오는 알듯 말듯한 소리에  끓이며 예민함을 키우다가, 속이 미친 듯이 답답해지는 병을 얻어서는  달만에 그곳을 뛰쳐나왔다.

그전에  가지가  있다. 그곳에서 <해리포터> 그때까지 나온  모조리 읽었으며, 드라마 <인어아가씨> 정주행 하며 보았다. ,  대학 편입 시험과  군데쯤의 대학원 입학 시험도 보았다. 이건 내게 플랜 B였으며, 플랜 A 고시 공부를 위해 아직 육교가 철거되지 않았던 노량진을 기웃거리고, 눈을 뜨면 밥을 먹고 학교도서관에도  있기도 했다. 그때가 4학년 2학기였으니까, 수업도 일주일에   있었다. (있었지 싶다. 수업에 관한 기억이 그렇듯 가물가물하다.) , 맞다. 차라리 즉시 취업을 해보겠다고  군데쯤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종이 깡통이다 싶은 이력서를 써서 내기도 했다. 그건 플랜 C였나 보다.


사회로 나가기 전, 이런저런 시도를 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돌이켜 보면 인생 최고로 속 시끄러웠다.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와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던 때도 각자 살 길을 도모하느라 서로에게 힘이 돼주지 못했던 이 즈음이었지 싶다.


정리하면 난,
동기들에게 학과 공부보다는 딴 세상 기웃거리기에 열 올리던 아이로 기억될 만큼, 그 밀실에서도 하던 대로 딴 세상 열기의 방점을 한 개 정도는 찍었다. 그리곤 옆 방 사람 사는 소리-알 수 없는 웅얼거림, 그리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매캐한 냄새 따위에 반응하며 슬슬 미쳐가다가 집으로 뛰쳐 돌아갔던 것이다.

신경증이나 조급증, 강박증 정도의 병명을 붙여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억을, 소설 한 편을 읽으며 떠올렸다. 지금은 산너머 저쪽 이야기가 된 연애에 대한 희미한 추억과 함께.

대학생활은 - 어느 교육학 책에 나오는 말이었던가-  내내 결정 유예시기였는데, 더 이상 유예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연기하다가, 종을 친,

그때가 월드컵이 끝난 2002년 겨울이었다.


그리고 난 지금 어쩌다 플랜 A에 의해 살고 있다. 20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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