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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아이 환 Jan 10. 2024

1월 9일의 책

김동식, <인생박물관>

혼자 책을 읽는 것이 녹록하지 않아 새해 미션으로 '책따세 추천도서 읽기' 활동에 참여하기로 했다. 책따세는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이라는 모임의 약칭이고, 난 역량이 되는 한에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본격적인 독서 모임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도 늘 가지고 있지만, 우선하는 일이 많아 아직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다. 마침 2023년 겨울에 추천된 도서 중 10권을 읽고 인증하는 활동이 추진되었고, 이를 통해 내겐 신나게 '읽을 기회'가 열렸다. 책따세 추천 도서는 청소년 대상 추천 도서이다.

우선 읽고 싶은 10권의 책목록을 작성했다. 그중 올해 우리 학교로 모셔서 작가와의 만남을 꾸리기도 했던 김동식 작가님의 신작 <인생박물관>을 첫 책으로 읽어 보았다.


김동식 작가의 소설은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은 작품으로 교사들 사이에서 많이 추천되는 책이다. 우선 일반적인 단편에 비해서도 길이가 짧다는 게 주된 추천 이유로 보인다. 작품 길이가 짧으면 함께 읽거나, 수업하기에도 좋고, 읽기를 싫어하는 요즘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데에 부담이 덜하다. 문장의 기교나 장면의 구성보다는, 스토리의 구조상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많아서 주제에 집중하여 토론 수업을 하기에 좋은 작품이 많다.


작가의 기존 작품집이 인간과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면, <인생박물관>은 인간의 선한 면과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글들이었다. 우화적인 문체가 주제와 맞물리다 보니, 교훈적인 느낌까지 있다. 책을 추천하는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작가의 이전 소설집들을 통해 작가의 창의적 역량을 모델로 삼도록 조언하고 싶어 진다면, 이번 책은 소위 말하는 교육적인 느낌까지 갖췄다. 하지만 그게 작가의 의도는 아닐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은 내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탐구한 글들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약 300쪽가량의 책에 매우 짧은 길이의 25편의 소설이 실려 있고, 몇몇 작품은 기존 작품집에 실려 있던 작품이었다. 이런 구성이 기존 작품들은 어둡다고만 단정 짓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고, 예전 작품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많은 단편이 있어서, 인상적인 몇몇 글에 대한 기록을 남겨 본다.

맨 처음 소설인 '작은 눈사람'은 신에 대한,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간, 특히 신이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기본 아이디어를 담은 작품으로 보인다. 신은 인간을 직접 만들었으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빌미를 잡아 인간을 멸종시키기 위해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곤 한다. 인간은 선한 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신이 기획한 이 시험을 통과해 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여태 지구에 그렇게 폐를 끼치고도 멸종하지 않았나 보다. 선한 이들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들이 바로 세상을 돌보는 신이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명쾌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신은 인간을 믿지 않아서, 시험하고 있는 거였다. 선한 이들에게 벌어지는 그런 일들은 로또처럼 세상에 뿌려진 신의 시험이었을지 모른다.


'벌금 만 원'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름의 힘든 점을 가지고 삶을 꾸리고 있으며, 힘든 가운데에서도 선함을 발휘하며 살고 있다는 인간종의 매력을 엿볼 수 있다. '자살하러 가는 길에'라는 작품을 진짜 자살하러 가려는 사람이 읽는다면 어떨까. 잠시라도 죽을 계획을 유보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내향적인 홍이'라는 작품이었다. 착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슬픈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향형 인간의 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교내 합창제를 진행하는데, 노래 부르기가 세상에서 무엇보다 싫은 한 학생이 내게 일종의 탄원서를 써서 가지고 왔다. 수업 시간에 또랑 또랑한 눈망울로 수업에 참여하지만 매우 조용한 편인 그 학생은 목소리를 내어 노래 부르기를 죽도록 싫어하는 학생도 있다는 것과 노래 부르기를 왜 공식적인 행사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생각을 국어 수업 시간에 배운 대로 이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자료의 출처까지 밝혀 써 왔다. 이 매력적인 학생을 어찌하나. "노래 부르기 싫어요."라고 크게 한 마디하며 생각을 쉽게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이토록 애를 쓰며 작성한 편지지에 쓴 탄원서 한 통을 받아 들고, 난 그를 칭찬할 수도 혼을 낼 수도 없는 마음이 되어 버렸다. 그 학생은 결국 당위가 되어 버린 합창제에서 분위기에 힘입어 학급 친구들과 어울려 미소까지 띠며 노래를 부르게 되었지만, 이 일을 통해 난 교실에서 내향적인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와 '표현'의 양면을 늘 고려해야 하는 과목을 맡아 수업하다 보니, 내향적인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을 부담 없이 드러내도록 수업을 설계할까,는 국어 교사로서의 의식적 업무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Zoom으로 수업을 해야 했던 코로나 시대에는 거의 대부분의 수업 구상에서 했던 고민이었다. 내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이 소설의 주인공 '홍이'는 힘듦을 속으로 삭이며 표현을 지연하는 아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교실을 소란스럽게 하는 학생에 비해 우울증을 앓거나 자해를 자꾸 시도하거나 하는 학생의 비율이 너무나 많아졌다고 느낀다. 홍이도 그랬다. 이 이야기를 통해 생각한다. 내밀하게 생각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겠다. 이런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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