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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아이 환 Jan 30. 2024

2023년 11월 22일의 책

앤 그리핀,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11월의 어느 날, 아침과 밤은 추웠고, 낮엔 영상의 기온이었다. 추워졌다고들 호들갑이었지만, 아직 겨울의 초입이었다. 일상의 업무로 바쁜 시절이었고, 가치 있는 일을 잊어버리고 놓치기엔 딱일지도 모르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아일랜드의 여성 작가 '앤 그리핀'이 쓴, 서술자가 남성인 독특한 소설 한 편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 모리스 씨의 다섯 번의 건배로 구성된다. 모리스 씨는 이 건배들 앞에 전 생애를 통해 의미 있었던 다섯 명의 인물과 연관된 다섯 가지의 기억을 회상한다. 모리스 씨의 모든 회고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청자는 아들 케빈이다.


모리스 씨가 아들에게 나직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 또한 자못 심각해져서 모리스 씨처럼 흑맥주를 한 잔 따르고 그 건배들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들을 모리스 씨의 사연에 이입하며 읽어나가는 시간이었다.

젊은 나이에 사별하고 여생을 상실의 감정과 자식들을 키워내야 한다는 의지로 살아가셨던 시어머니. 그분을 긴 시간 지켜본 남편을 위해 한 잔.

이른 바람에 삶을 다한 자식을 그리워하는, 주변의 몇몇 지인들을 위해 한 잔.

남동생을 병으로 잃고 자신 또한 병을 얻을 만큼 슬퍼했던, 친구를 위해 한 잔.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며 '부모의 죽음'을 미리 염려하며 눈물 흘리는 - 아직 부모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 없는, 다행스럽게도 덜 자란 어른인 - 나를 위해 한 잔. 그리고 나를 있게 한 친정의 가족들을 위해, 나의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한 잔이었다.


난 모리스 씨의 아들 케빈이 되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듣게 된 케빈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질문해 보았다. 아버지의 삶을 둘러싼 일들을 뒤늦게 알게 된 그는 아버지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까? 부모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아직 내게 남은 부모님과의 시간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을까? 있다면, 그 의무는 왜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어디에 소용이 있는 것일까? 아직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것은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 인간 고유의 일인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이전 세대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보다 진보된 삶을 도모하는 일, 그것은 인간만이 지니는 생의 순환 법칙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농사가 세상 일의 전부인 줄 알았던 아버지 달리, 유능한 기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워했고 지지해 주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해 케빈은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케빈의 마음을 떠올리면, 우리 소설 <눈길>이 떠올랐다. 아일랜드의 작가가 쓴 이 소설에서 우리의 정서를 느꼈던 것도 이청준 작가의 이 단편이 떠오른 영향도 클 것이다. <눈길>의 주인공인 '나'가 어머니에 대한 부채 의식은 없다고 믿고 살았던 것은 아버지도 형도 대신하여 가장으로서 살아야 했던 삶의 무게와 그로 인해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에 대한 몰이해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어머니께서 들려주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자는 척 엿들으며 눈물 흘리는 아들의 모습은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의 뒷 이야기도 상상하게 만든다.


케빈은 어머니와 사별한 아버지를 타국에 살면서도 여러 번 찾아볼 만큼 아버지를 살뜰히 챙겼지만, 모리스 씨의 다섯 번의 건배에 얽힌 이야기를 뒤늦게 들으며 분명 뜨거운 눈물을 한동안 흘렸을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고, 아버지의 삶에 대해 너무나 늦게 이해했다는 것 또한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의 뒷 이야기를 조금 짐작해 본 이후에야, 난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직 덜 자란 어른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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