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15분의 기적
오르골 캐럴은 15분간 울렸다. J가 정신을 되찾는 시간도 15분이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지난번 방문에서는 끝내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더니…. S는 우리가 보고 싶지도 않은가요?”
실망섞인 목소리였다.
P는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고개를 떨궜다.
“보고 싶겠지. 분명 우리랑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을 거야.”
“그렇겠죠?”
P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요. S가 평소 우리를 얼마나 생각하는데요. 실은 당신 백세 생일날, 토성의 달 중 제일 큰 타이탄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어요.”
말문이 터진 J가 한 번에 쭉 여러 개의 문장으로 말했다. P가 장단을 잘 맞추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타이탄으로?”
이미 눈앞이 흐려진 P는 겨우 중얼거렸다.
“아, 내 정신 좀 봐. 당신에겐 비밀이었는데. 당신 모른 척해줄 거죠?”
J는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들뜬 목소리였다.
“왜 아무 말이 없어요. 당신, 설마 질투 나요?”
눈을 흘기는 J의 목소리에 묘한 흥분이 묻어 있었다. 말투도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니, 내가 언제 질투했다고.”
P가 손사래를 쳤다.
“난 그 애 엄마잖아요. 원래 모자 사이는 특별한 법이에요.”
J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힘내라는 듯 P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S도 알고 있어요.”
“무얼 아는데?”
“당신은 그저 표현하는데 서투를 뿐, 속으로는 정이 깊다는 걸 알고 있다고요. 당신이 프로그래머 은퇴를 선언한 날. 그날 많이 취했잖아요, 기억나요?”
“내가 그랬었나?”
“그날 S가 당신을 이층으로 업고 올라가야 했어요. 내려와서 그러더군요.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당신이 살아온 삶이 대단하다고 말했어요.”
“S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야?”
P는 허허 웃으며 되물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나, 기억력 좋잖아요.”
J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랬다. 그녀는 영민했고 S는 그런 엄마를 쏙 빼닮았다.
“내 삶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녀석, 그런 말도 할 줄 아네.”
P는 들키지 않게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그날 밤 아들에게 무슨 말을 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P는 장식장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선반 위에 수십 개가 넘는 스노볼이 놓여 있었다. 저마다 추억을 담고 있었다. 로마 콜로세움, 자유 여신상, 화성 기지…. 그리고 바닷가 이층집.
그들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스노볼들.
그 앞에서 P의 머릿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다른 기억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바닷가 언덕 위, 이층 침실에서 눈을 뜨면 멀리 반짝이는 윤슬과 은결이 번갈아 보였다. 한때 P의 집에는 많은 친구들이 드나들었고, 오래된 종이책이 꽂혀 있는 책장과 식물을 키우는 화분들을 발견하고 놀라곤 했었다.
P가 마흔여덟이 되던 해, 띠동갑 S가 태어났다.
P의 엄지손가락을 꼭 잡아 쥐던 조그만 손.뒤뚱뒤뚱 혼자 걸음마를 떼던 거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수도 없이 함께 오르내려야 했던 나선형 계단.
아침 마다 함께 손잡고 산책을 하던 해변. 번쩍 들어 올려 빙빙 돌리면 하늘을 배경으로 자지러질 듯이 웃으며 내려다보던 S의 영특한 눈빛.
볼이 빨간 S의 얼굴이 눈앞에 선연했다.
P는 흐릿한 시야로 스노볼을 하나를 들었다. 작은 유리 구 속에 파란 줄이 달린 자전거가 멈춰 서 있었다. 눈송이 가루가 천천히 흩날리며, 그날의 해 질 녘 공기 냄새와 아이의 숨결이 다시 살아났다.
“아빠, 손 놓으면 안 돼!”
일곱 살 S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놓지 않을게. 아빠가 계속 잡고 있어.”
하지만 P는 이미 손을 놓고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아빠! 어딨어?”
뒤를 돌아보던 S가 그대로 돌 틈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에서 피가 스며 나왔지만, S는 아픔보다 배신감에 찬 목소리로 울었다.
“아빠, 손 놓지 말랬잖아! 거짓말했잖아!”
그 작은 손으로 P의 팔을 밀치듯 치며 엉엉 우는 모습에, P는 말없이 아이를 껴안는 수밖에 없었다.
P는 그렇게 배웠었다.
손을 놓아주는 것이 성장이라고,
아이를 믿는 거라고.
S는 어릴 적 유난히 겁이 많았다. 천둥 번개라도 치는 날이면 둘의 침대 속으로 뛰어들곤 했었다. P는 S를 단단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우는 S를 번쩍 들어 다시 자전거 안장에 앉혔다. 작고 여린 손으로 핸들을 꼭 잡은 S가 P를 보았다. 글썽이는 눈물 사이로 자신이 보였다.
그때, S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S는 해 질 녘이 되어서야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땀에 젖은 곱슬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S가 소리쳤다.
“아빠! 나 혼자 탈 수 있어!”
P는 번쩍 손을 들어 흔들었다.
놓은 줄 알았던 손이 아직도 뭔가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자전거 너머 해 지는 하늘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그 뒤로 자라면서 S는 활달해졌고 못하는 운동이 없었고 언어 배우기를 좋아했다. 새로운 단어를 배울 때면 여러 행성어로 바꾸어 말하곤 했었다.
P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지만 S가 사춘기가 지나면서부터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사는 건 늘 그랬다. 진심은 따로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나간 말이나 행동은 정작 그 반대일 때가 많았다. 마음과 다른 '나'가 불쑥 나타나 모든 걸 망쳐놓고는, 수습하느라 또 다른 시간을 다 써버렸다. 그래도 속 깊은 S는 다 알고 있었다. 고마운 아들이었다.
순간 P는 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토성 하늘에는 달이 백 개도 넘는대요. 우리에게 그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물론 당신은 벌써 보았겠지만, 그래도 우리 셋이 다함 께 우주여행을 가는 건 처음이잖아요. 당신도 기대되죠?”
J가 P의 가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물었다.
“허어, 그래요.”
P가 헛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J와 달려갔던 바다를 떠올렸다.
“타이탄에 가면 이것보다 짙은 푸른 바다가 있대요.”
J가 반지를 낀 왼손을 들어 올려 보이며 말했다.
“상상해 봐요.”
“뭘?”
“백 개가 넘는 달들이 뜨는 타이탄의 밤하늘이요. 하늘 가득 빼곡하겠죠? 그 달들이 바다에 비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바다 위 수천 개의 달이 뜨겠죠?”
J는 눈앞에 천 개의 달이 보이기라도 하 듯 황홀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P의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J는 모든 걸 잊고 있었다.
그 여행 끝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의 기쁨이자 자랑이던 아들 S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P는 입술을 깨물었다.
세월이 흐르면 고통도 닳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들을 군에 보내자고 한 건, P였다. 우주 개척이 한창이던 시절, 전쟁은 늘 젊은이들을 먼저 불러갔다. 두 해만 버티면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 준다는 말이 그때는 너무 그럴듯하게 들렸다.
S는 훈장을 받고 돌아왔다. 왜 받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P도 묻지 못했다.
“토성 개척단에서 파일럿을 구한대요.”
어느 날 불쑥 S가 말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 아까운 청춘을 허비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던 때였다. S가 대학에 가지 않고 우주선 파일럿이 되겠다고 해서 놀랐지만, 내심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우주군 경력도 인정해준다니.
“그래, 잘 생각했다. 넓고 광활한 우주에 네 미래가 있을 거야. 네 능력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다.”
P가 격려했었다.
그때만 해도 모든 우주선에 인간 우주비행사가 최소 2인은 반드시 탑승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인간이 존중받는 직업이었다.
S는 가끔 메일을 보내왔다.
오늘은 우주선에 고장이 나서 일곱 시간 동안 유영을 했어요.
텅 빈 우주는 고요하지만,
사실 그곳은 죽음과 광기가 가득해요.
파도와 바람 소리가 들리는 고향 집이 그리워요.
부부가 아들을 만나러 가던 도중에 소식을 들었다. 토성에 도착해 그들을 맞은 건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S였다. 헬멧 안쪽에는, 아직 성에가 남아 있었다. S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J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들의 죽음은 그녀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한동안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쏟아져 눈길조차 피했던 두 사람은 눈만 마주치면 서로를 할퀴기 시작했다.
“S는 영혼이 자유로운 아이였어요. 그런 애를 왜 군대에 보냈어요.”
두 사람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둘만 알던 추억도 서로만 아는 묵은 상처를 헤집는 무기로 변했다.
한 번은 J가 “당신 날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그 마음은 다 어디로 간 거야?”라고 물었지만 P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날, J가 고함을 지르자 P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날 싸움은, J의 통곡으로 끝났다. 그때부터 P는 입을 다물었다. J는 일에만 매달렸고, P는 S가 쓰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관계가 파탄 나기 직전, J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 처음에 P는 그것조차 J가 자신을 괴롭히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모든 걸 자신에게 떠넘기고, 도망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이대로 J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세상이 아득해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우리 아들은 효자예요. 그러니까 봐주자고요. 올해는 우리끼리 오붓하게 보내요.”
J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며 웃어 보이자 P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는 스노볼처럼 작고 투명한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던 아들의 죽음과 P의 모진 말들을 다 잊은 것은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당신,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누구에게 잘 보이려 이렇게 잔뜩 멋을 부렸죠?"
J가 얄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걸까?
P는 멍해졌다가 빙긋 웃었다.
“누군 누구겠소? 다 이 넥타이 덕에 내가 멋져 보이는 거지.”
P는 J의 기억을 되살리려 했다. J는 코끼리, 낙타, 얼룩말 같은 동물 문양이 가득한 넥타이를 선물하곤 했었다. P는 그중에서도 오늘 매고 온, 그녀가 첫 월급으로 선물한 노란색 실크 타이를 가장 아꼈다.
“또 어떤 여자가 선물했죠?”
J가 발끈하며 물었다.
그녀는 뜨거운 여자였다. 열정적인 만큼 질투도 강했었다. 매서워진 J의 눈초리에 P는 난감했다.
한편, 늙고 병든 자신을 아직도 멋지다고 봐주다니 그런 J가 귀여웠다.
“글쎄 누굴까? 어떤 귀여운 여인이었는데.”
P가 엉뚱한 대답을 내놓자 J의 표정은 금세 풀렸다.
“흠, 누군지는 몰라도 눈썰미가 있네요. 넥타이가 당신이랑 아주 잘 어울려요."
그녀가 곱은 손으로 넥타이를 고쳐 매 주었다. J의 손길에 P의 기억은 신혼 시절로 달려갔다.
밤새 바라보았던 밤바다의 하얀 파도, 하늘거리던 커튼에 비쳐 든 햇살, 공기 중에 떠돌던 커피 향.
그녀의 길쭉길쭉한 팔다리, 매끄럽고 부드러운 살결, 쾌활한 웃음소리.
P는 손을 뻗어 J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오늘 유난히 아름다운걸…….”
P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둘은 잠시 그윽한 눈길로 서로를 보았다.
내일, <마지막 크리스마스> 4화 완결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