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기억이 멈춘 방
유토피아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는 숲 속 요양원이었다. 개원 당시, 숲에 둘러싸인 호숫가에 자리했던 유토피아는 쾌적한 맞춤 서비스를 위해 제한된 인원 유지를 표방했었다. 방문객에도 예외가 없었기에 P는 한 달 전 예약해 두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인데도 방문객이 별로 없어 로비가 한산했다. 스산한 분위기에 놀란 P는 복도에서 한 무리의 가족을 만났을 때 약간 안도감까지 느꼈다. 길을 비켜주려고 잠깐 멈춰 누군가에게 눈인사하는 기회가 고맙게 여겨질 정도였다.
P는 복도 끝 방문 앞에 섰다.
111호실.
폭풍으로 흔들리는 차에서 멀미를 심하게 했던 P는 손으로 입을 막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몸속 깊은 곳에서 자라고 있는 암세포에서 고약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P는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어깨의 모래 먼지를 털어내고 옷매무새를 다시 만진 후 문을 열었다.
J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P는 그녀가 놀라지 않게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J의 옆에 섰다.
P가 J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자 동그란 어깨뼈가 한 손에 들어왔다.
“안녕!"
인사하는 P의 목소리가 떨렸다.
살짝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J는 묵묵부답이었다. 찰나 당황한 P가 J의 어깨에 올렸던 손을 가만히 떼어냈다. 그리고 반 발짝 뒤로 물러섰다.
J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P도 익숙한 침묵이었다. 그래도 반갑고 좋았다. P는 숨을 들이쉬면서 그녀의 곁에 섰다.
J의 은빛 단발머리는 숱을 유지한 채 단정했다. 부드럽고 두툼한 하늘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왼손 약지에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J가 특별한 날에만 꺼내어 끼는 반지였다.
그녀도 오늘을 기다렸다는 생각에 P는 혼자 빙그레 웃었다.
제법 알이 굵은 그 반지는 P가 해왕성에 파견 나갔다가 일 년 만에 다시 만날 때 선물했던 반지였다. 그 시절 그들에게 일 년이란 시간은 그리움으로 범벅된 애틋함, 그 자체였다.
해왕성에 다이아몬드가 흐르는 바다는 없었지만, 우주 공항 면세점 특산물 코너에는 다이아몬드로 만든 장신구가 가득했다.
P는 J의 반지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미묘하게 찰랑이며 반짝거리는 푸른빛은 J가 좋아하는 색이었다. P는 선뜻 몇 달 치 월급을 털어 반지를 샀다.
마음에 드냐고 묻자 J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었다.
“당연하지. 블루는 언제나 정답 이거든!”
J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J의 시선은 창밖에 고정되어 있었다. 커다란 이중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은 휘몰아치는 거친 모래바람뿐, 딱히 볼만한 것은 없었다.
P는 모래바람이 멈추었을 때의 창밖 풍경도 알고 있었다. 녹청색이 아름다웠던 호수는 말라붙어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고 울창했던 소나무 숲도 풍파를 버틴 몇 그루만 겨우 남아있을 터였다. 유토피아도 모진 풍파를 비껴갈 수는 없었다.
바람이 거칠어지는지 짙은 갈색 모래들이 창유리에 부딪히며 타타타 소리를 냈다. 벽에 설치된 벽난로 화면에서 나무 장작이 타들어 가는 효과음을 내고 있어 묘한 조화를 만들었다.
말을 건네기 조심스러워진 P는 J의 곁에 하염없이 서 있었다. P는 오는 길 내내 J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었다..
그가 그녀보다 아프다는 걸,
내일이면 파라다이스로 갈 거란 걸.
다시는 찾아올 수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면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정부는 수입이 없는 독거노인들에게 ‘디지털 시티 파라다이스’로의 이주를 강력히 권고했다. 평균 수명 백이십 세가 넘으면 연금과 의료지원 같은 복지가 중단되는 법안도 통과됐다. 권고라는 말이 무색한, 사실상의 강제 이주였다.
대신 올해 안에 파라다이스로 마인드 업로딩을 신청하는 노인들에게는 모든 비용을 면제해 준다고 광고했다.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홍보 문구와 함께.
프로그래머였던 P는 마인드 업로딩을 신뢰하지 않았다. 의식을 0과 1로 번역한다고 해서 그게 '나'일 수 있을까? 영생이 아니라 정교한 시뮬레이션에 불과했다.
알츠하이머가 악화된 J를 위해 P는 모든 것을 처분했다.
집도, 채권도, 미래도.
J가 들어간 유토피아 요양원은 아날로그 세계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실제 손길이 닿는 곳.
진짜 햇살이 드는 곳.
주말마다 면회를 오고, 손을 잡아주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들어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지난 이십 년간 P를 지탱한 건 바로 J였다.
그런데 P의 몸이 배신했다.
암.
보험은 끊겼고, 남은 선택지는 명확했다. 파라다이스에 자원해야 했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P가 직면한 현실이었다.
P는 뱃속 깊은 곳에서 통증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때,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시는가 봐요?”
J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J는 여전히 P를 알아보지 못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도중에 폭풍을 만나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었거든요."
P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곧 오실 거예요.
저도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요.
함께 기다려요.”
J가 위로하듯 따뜻한 말을 건넸다.
J의 온화한 갈색 눈동자 안에 벽난로의 불꽃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P는 고통이 멀어지며 생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소중한 사람이 누군가요?”
P는 희망을 담아 진지하게 물었다.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아 주기를 바랐다. J의 눈동자 너머, 깊숙이 자리 잡은 회색 뇌 속에서 빛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아들이랍니다.”
J가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토성에서 일해요. 크리스마스마다 꼭 찾아오죠. 오늘 같은 날은 빠지지 않아요.”
P는 가슴이 조여 왔다.
J의 어깨가 동그랗고 가냘팠다.
혼자 남겨질 그녀.
안쓰러웠지만, P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녀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함께 기다릴 뿐이었다.
젊은 시절의 J도 지금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잠겨 있곤 했다. 그러다 불쑥 떠오른 상상을 신나서 말해주었다. J의 이야기는 독특했고 P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언젠가 밤바다가 보고 싶다며 즉흥적으로 그를 끌고 나가기도 했다. 달이 뜬 밤바다에 은빛 윤슬이 부서지고 있었다.
“P, 저길 봐. 천 개의 달이 흐르고 있어. “
그날, J를 보며 결심했었다.
—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아야겠다고.
외투 주머니 속 선물 상자를 만지작거리던 P는 J의 무릎을 덮고 있는 진초록 타탄체크 담요에 가려져 있던 종이책을 발견했다.
그가 선물했던 책이었다.
“바람의 열두 방향을 읽고 계시는군요.”
“아, 이 책을 아세요?”
J가 모서리가 닳아빠진 책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래된 책 특유의 묵직하고 향긋한 냄새가 났다.
“네, 샘 레이의 목걸이를 좋아합니다.”
소설집에 실린 열일곱 편의 주옥같은 단편 중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소설이었다.
P의 대답에 그녀가 보조개가 활짝 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첫눈에 반했던, 양 볼이 오목하게 우물져 아기처럼 보이게 만드는 미소였다.
그러나 J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보조개는 간직하면서도, 백 년을 같이 살았던 P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P는 자신을 다독이며 그녀의 기억을 되살릴 만한 것을 찾았다. 그때 운이 좋게도 소설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그토록 먼 세월 떨어진 세상에 대한….”
P가 첫 구절을 읊어 보았다.
“전설과 사실을 당신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J가 마지막 절을 읊으며 화답했다. P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일순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여유가 생긴 P는 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의 꽃무늬 벽지는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책상 위에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책 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한쪽 벽면에 서 있는 장식장에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그가 선물했던 수십 개의 스노볼이 잘 닦인 채 진열되어 있었다.
유토피아는 세심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J가 남은 생을 편안하게 지낼 만하다 싶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J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골똘한 표정으로 P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
P는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기를 기다렸다.
“저, 혹시… P?"
J가 조심스레 불렀다.
P는 숨이 멎는 듯했다.
“나예요. P.”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자,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J의 흐릿했던 눈동자에 따뜻한 빛이 돌아왔다.
J가 두 손을 내밀자, P가 덥석 잡았다. P는 크고 단단한 두 팔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J는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그를 꼭 붙들었다. P는 그녀의 가냘픈 몸이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P는 그녀를 감싸 안은 팔을 풀고 J와 눈을 맞추었다. J가 양 볼을 발그레 물들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에 P 자신이 비쳤다.
순간 P는 주책맞게도 눈물이 나려 했다.
“J, 즐거운 크리스마스.”
P가 말했다.
그리고 서둘러 주머니에서 선물 상자를 꺼내 건넸다.
“나는 미리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내겐 당신이 선물이야.”
상자를 열자, J가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다.
“와! 스노볼이네요. 고마워요, P.”
J가 스노볼을 흔들자, 이층 집이 들어있는 둥근 그 세상에 흰 눈이 하늘하늘 내렸다. 빨간 지붕 위로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풍경이 평화로웠다.
"예전 연구할 때도, 이런 작고 아름다운 세계를 상상했었는데…. “
J가 오르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악도 나와.”
P가 스노볼 하단에 삐죽 나온 태엽을 감자,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렸다. J가 불현듯 두리번거렸다.
“S는요? 설마 올해도 안 오는 건가요?”
오르골에서 캐럴이 방 안을 채웠다.
- 내일, <마지막 크리스마스> 3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