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변신의 끝에서

단편 소설

by 순수

채영은 오늘도 소파에서 그를 기다린다.

하루의 끝을 흘려보내듯 담배를 태운다.


명문대를 졸업한 성형외과 의사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새로운 행복의 문을 열어줄 사람처럼 보였다.


야누스 같은 얼굴 속에 느껴지는 지성과 묘한 슬픔의 분위기.

그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을 때

그녀의 가슴은 소녀처럼 뛰었다.


그가 결혼 경험이 있고

'의료사고로 병원을 잃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남자'라는 사실도 문제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건물이면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혼은 한 달 만에 이루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끝내 서로의 굴레가 될 줄은 몰랐다.


시간이 흐르며,

셀렘은 서서히 불편한 현실로 바뀌었다.

현철은 우유부단했고 의욕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그녀의 모든 자존심을 건드렸다.

의사 아들을 두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큰 소리를 치는 시어머니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깟 의사 아들을 둔 주제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녀는 일로 자신을 증명하던 여자였다.

감정 대신 계산으로

사랑 대신 현실로 살아온 그녀였다.


병원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강남의 의사 경력이 이곳에서는 매력이 되지 못했다.

환자는 오지 않았고,

병원 개원에 필요했던 의료장비며 그 모든 것들의 대출비만 남았다.


그녀는 불안했다.

이 결혼이,

이 남자가,

자신을 깊은 구렁이로 끌고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밤 10시가 넘었다.

분양건물의 누수 문제로 하루 종일 뛰어다닌

그녀의 온몸에 피로가 묻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은 담배의 허리를 적시고, 곧 손바닥 위에 떨어졌다.


그때, 현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고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오늘은 뭣 때문에 또 늦은 거야?

진료는 여섯 시에 끝난거 아냐?


"어.. 제약회사 직원이랑 상담하다가... 같이 저녁을 먹었어."



"좋아하는 포도주 한잔 줄까?"

이상했다

그의 다정한 말투가 낯설게 느껴졌다.

주방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

와이셔츠 등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의 손은 잔을 들며 미세하게 떨리고

이마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어디 아파?"

"아... 아니야."


포도주를 받았다.

오늘따라 붉은 와인이 유난히 달콤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지금 이 고단함도 언젠가 기억의 강물이 되겠지.'

잔을 내려놓고 아무 말없이 잠이 들었다.


현철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일어섰다.

짧은 메모 한 장을 남겼다.


"미안합니다. 당신의 삶에 내가 짐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작은 캐리어 하나를 채웠다.

20인치 캐리어 하나.

그것이 그들의 결혼이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11월의 강바람이 차가웠다.

아파트 앞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모른 채 흘러간다.

5월에도 강물은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실개천을 흐르던 물은 큰 강으로 합쳐지고

강에서 다시 바다로 합쳐진 다음 증발하고,

그렇게 비가 되어 내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의 강물이

그의 눈앞에서 다시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이 길이 어떤 길인지는 모른다.

이 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그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짐한다.


'20년 전에 살리지 못했던 여섯 살 그 아이.

그 작은 손의 체온을 기억하며

이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국경 없는 의사회.

소말리아행 비행기표가 그의 주머니 속에 있었다.


그는 며칠후면 한국을 떠난다.

가슴 한가운데에 불씨 같은 희망이 타올랐다.

벌레로 죽음을 맞이한 변신의 주인공과 달리

이제 그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이었다.


11월의 밤은 차가웠지만,

그의 가슴은 너무도 오랜만에 뜨거웠다.


엔진 시동 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부르릉"

그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강물처럼 흘러간다ㆍ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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