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지팡이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단지
이성이나 의지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깊은 곳,
무의식이 그 모든 움직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를 만나러 내려가는 기차 안.
갑자기 뒷자리에서 어르신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어디냐"라며
"내가 내려야 한다니까"
평일이라 기차 안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는데
모두가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내리는 곳이 어디냐"라며 소리를 지르는 통에
한 아주머니가 일어나 안내를 해 주려 하니
이미 그분은 앞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오랜 기억 속 어떤 길을 따라가듯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정신없이 달려가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며
내리시는 곳이
'목적지는 맞는 걸까.
깜박 잠이 드셨나 보네'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뒷자리를 봤다.
세상에.
좌석 아래에
작은 가방 하나와 지팡이가 있었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조금 전의 그분은
분명,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잠깐의 졸음 끝에,
“지금이야!”라는 내면의 신호가
몸을 재빨리 깨운 것일까.
그 순간.
오직 본능, 그리고 무의식의 힘이
그분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달려가게 한 걸까.
때마침 승무원이 와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전 역에서 내린 할머니가
짐을 두고 내리신 것 같다는 상황 설명을 했다.
좀 전의 상황을 알 턱없는 승무원은
"혹시 화장실 가신 거 아니냐"라고 하여
급하게 내리셨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고.
웬만하면 남의 일에 잘 참견하지 않는 편인데
할머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 나는
시어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그분이 혹시 다른 역에 내려
고생을 하는 건 아닌지
짐을 두고 내려 얼마나 애타실 까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
승객 좌석 번호를 통해
정보를 확인해 보면 좋겠다는 내 말에
일단 알겠다며 가서 확인해 보겠다 했다.
잠시 후 들뜬 목소리로 나에게 온 직원은
할머니의 자녀가 연락이 왔고
내리신 역이 목적지는 맞았다고.
짐을 가지고 오겠다고 하여
회수해 보관해 두기로 했다고
자세히 알려 주곤 웃으며 짐을 챙겨 갔다.
'참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좁은 객실을 달리던 그분의 뒷모습이
자꾸 생각이 나,
웃음이 났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인간의 행동은 이성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비롯된다.
지팡이를 두고
뛰어나가던 그분의 몸속에는
어쩌면 ‘살아내려는 힘’이 단단히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을 떠올릴 때면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몸이,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어쩌면 우리 자신보다 먼저,
삶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통제한다고 믿는 그 모든 순간에도
어쩌면 무의식이 먼저 우리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살아 남고, 사랑하고, 기억하는 힘은
언제나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