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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로 WARO Mar 29. 2018

제주스러웠던 '날것', 제주 한림읍 귀덕리

아직은 날것의 매력이 충분한 동네

나는 날것이 좋다. 영어로는 RAW(롸-)한 것이 좋다. 

잘 트레이닝된 아이돌의 보컬보단 전람회의 고별콘서트에서 김동률의 불안정한 보컬이 더 좋다. 모든 게 준수한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보다는 골목에 있는 서툰 밥집이 더 좋다. 

가창력의 문제라기 보단 숱한 감정들이 모인 보컬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달까.


내가 좋아하는 장소도 마찬가지다. 처음의 연남동과 망원동이 좋았고, 처음의 성수동이 좋았다. 물론 지금도 자주가는 동네들이지만 요즘엔 해방촌과 문래가 더 좋더라. 제주의 서북쪽 한림읍에 있는 귀덕리가 그렇다. 제주 동쪽의 유명 해변가들, 성산일출봉, 서귀포 지역 등이 익숙했던 나에겐 귀덕리는 이런 느낌이었다. 

‘좋다. 아직은 날것이네.’

귀덕해안도로가 있는 귀덕2리

 

올 해 여름, 제주도로 한달살기를 다녀왔다. 그래 그 핫하다는 한달살기. 소위 말하는 듸즤럴-노매드만 할 수 있다는 한달살기를 말이다. 휴식을 위해 떠난 한달살기는 아녔지만, 그래도 한달살기 숙소에 머물렀으니한달살기는 한달살기였다. 숙소는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 위치해 있었다.제주라곤 20살 여행때 이후 9년만에 처음 와봤다. 그것도 낯선 귀덕리라는 곳에. 짐을 풀고 대충 주변을 둘러봤다.

‘ㅋ…휑하네’


처음엔, 휑했다.
제주생활 초반의 내 시야, 내가 알던 귀덕리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숙소 앞 일주서로를 건너면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을 지나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그렇게 알고만 있었다. 방에 쳐박혀 일만하느라..ㅎㅎ 그러다 찾아온 여유로운 주말, 함께 온 동료와 길을 나섰다. 바다로 가는 길에서 마주한 귀덕2리는 내가 알던 제주와는 좀 달랐다. 하지만 너무나 '제주'스러웠다. 아직도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던 ‘느낌’이 몇개 있다. ‘제주 스러움’도 그 중 하나였다. 귀덕리의 작은 마을에 들어설 때 느껴졌다. 그 느낌이 말이다.


지붕의 색과 돌담의 조화가 참..
사람과 배경만 봐도 느껴지는 평온함, 상쾌함


내가 딱 좋아하는 정도의 날것이었다. 적당한 비중의 맛집, 그 동네의 사람들, 아직은 거의 없다시피한 관광객. 게다가 바로 앞에 있는 바다는 보너스였다. 쿠바에 갔던적이 있다. 아바나를 잠깐 벗어나 바라데로의 해안가 작은 마을을 가본적이 있었다. 해안마을 특유의 색감, 적당한 낯설음, 그리고 날것. 모든 게 오래 기억되기 충분한 풍경이었다. 귀덕리가 비슷했다. 귀덕리가 좀 더 좋더라. 그 쿠바의 작은 해안마을보다 좀 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았고, 좀 더 친근했다.

 

돌담길 사이로 보이는 숲, 보통 요즘 제주는 돌담길 사이로 카페, 카페, 카페,,, 일텐데


 '날것'의 매력은 상당하다. 그 중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매력이다. 전혀 인위적이지 않고 가지고 있는 그대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말이다. 귀덕리의 지붕, 현무암으로 잘 쌓아진 돌담, 돌담사이 핀 야생화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널어둔 빨래 까지. 낯설지만 친숙한 풍경, 그리고 색감이 주는 즐거움이 그런 지극히 평범한것들에서 나오더라. 

또 하나는 반전의 매력이다. 어느 정도 상권이 형성되어버린 지역을 가보면 카페옆 카페옆 카페옆 술집옆 술집옆 카페가 있다. 요즘 아이돌그룹에게 칭하는 이쁜애 옆 이쁜애, 잘생긴애 옆 잘생긴애 같은 느낌이랄까. 눈은 즐겁고 몸은 편하지만 나는 그닥... 내가 좋아하는 '문래'를 예로 들어보자. 문래 창작촌엔 카페옆 철강소옆 백반집옆 철강소옆 갤러리옆 카페옆 철강소가 있다. 

'이런 데에 이런게 있어 ?'


지극히 평범한것들 만으로도 신기하고 눈이 즐거운데, 전혀 다른 장르의 것들이 내 동선 사이사이에 나타나는 동네의 매력. 그 반전의 매력이 귀덕리라고 없었을까. 매~우 적은 빈도로 중간중간 보이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귀덕리를 결코 심심하지 않은 동네로 만들어준다. 어쩌면 내가 지금의 귀덕리를 가본 건 행운이었을지도..

(위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은 다음 글에서 천천히 소개를 하도록 하겠다.)


해물라면집에서 바라본 귀덕2리, 바다는 보너스
그리고 해물라면 (맛집, 가볼만한 스팟 소개는 다음 글을 통해)



 그래, 언젠가는 귀덕리도 여느 제주의 지역이 그랬듯이 '날것'의 매력은 바래질지 모른다. 지난 여름, 이미 한 두개의 카페와 펜션이 들어서고 있고 재건축이 이뤄지는 현상도 하나 둘씩 생기고 있었다. 아직은 컨텐츠,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 귀덕리에 생기는 그런 변화들은 어쩌면 좋은 현상이다. '적당히'만 변한다면 말이다. 나만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빈번한 지금 세상에서 한 동네가 '적당히' 개발되어 나같은 사람들이 쭉 사랑할 수 있는 동네로 남아주길 바란다는 것이 말이다.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 더 익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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