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은경 KAY Feb 18. 2024

되물림에서, 되살림으로

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 책과 함께하는 단상

’억울해요,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럼 나는 너무 억울하잖아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실내 운동장을 크게 지었고,

중학교 졸업할 때에는 급식실을 크게 잘 지었다.

이런,, 내가 있을 때 지어주면 참 좋았을텐데!  


그렇다고 내 때에도 없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면

이 세상에 어떤 나아짐이 있을까.


살아있는 유기체, 생명이 있다보니 우리는 진보하고,

그러다보면 내가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

외부로부터 변화를 받았으면 하는 기대 등으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어떤 역사에서는 억울함의 되물림이 있다.

그리고 어떤 역사에서는 되살림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랑 받아본 적 없습니다. 나도 못 받아봤으니 잘 못하겠고, 못해 먹겠습니다!'

‘나는 이런 리더십을 경험해 본 적 없습니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왜 나만 고생해야 합니까!'


억울함의 정서이다.

받아본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어려움이다.


마음을 달리먹었다고 한들, 그 이후에 더 큰 어려움들이 있다.

이 과정 자체를 겪어보지 못한 나는 막막함과 실수가 있기도 하고

들려오는 불평 불만에 뭐 좋을 게 있다고 이 고생을 하는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 고생했다고, 달리 마음을 먹어주어 고맙다고 어깨 두드드려주는 이도 없다.

어찌보면 굉장히 고독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크게 좋을 게 없는 변화 같다. 고난길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니체의 말을 책의 제목으로 썼다.

“이해받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이해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모욕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해받기의 소중함을 말하면서도, 사회적 관습이나 타인의 가치관에 굴절돼 개인의 고유성과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나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방의 한계이며, 나아가 인간의 한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 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 김정규 지음(게슈탈트 심리상담)



지금의 나의 역사는, 리더들의 역사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해를 했다는 것은 오히려 왜곡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모욕일 수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뜻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온전히 이해받지 않는 이 상황이 오히려 감사하기도 하고,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꼭 붙들고 있던 썩은 동앗줄을 내려놓고, 튼튼한 새줄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후대를 위해, 후배들을 위해 이 억울함의 되물림을 끊겠다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보다 나은 나를 위해,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며, 기회를 선용하며 사는 것 뿐이다.

이렇게 가다가, 혹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것은 생각지 못한 좋은 일이 되겠지.



이렇게 생각이 흘러오니, 이제까지 삶의 물결 속에 살아온 인생들에게 대한 격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살림으로 되물림을 끊어온 인물들에 대한 존경을 함께 가져봅니다.


되물림은 사실 내 스스로가 괴로운 일이고, 크게 생각없이도 살면 되는 일이지만

되살림은 사실 나에게 가장 자유와 보람을 주는 일이고, 존재를 통해 발현해나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되살리는 정신으로, 기업가정신으로, 크리스찬다운 삶의 자세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해나가보자 그리 마음을 새롭게 해 봅니다.


이 시대의 리더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겸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