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던 새벽, 다급하게 걸려온 친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잠이 덜 깨서 눈도 못 뜬 채로 전화를 받았더니 대뜸 들려오는 말.
"야! 너 지금 어디야!"
"자고 있었는데, 아 왜~"
"이태원에 있는 거 아냐?"
"이태원은 어제 갔지."
'어떻게 알았어? 나 뉴스에 찍혔어?'라고 물어보려다가, 비몽사몽한 와중에도 저쪽에서 욱하는 숨을 참는 게 느껴져서 입을 다물었다. 언니는 어금를 꽉 깨물며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대. 그런데 좀 다니지 마. 얼른 자" 하며 통화를 끊었다. 그런 데라니, 대체 뭐 어떤 데를 다녔다는 건가 싶었지만, 잠이 덜 깬 나는 그냥 '응~'과 '엉~' 사이의 어중간한 웅얼거림으로 대충 대답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때는 정말 별일 아닌 줄 알았다.
아침이 되니 여기저기서 카톡이 왔다. 무사하냐고, 혹시 이태원에 갔었냐고. 아니, 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제야 스마트폰으로 톡톡톡 검색을 해보고는 그만 입틀막. 세상에, 이게 실제상황이라고? 좀비영화 아니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고는 토요일, 그리고 나는 금요일에 그 자리에 있었다. 다음날 바로 그 자리에서 백수십 명이 깔려죽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인파에 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가까스로 빠져나온 후 사람이 비교적 적은 맞은편 골목의 술집거리로 피신. 그리고는 신나게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이 무용담을 알렸다.
... 하여간 입이 방정이지. 다음날에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원래 토요일에 놀러가려던 일정이 하루 당겨졌기에 망정이지 어쩌면 산더미처럼 쌓인 사람 몸뚱이들 사이에서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게 나였을 수도 있다. 이번엔 정말 운이 좋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나보다. 저게 나였을 수도, 내 자식이었을 수도, 내 친구였을 수도 있었다고.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공권력과 행정력을 탓하기 시작했다. 그래 뭐,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팬데믹 이전에도 나름 이태원에서 여러 번의 할로윈을 보내봤는데 이번만큼 엉망인 적은 없었으니까. 골목골목에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던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경찰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원인이 용산구 경찰들이 모두 대통령 관저 경호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긴 하다. 과거의 슬픈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고.
댓글창도 난리난리. 가능하면 안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호기심에 눌러본 내 손가락이 문제다. 막 싸질러대는 댓글들을 보면 분노를 넘어서서 슬픔이 느껴질 지경. 놀러 갔든, 서양축제를 즐기든, 술을 먹었든 아니든 사람이 죽었잖아. 일단 애도하는 게 맞지 않나. 비아냥거리는 놈들은 대체 뭐지. 이러니 내 병이 나아질 리가 있나.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제 정신으로 살 수가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 역시 이기적인 인간이라 순수하게 애도만 하지는 못한다. 요즘의 나는 "삶에 애착이 별로 없으니 죽는 것도 크게 무섭지 않다"고 말하곤 했는데, 막상 어떤 식으로 죽게 될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허세를 떨고 있었던 것 아닐까.내가 저 속에 있었다면 아마도 필사적으로 살려달라고 외치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런 식으로 최후를 맞고 싶지는 않다. 우울함을 떨쳐보자고 놀러 나간 길거리에서 뜻하지 않게 아비규환을 만나 술취한 사람들에게 깔려죽는다니,너무 어처구니 없잖아. 돌아가신 분들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준비도 안된 채 의미없이 생을 마감하는 건 너무나 허무하니까. 나에게는 죽는 것보다 끔찍한 게 그런 허무함이다. 그 끔찍한 허무함과 싸우고 싶어서 치료를 받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온전히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보며 내 삶을 각성하는 것일 수도 있고.
미안합니다. 이런 슬픈 상황에, 이런 철없는 소리를 해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보며 내 인생은 잘 살아보자고 다짐하는 내가 좀 소시오패스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은 못 하겠어요. 이것이 내가 느끼는 충격이고, 이것이 내가 느끼는 슬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