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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나의 완벽한 강아지

쓰다가 울다가 두 달 만에 겨우 완성한 편지

by 임효진

2014년 여름쯤이었나. 오랜 고민 끝에 동물자유연대에 유기견 입양신청을 했는데, 뜻밖에도 면접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내가 입양을 신청한 아이는 혼자 있으면 뭘 자꾸 물어뜯어서 출퇴근하는 1인 가구인 나에게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


대신 키우기 쉬운 다른 강아지를 추천해줬는데, 그게 바로 라임이였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순하고 명랑한데, 단점은 식탐이 많다나. 종견장에 갇혀 있다가 굶어죽기 직전에 구출되다 보니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고 했다. 솔직히 그때는 썩 내키지 않았다. 나는 털 짧은 시골 믹스견이 좋았다. 하얗고 털이 긴 품종견은 왠지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처음 입양을 신청했던 강아지가 이미 마음속에 너무 크게 자리를 잡았다. 입양 신청날부터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상상하다 보니, 이미 맘속에는 그 개가 내 개였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개가 바뀌어버리다니?


그래도 입양을 하긴 했다. 개가 무슨 잘못이냐, 차별하지 말자는 생각에 약간 억지로 떠맡은 기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웬걸, 지금은 라임이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감사하다. 라임이를 추천해준 그 간사님은 어쩌면 내 생명의 은인일지도. 그렇게 2014년 11월 20일, 내 옆에 수호천사가 한 마리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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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이는 정말 해맑은 강아지였다. 낮에 혼자 있어도 장난감 외에는 물어뜯지 않았고, 배변훈련도 금방 적응했으며, 웬만해서는 짖지도 않았다. 성격이 명랑하다 못해 산만했지만 그래도 그 엉뚱발랄하고 낯가리지 않는 성격이 좋았다. 밥투정이 뭐람, 고구마든 당근이든 양배추든 주는대로 잘도 받아먹었다. 먹는 모습이 예뻐서 많이 주고 싶은데 살이 찌면 안 되니까 열심히 참는 것도 고역이었다.


하지만 식탐이 유일한 단점이라는 말은 맞더라. 종종 아무거나 주워먹는 바람에 탈이 나곤 했다. 산책길에 발견한 고양이밥이나 다른 개의 배설물은 양호한 편. 텃밭에 심어놓은 애호박과 무를 제멋대로 베어먹더니, 정원에 돋아난 튤립싹을 뜯어먹는 바람에 기겁한 적도 있다(튤립이나 양파 같은 알뿌리 식물은 개에게 독이다).


그래도 그놈의 식탐 덕분에 약까지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건 오히려 다행. 다른 집 개들은 약 한 번 먹이려면 전쟁이라던데, 나는 한 번도 약 먹이느라 고생해본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기특한 녀석이다.


섬세하지도 다정하지도 못한 무심한 주인을 마냥 좋아해 주었다. 내가 잠깐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와도, 책상에서 일하다가 돌아보기만 해도, 심지어 자다가 눈만 떠도 좋아해 주었다. 매순간 온몸으로 즐거움을 표현하는 라임이를 보며 동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엄마조차 "인생은 라임이처럼 살아야 돼"라고 말할 정도였다. 시도 때도 없이 웃음짓게 만드는, 정말 강아지다운 강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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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이는 언젠가부터 많이 늙어있었다. 신장이 나빠졌고, 담낭을 떼어냈으며, 기관지 협착 때문에 잔기침을 했다. 몸 여기저기에는 사마귀가 늘어났고, 잘 안 들리고 안 보이다 보니 자꾸만 부딪혔다. 병원에서는 나이 들어서 그런 거라고, 딱히 치료해줄 건 없다고 했다.


고기 간식을 끊었다. 그래도 여전히 먹성은 좋아서 식물성 사료와 고구마 간식도 잘 먹어주었다. 다만 가끔 친구들이 놀러와서 삼겹살 파티를 열면 주위를 떠나지 못하는 게 안쓰러웠다. 가끔은 에라 모르겠다며 살코기를 한두 점 주기도 했다. 그러면 라임이는 역시나 온몸으로 행복해했다.


그랬던 라임이는 어느 순간부터 식욕이 줄었다. 밥그릇을 내려놓기 무섭게 달려들어 허겁지겁 먹어치우던 아이가, 언젠가부터 조금씩 밥그릇 앞에서 머뭇거리더니, 어느 날은 한참을 쳐다만 보더니 돌아서는 게 아닌가. 튤립 싹을 뜯어먹었을 때보다 더 크게 심장이 철렁했다. 개들은 아프면 밥을 안 먹는다던데, 설마.


다행히 고구마를 섞어주면 여전히 잘 먹었기에, 말린 고구마트릿을 대용량으로 사서 냉동실에 쟁였다. 밥그릇 대신 노즈워크 담요에 밥과 고구마트릿을 넣어서 주기 시작했다. 이제는 20분 산책도 피곤해할 만큼 기력이 줄어들다보니 겸사겸사 밥 먹을 때 노즈워크라도 재미있게 하기를 바랐다.


라임이가 허약해졌다는 걸 느끼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토닥이며 말하곤 했다. 내 옆에서 오래 버티지 않아도 되니까, 떠날 때 절대 아프게 가지 말라고. 마지막날까지 식욕 잃지 말고, 갈 때 가더라도 맛있는 것 많이 먹고 가라고.


나의 완벽한 강아지는 마지막까지도 엄마 말을 잘 들어줬다.





그날, 집을 나서기 전 라임이는 변함없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주었고, 배를 긁어달라며 내 손을 끌어당겼다. 아침에 작은 사건이 있었던지라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모처럼 새로 산 간식을 뜯어서 밥과 섞어주었고, 밥그릇을 내려놓자 웬일로 아주 맛있게 한 그릇을 금방 비웠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자꾸 혼자 두고 나가서 엄마가 미안해. 이것만 해결되면 하루종일 같이 있자. 그때까지 조금만 더 건강해야 돼, 알았지?"


새 간식에 정신이 팔려서 내 말을 못 들은 걸까. 아니면 일부러 나 보라고 더 맛있게 먹었던 걸까. 그날 저녁 내가 돌아오기 전에 라임이는 혼자 조용히 먼 길을 떠났다. 늘 낮잠을 자던 소파 위의 자기 자리에서, 약간의 분비물을 남기긴 했지만 잠자듯 얌전하고 편안하게.


그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게 무슨 일이지?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짐승같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머리는 인정하지 못했는데, 마음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나보다. 그날 새벽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장례를 치른 후 라임이는 한 줌의 구슬이 되어 다시 내 품에 안겼다.


때마침 금요일 밤이었다. 라임이를 나보다 아끼던 언니가 멀리 인천에서 달려올 수 있었고, 달씨가 연차를 내지 않아도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수 있었고, 주말 내내 울다가 일요일 저녁쯤 진정 되어 월요일에 무사히 일을 하러 나갈 수 있었던 금요일 밤. 어쩜, 마지막까지 못난 엄마를 편하게 해준 나의 완벽한 강아지.


아직도 가끔 이게 꿈은 아닌지 헷갈린다. 멍해졌다가, 현실이라는 걸 느끼고 다시 눈물 흘리기를 거의 두 달째. 많이 나아졌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 내일 아침에도 눈을 뜨면 라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얼굴을 핥으며 귀찮게 굴 것 같은데. 외출했다가 문을 열면 문앞에서 몸을 일으키며 맞아줄 것 같은데. 하지만 아니다. 슬프게도 그런 일은 이제 없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한창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 잔뜩 웅크린 내 등에 작지만 묵직한 네 몸뚱이를 슬며시 가져다 붙이던 그 따뜻함 때문에 나는 살았다. 음식 씹어삼킬 기운도 없이 이불 속으로만 파고들 때, 산책 나가자고 조르던 반짝이는 눈동자 덕분에 나는 일어났다. 가장 힘들 때 나를 지켜준, 나를 살게 했던 천사같은 나의 강아지. 이제는 진짜 천사가 된 나의 강아지.


네 덕분에 나는 살아간다. 할 수 있는 건 그리워하고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네가 지켜준 내 인생,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볼 거다. 가끔은 울겠지, 너무 보고 싶어서. 또 가끔은 웃겠지, 추억이 생각나서. 살아있는 동안 아마도 꾸준히 너를 떠올리겠지.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네 덕분에 울고, 웃고, 인생이 의미가 있어질 거야.


그리고 혹시라도 네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지는 말았으면 해. 못한 못난 엄마를 외롭게 기다리는 건 여기서 충분히 많이 했으니까, 거기서는 마음껏 놀고 신나게 먹고, 강아지든 사람이든 아니면 그 어떤 존재로든 다시 태어나서 실컷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네 덕분에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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