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힘, 마음챙김
이 글은 3년전 10월, 그러니까 2015년 10월에 썼던 글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드디어 이 글 속에서 언급된 하와이에서 11월 말에 있을 명상수행에 가기 위해 항공권을 결제했다. 3년전 하와이를 못가게 되었을때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던가.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쓴 글이지만 다시 겸허하게 배운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고통이 사실은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2015년 10월 15일 저녁...
사실 지금 저는 이 글을 며칠에 나누어 쓰면서 저 스스로 고통에 대한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내내 저에게 일어난 일들은 제 기대와 예상을 모두 벗어난 일이었고, 저는 저를 자책하고 낙담하며 한 주를 보내야 했습니다.
원래 저는 지금 이 시간에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해변가 아름다운 호텔에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죠. 불과 삼일전만해도 말입니다.
제가 종종 강의에서도 언급하는 실리콘 밸리 최대의 명상 관련 컨퍼런스인 Wisdom2.0의 창립자인 소렌이 그동안 함께 했던 연사들과 운영진들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네트워킹 컨퍼런스를 하와이에서 개최한다고 초대장을 보내 왔었습니다. 그동안 Wisdom2.0 에 갈 때마다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떤 사람들이 올까 두근거렸죠. 게다가 하와이, 지상의 천국에서 모인다는데 안 갈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비싼 항공료와 참석비가 약간은 부담스러웠지만 그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그만큼 하와이에서 전세계에서 온 체인지메이커들과 마음챙김 명상 선생님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기 때문입니다. 하와이 항공권을 끊고, 호텔을 예약하고 룸메이트를 구하고 그 모든 일들을 다 해놓고 이제 정말 가는 것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제 아침, 10월말로 예정되어 있었던 한 강의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한 기업의 교육담당자 분께 전화를 건 순간 저는 머리가 쭈볏 서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10월 31일로 알고 있었던 강연 일정이 사실 10월 17일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태파악이 되는 데는 불과 30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고 이미 강의 공지는 다 나간 상황이었습니다. 17일이면 제가 한참 하와이에서 행사에 참석해 있을 시간, 즉 하와이에 가면 강의를 못하고 강의를 하면 하와이는 못 가게 됩니다. 전화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자 마자 손바닥이 축축해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입에 침이 마르고 얼굴이 새하얘졌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머리속에 수많은 생각의 파도와 쓰나미가 몰려 들었습니다.
우선 가장 큰 쓰나미는 자책과 원망, 화였습니다. '왜 미리 확인을 안했었지?', '난 왜 31일로 알았던 거지?', ' 미리 알았다면 강의날짜를 조정 가능했을끼?' 등등.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만드는 부산한 마음의 움직임들...'나 말고 대신 강의해주실 분을 추천할까?', '하와이에 못 가면 그 돈은 다 날리는 건가?', '하와이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은 어쩌지?'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앉아 내 마음을 바라보자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사실 해결책은 처음부터 하나였습니다. 하와이 행사는 제가 안가도 돌아가겠지만 강의를 제가 가지 않으면 제 강의를 앞서서 듣고 다시 불러주신 교육 담당자분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하와이에 가서 Wisdom2.0 에 참석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이죠...이 해결책 밖에 없음을 결국 받아들이자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밖에 안 남은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소렌과 친구들에게 못가게 되었다고 양해 메일을 쓰는 것. 그리고 호텔 예약을 친구의 이름으로 바꿔 주는 것.
이렇게 마음을 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곧바로 고요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내려 놓은 미련과 후회는 마음을 계속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죠. 하지만 2015년 10월 15일, 이 날 오후에는 다른 기업의 강의가 잡혀 있었습니다. 다행히 마음챙김 명상 강의를 하면서 저는 오히려 온전히 현재로 돌아오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 분들과 함께 명상을 하면서, 그리고 그 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머리속에 어지럽게 떠다니던 상념들이 잦아들기 시작한 것이었죠.
사실 이 강의는 시작전부터 신경이 많이 쓰였던 강의였습니다. S사의 45세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생애주기에 관련된 강의였는데 이런 강의를 S사에서도 시작하기로 한 것이 얼마 안되었었고 거기에 마음챙김 명상을 커리큘럼으로 넣은 것도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미팅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담당자분들도 아직 마음챙김 명상이 어떤 것인지, 개인이나 조직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확신이 없으셨다는 것이었습니다.(지금부터 3년전임을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교육에 마음챙김 명상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도 망설이고 있는 곳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담당자분의 말씀에 따르면 두달에 걸친 약 20차 수의 교육동안 저말고 다른 명상 교육 업체 두 군데에서 나누어서 명상 강의를 진행하고 참석자들의 반응에 따라 차수를 조절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곳에 강의를 갈 때마다 저도 모르게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음챙김 명상이 참석자분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마음챙김 명상의 효용성을 교육담당자분에게 '증명'해야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다행히 명상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진지하게 명상을 하시는 것을 보고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꼭 몇분은 저에게 오셔서 "강의를 듣고 마음챙김 명상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겨서 혼자서 명상을 시작해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라고 질문을 주셨으니까요. (이때가 마보를 개발하기 전이었는데 이 강의를 통해서 한국어로 된 명상앱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회사와 집밖에 모르는 이 분들을 보면서 3,40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방형 MBA 스쿨인 'The Life School'을 꼭 한국에서 시작해야 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강의를 무사히 마치고 그 날 교육 담당자분과의 미팅을 했었는데 그 담당자분에게 들은 얘기는 저를 너무나 힘빠지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다른 업체와 저의 명상강의를 합쳐 지금까지 마음챙김 명상 강의를 10번정도 진행하고 강의만족도 중간조사를 했는데 명상에 대한 참가자들의 평가가 극과 극('아주 좋다'와 '잘 모르겠다.')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명상 모듈 강의를 계속 진행할 지 말지를 임원분께서 정하실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5번의 강의를 마친 후였고 4번의 강의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죠. 이런 얘기를 들었을때 우리는 당연히 이 상황에 낙담하게 됩니다. 그리고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자기 자신에게 원인을 돌리죠.
아, 내 강의가 별로였나?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더 잘했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자책이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옮아가는데는 사실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아니야, 난 최선을 다했어.부처님도 준비가 스스로 안되어 있는 사람은 바꿀 수 없다고 하셨잖아? 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어. 이건 내 탓이 아니야. 명상을 원하지도 않는, 전혀 들을 준비도 안되어 있는 분들 모두를 내가 바꿀 수는 없어.'
명상 수업은 재미있고 웃기고 즐겁기만한 강의가 아니야. 참가자들도 본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구......
이러한 생각들과 함께 한국 기업 교육의 현실(희망자가 아니어도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집합교육, 마음챙김 명상을 힐링 /이완연습으로 보고 다른 교육들 사이에 억지로 끼워넣기식 구성)에 대한 비판적 마음까지 더해져 제 마음은 점점 더 방어적이 되고 판단적이 되었습니다.
단 하루만에 하와이로의 여행은 물거품이 되고, 잡혀 있던 강의 일정이 취소되어 제가 예상했던 10월과 11월의 모든 일정이 어그러지는 것을 보면서 제 감정은 어떤 롤러코스터를 탔을까요? 네, 예상하시다시피 전 '무기력감'과 '우울', '짜증', '분노' 라는 감정들을 번갈아 가며 겪으며 이틀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을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잭 콘필드 님의 '마음의 숲을 거닐다'를 읽으면 '악마를 제압하는 이름붙이기' 라는 연습이 나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인생의 어떤 모습이나 문제들도 마음챙김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모든 문제와 경험 각각에 이름을 붙여 보세요. 예를 들어 갑작스런 거절을 경험했을 때 '실망,실망...' 그리고 그 실망이 원망이나 분노로 변할 때 '화,화...', 그 화가 수치심이나 우울함으로 변할 때 '수치심, 수치심..' '우울함, 우울함...'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도 억지로 붙들거나 억누르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지켜보며 이름 붙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때로는 나의 분노가 너무 커서 앉아 있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습니다. 소리를 크게 지른다던가 발을 크게 구른다거나 하면서 말이죠. 슬픔이나 두려움이 너무 커지면 그냥 앉아서 울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베개를 끌어안고 꺽꺽 울면서 말이죠.
이 글의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던 소렌은 Wisdom2.0의 창시자이자 저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 날 저녁, 심란한 마음을 부여잡고 무심코 페이스북을 열었는데 소렌의 페이스북에 어떤 중년의 미국 여성분이 남긴 글을 보았습니다. 무심코 그 글을 읽어 내려가던 저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중년의 여성분은 제가 가기로 했던 그 행사, Wisdom2.0 하와이에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본인의 딸이 미리 도착해서 친구들과 하이킹을 갔다가 그만 산에서 떨어져 바다로 빠졌는데 급류에 휩쓸려 사체로 발견되었다고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사자는 전 실제 만난 적은 없지만 소렌과 몇몇 다른 친구들을 통해 페이스북 친구로 맺어져 있는 31살의 ABC뉴스 기자이자 의학박사이며 명상 선생님이기도 한 Jamie Zimmerman이었죠.
그 순간 갑자기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녀의 삶이 시공간을 넘어 제게 다가왔습니다.
Jamie도 저처럼 아마 저번 주 이 시간까지만 해도 Wisdom2.0 하와이가 열릴 페어몬트 호텔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을 겁니다. 아마 저처럼 그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마음챙김 명상을 하고, 하와이 바닷가를 거닐 상상을 하며 설레어 했을 겁니다. 그녀의 페이스북을 보면 아마존을 탐험하고 세계 오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그녀에게도 저처럼 이루어야할 계획과, 이루어지지 않은 계획과 이루고 싶은 계획들이 가득했겠죠. 그녀를 비롯해 그 누구도 그녀가 Wisdom2.0 에 참석하기 위해 가 있었던 하와이에서 그렇게 갑자기, 바로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삶은 그런 것입니다. 기대와 예상 자체가 얼마나 헛된 환상인지요. 삶은 그냥 원래 그런 것입니다.
삶은 결코 예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 맘에 들든 들지 않든 지금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그렇게 일어납니다. 그 현실이라는 고통에 눈을 뜰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나의 기대와 예상이 어긋난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사실에 온 마음을 열어 보세요. 그것을 인정하는 용기가 우리를 '살아있음'으로 안내합니다. 지금 살아있다면, 지금 숨을 쉬고 있다면 나의삶이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 판단에서 벗어나 지금 있는 그대로의 그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보세요. 기대가 어긋났으면 다시 시작하면 되고, 예상을 벗어났다면 다른 예상을 짜면 됩니다. 현실에 대한 저항을 버리고 현실을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진짜 삶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