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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콬콬 Feb 04. 2018

폭스파이어, 불타는 소녀들의 연대기

로랑 캉테 감독의 2012년 작품

  영화 폭스파이어는 조이스 캐롤 오츠가 1993년 발표한 같은 제목의 소설을 로랑 캉테 감독이 2012년 만든 작품이다. 1950년대 초반, 뉴욕 근방의 변두리 지역인 해먼드 시에 사는 열서너 살 또래 소녀들의 이야기. 이런 소개를 하면 ‘사춘기의 반항이나 부모와 겪는 갈등, 친구와 나누는 우정’이 퍼뜩 떠오를텐데 폭스파이어는 그렇게 빤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의 나레이션을 시작하는 인물은 소녀 갱단 폭스파이어 단원이었던 매디다. 지금은 성인이 된 매디가 중학생 무렵에 폭스파이어라는 갱단을 만들어 남자들에게 복수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매디의 시선으로 폭스파이어를 알아가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폭스파이어의 리더인 렉스가 분명하다.
        1950년대에 여자들은 너무 쉽게 폭행 당하고 강간 당하고 학교 선생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폭스파이어의 리더인 렉스는 이런 폭력을 저지르는 남자와 권위적인 어른들에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저항한다. 친구 리타를 성추행하는 수학 선생의 차에 그가 저지른 일들을 폭로하는 글을 페인트로 휘갈겨 써놓고, 따돌림 당하는 여자들 편에 서고, 매 맞는 여자들에게 피할 공간을 내준다. 폭스파이어 단원들조차도 또래의 흑인친구들에게는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시절이었는데 렉스는 흑인을 자신과 동등한 친구로 여긴다. 렉스는 흑인을 폭스파이어 단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친구들을 비난한다. ‘네가 얼굴이 하얀 게 네가 잘 나서 그런 건 줄 아느냐’며 단박에 과녁의 정중앙으로 메시지를 던질 줄 아는 렉스는 여자들을 괴롭히는 남자의 뒷덜미를 잡고 목에 칼을 겨누기도 서슴치 않는다.


     거침없는 렉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전직 신부인 테리오 신부이다. 영화에서는 ‘그저 아는 사람’ 정도의 이미지로만 표현된 테리오 신부는 원작 소설에서 비중이 적지 않다. 과거에 카톨릭의 사제였고 지금은 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알콜중독자 테리오 신부는 렉스와 렉스가 데리고 온 매디에게 세계사에서 일어났던 지난 혁명의 성공을 격정적으로 이야기 한다. 신부는 1848년과 1798년, 1917년, 1776년의 혁명들과 여전히 미래에도 이어질 혁명에 관해 목소리 높이는데 그는 1909년 뉴욕에서 열린 사회주의 전당대회에도 참석했던 인물이다. 수천 명의 동지들과 함께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위해 노래를 불렀는데 그가 과연 그것으로 신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대신 했을까?
     폭스파이어로 뭉친 소녀들은 복수로 구원을 이루려고 한다. 그런데 폭력을 당한만큼 폭력으로 맞서면 결국 맞선 이는 대단한 뒷 배경이 막아주지 않는 한 감옥에 가는 게 수순이다. 렉스는 레드뱅크주립 여성교정 시설에 갇히는데 그곳에서 인간성의 또다른 면모를 알게 된다. 사회와 격리된 폐쇠적인 교도소에는 그저 재밌거나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아서 또는 교도관의 직위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얼마든지 약자에게 위해를 가하고 인간적인 자유를 빼앗는 여자들이 있었다. 렉스는 ‘적’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다. 세상에서 적은 남자들 뿐인 줄 알았는데 진짜 적은 남자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 여자 역시 적이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진짜 사악한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간은 타인을 휘두를 만한 힘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힘을 저축해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렉스는 앞으로 살면서 절대 남이 자기를 휘두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렉스는 출소하고 나서 렉스를 기다렸던 매디와 폭스파이어의 단원들과 함께 모여서 살만한 농가를 구한다. 공동체 구성원들 각자 일해서 번만큼 돈을 가져오기로 하는데 그녀들은 매일 늘어나는 빚과 납부해야 할 공과금, 병원비를 감당 할 수가 없다. 폭스파이어에게 적은 남자였고, 그리고 여자라도 힘으로 타인을 짓밟으면 그 여자들도 적이 되었다. 또 억압당하는 약자이면서도 결코 흑인친구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던 폭스파이어 자신들 역시 그들 스스로가 싸워야 할 어떤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새로운 적은 너무나 강력했다. 바로 돈이다. 돈!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의 부재와 무는 용서될 수 없으니 이 거대한 적 앞에서 가난한 소녀들은 이전처럼 큰 소리로 되받아칠 수 없었다. 오직 적인 돈을 구하는 세상의 방법을 배우는 수밖에.
     렉스는 돈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자는데 매디는 주저한다. 이건 걸리면 사형 당할 수도 있는 범죄라고! 그러나 렉스는 매 맞고 도망친 아내들과, 부모가 돌봐주지 않는 어린 소녀들을 위한 그들만의 쉼터를 지키기 위해 백만장자 켈로그 씨를 유괴하겠다며 계획을 밀고 간다.  
    폭력적인 세상에 폭력으로 복수하려던 소녀들은 한집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꿈을 끝내 이루지 못 한다. 결국 그들은 유괴사건 때문에 경찰에 잡히기 전에 뿔뿔이 도망쳐야 했다. 이 모든 일을 끝까지 책임진 렉스는 친구들이 다 도망치고 나서야 경찰차의 추격을 피해 달아난다. 렉스는 어떻게 됐을까? 
    영화 폭스파이어는 원작 소설을 충실하게 옮겨놓은 편이다. 소설의 사건과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같고 이어지는 장면들은 소설의 인물들이 겪은 일들을 거의 순서대로 옮겨놓은 것들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천천히 나타나는 동네의 풍경과 교실의 칠판과 공중전화 부스와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낡은 농가의 컷들. 로랑 캉테는 영화의 시작에 주인공들이 머물렀던 '공간'의 이미지들을  배치하는데 이 오프닝 이미지들에 폭스파이어 전체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러고는 줄곧 소설의 시간을 그대로 따라간다. 
    영화는 관객이 주인공의 개성이나 감정에 몰입되도록 두지 않는다. 멀리서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영화를 보는 우리는 사건들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망하게 된다. 연극 1막이 끝나고 다시 2막이 이어지듯 소설의 사건들 중 선택된 몇몇이 시퀀스로 이어지는데 우리는 풍경을 바라보듯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경험한다. 
    감독 로랑 캉테는 원형 플롯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며 매디의 회상으로 시작해 폭스파이어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설의 주요 사건들 중 몇 사건을 덩어리로 잘라서 툭툭 이어 붙이고는 마지막에 매디가 회상을 시작했던 지점으로 돌아온다.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기도 했는데, 소설의 사건을 충실히 영화로 재현하려고 한 반면 소설에서 중요했던 사건인 난쟁이 여자 집단강간 사건이나 렉스가 교정시설에서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화면에서 삭제했다. 연출가가 소녀들이 겪은 폭력적인 현실을 지나치게 관조하며 점잖게만 표현해서 영화 폭스파이어의 소녀들이 왜 폭력에 폭력으로 맞섰는지 관객인 우리가 충분히 납득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 그녀들의 혁명의 행위가 약하거나 정당성이 부족하게 여겨진다면 이건 감독이 남성의 폭력과 세상의 위계질서에 대항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속성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는 여성 공동체를 이루려던 어린 여성들의 시도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 한 탓이다. 주저했을 수도 있겠다. 

       켈로그 씨 유괴 사건의 실상은 지역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다. 어린 소녀들이 돈이 필요해서 백만장자 자본가를 납치한 것인데 권력가와 자본가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진실은 세상이 꺼리기 마련이다. 사건은 납치범들이 공산주의자들이거나 노조와 연결되었을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히 남긴 채 흐지부지되고 만다. 나레이션을 들려주던 매디는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우연히 길에서 리타를 만난다. 아이 엄마가 된 리타가 매디에게 조심스럽게 신문 한 부를 건네면서 말하길, 신문을 보자마자 너무 놀랐다며, 그 아이 맞지 않느냐고 묻는다. 신문 첫 장에는 쿠바 혁명을 이끈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료가 마주보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실렸는데 카스트로 앞에 당당히 서있는 이가 렉스, 세상에나, 그동안 어떤 소식도 들리지 않았던 렉스이다!
   십대 시절, 폭력에 폭력으로 맞섰던 렉스의 복수는 구원을 제대로 이루지 못 했다. 결국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으니 말이다. 신의 구원을 버리고 사회적 혁명으로 대중과 연대하며 세상의 구원을 이루려던 테리오 신부도 고독하게 길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러면 구원을 이루려던 영웅적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미숙함과 연이은 실수와 실패로 인해 자기 자신도 자기가 적대시했던 그 괴물이 되어버렸을까?
   조이스 캐롤 오츠와 로랑 캉테의 폭스파이어는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괴물이 된 영웅의 플롯’을 따라가지 않는다. 렉스의 혁명은 테리어 신부가 믿었듯 과거의 혁명들과 연결되는 미래의 혁명들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미숙했던 어린 소녀는 친구들을 위해 냈던 목소리를 또다른 땅에서 이웃과 공동체와 국가를 위해 높이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해피엔딩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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