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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콬콬 Mar 09. 2018

로건 럭키:상업성을 비판하는 상업영화

브런치 무비패스 02

   상업성은 콘텐츠와 작품 또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얻고 싶어하면서도 경멸하며 바라보는 어떤 것이다. 상업성이란 말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편리한, 쉬운, 열 명 중 여덟 명이 좋아하는, 평균치의 맛, 빠르게 얻는' 같은 의미가 내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극장용 영화는 제작비와 여건,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이라는 공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해서 제작하는 입장에서 소수의 취향을 고려한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 몇 백만이나 몇 천만 같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대체로 좋았다고 평하게 하려면 영화에서 뾰족뾰족 튀어나온 특이하고 개성이 돋보이는 어떤 지점들을 사포로 문지르듯 살살 다듬어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영화들은 성공하나 또 어떤 영화들은 뻔하고 식상한 영화 취급을 받기도 하고. 꼭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곳곳에 이 '상업성'이란 괴물이 우리가 사는 건물과 자주 다니는 쇼핑몰과 도로의 지반 깊숙이 똬리를 틀고 앉아 위세를 떨치니 말이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로건 럭키]는 범죄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케이퍼 무비(Caper movie)의 외피를 쓰고서 상업적인 것에 주먹을 갈기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전개되는 모든 장면들은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과 편집이란 여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살아남아 극장에서 상영되는데 다른 장면이 아니라 바로 이 장면들이 영화에 담긴 이유가  분명 있다. 등장인물이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맞닥뜨리게 될 만한 개인적 상황이나 배경을 설명하거나 사건 자체의 정보를 전달하고 주제를 표현하는 등 영화의 주요 핵심을 전개하는 적절한 몫을 하는 장면은 편집에서 잘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다. 쓸데없는 것들을 전부 잘라버리고 남은 이미지가 한 편의 완성된 영화일텐데 [로건 럭키]는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주인공 지미 로건은 왕년의 풋볼스타였고 지금은 계약직(또는 일용직)으로 대형 경기장 지하에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다 해고 당했는데 당신은 주인공 지미가 금고를 털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영화의 주요 사건과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대화가 영화에서 길게 이어지는게 의아하거나 복잡한 유머인지 시나리오를 산만하게 썼는지 의심이 들만큼 별얘기를 다 하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이런 장면들이 왜 금고 터는 신나는 영화 중간중간에 끼어들어있는지 갸우뚱거릴 수 있다. 이건 스티븐 소더버그의 이중 스토리라인 전략때문이다. 감독은 가난뱅이들이 한탕 터는 사건으로 영화의 겉옷을 두르고는 그 속에 상업성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강조하는 에피소드를 숨겨두었다. 소더버그는 자신이 강조하려는 주제 - 우리가 단순히 영화나 상품을 고르는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 역시 상업성에 물들었다며, 상업성이란 무대 위의 스타들만 구속하는 별세계에 속한 속성이 아니라 소시민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기도 하단다.  

    지미는 다리를 절뚝거리기 때문에 직장에서 잘렸고 딸 새디를 만나려고 이혼한 전 아내의 집에 찾아가 양육권 때문에 다투기도 하는데 그는 ‘시대의 대세’와는 아주 동떨어진 인물이다. 지미에게 핸드폰도 없고 GPS가 달리지 않은 구형차를 모는 정도는 차치하더라도, 지미는 패스트 퓨리어스(Fast furious) 영화인 ‘분노의 질주’ 같은 액션 영화를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새디의 새아빠 무디를 곱게 봐주지 못 한다. 새아빠 무디는 영화를 보는 동안 아이들이 화면에 완벽하게 몰입하니까 자기가 너무 편해서 좋다며 낄낄거리는 인물이고 지미는 어린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자극적인 화면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또 전처인 바비는 딸 새디가 살 찌면 안 되다며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 하게 하는데 지미는 딸이 머릿속에 ‘뚱뚱한 몸은 나쁜 것’이라고 새기는 게 못마땅하다. 게다가 새디의 의붓 형제인 쌍둥이들이 하는 말은 더 가관이다. 새디가 발표회에서 부를 노래로 리한나의 노래 <umbrella>로 결정했다고 하자, 이 쌍둥이들이 리한나의 노래에서 우산은 진짜 우산이 아니라 여자의 질(Vagina)을 상징한단다. 너무 황당한 지미는 7살이나 됐을까 싶은 꼬맹이 남자아이 둘에게 이런 소린 어디서 들은 거냐고 묻는데 아이들이 대답하기를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고.  

    모든 사람들이 이견을 달지 않을 만큼 달고 세고 강력한 자극을 맛보는 소비적인 콘텐츠와 제품들이 도시에 넘치니 다른 것을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세상. ‘유명세’라는 것도 상업성의 거품같은 면모를 보여주는데 [로건 럭키]에서는 주인공 로건 형제들과 싸움을 벌이는 맥스가 그런 인물이다.  sns에서 1만2천 팔로워를 거느렸다며 으스대는 맥스는 지미의 동생 클라이드가 한쪽 팔에 의료 보조기인 의수를 낀 걸 조롱하다가 형 지미에게 얻어맞는다. 맥스는 에너지 음료 스폰을 레이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레이서. 맥스의 동료 데이튼은 맥스와 다르게 레이싱을 위해 음식을 절제하고 운동과 명상으로 자기 관리를 한다. 맥스가 데이튼에게 레이싱 경기에 집중하기 보다 스폰서 음료 업체를 위해 카메라 앞에 나서라고 우겨서 둘이 크게 다투는 장면이 [로건 럭키]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런 에피소드들 역시 스티븐 소더버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상업적인 세계의 단면을 표현하는 에피소드이다.   

    로건 형제가 금고폭파를 위해 감옥에서 반나절 탈옥까지 시킨 조 뱅과 일당들은 어떤 돈을 터는가? 바로 샬롯 모터 스피디웨이. 이곳은 도시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가  벌어지는 현장으로 거의 300개가 넘은 이벤트가 개최되는데 현대의 상업공간들이 죄다 모여있어서 마치 도시의 축소판같다. 콘도도 근래 건설되었고 이 레이싱 경기장 주변 공간만을 위한 경찰과 감옥도 따로 있다. 엄청난 인파가 모이는 곳곳에 패스트푸드점이 있고 계산대에서는 쉴새 없이 신용카드가 결제승인을 기다린다. 지미 로건은 스피디웨이 지하에서 싱크홀 복구 작업을 할 때 지하 파이프를 통해 현금이 유통된다는 비밀을 알자마자 지하 터널에서 파이프를 통해 흐르는 현금을 털 계획을 세웠다. 계획이란 별 게 아니다. 금고를 털기 위해 해야 하는 일 열 가지 목록, 즉 ‘To do 리스트’ 를 만들기인데 그 리스트의 가장 마지막 항목은 ‘그만둬야 하는 적당한 때를 알기’이다.

    세금을 낼 돈은 없고 형편 없는 트레일러에 살면서 사랑하는 딸을 자주 만나려면 당장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필요한 지미. 다리를 전다고 무시 당했던 노동자 지미와 이라크 전에 다녀왔고 의수를 낀 채 바텐더로 일하는 동생 클라이브. 로건 삼남매 중 한 명이자 미용사인 노동자 멜리. 그리고 폭파 전문범인 죄수 조 뱅과 조 뱅의 동생들. 전문적인 폭파범과 거리가 먼 얼간이들처럼 보이는 이 어리숙한 일당들이 과연 어마어마한 돈을 훔치기 위해 경기장 지하 터널에서 복잡하고 치밀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  


    스티븐 소더버그의 [로건 럭키]는 강도 영화라면 의당 주요한 스토리라인인 성공적인 범행과 함께 부성애라는 또다른 스토리라인을 갖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지미의 딸 새디가 발표회에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아빠 지미가 객석 뒤쪽 출구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리한나의 <umbrella> 를 포기하고 아빠가 좋아하는  <Take me home, Contry roads>를 부르는 장면에 이를 때까지 관객인 우리는 두 개의 스토리라인이 영화에서 내내 진행되고 있던 걸 눈치채지 못 한다. 이 영화의 반전이 드러나면서야 영화에 두 개의 스토리라인이 있었다고 깨닫는데, 그동안 얼마나 안이하게 영화를 보고 있었나 싶어진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동안 드러나는 표면 아래 숨겨졌던 이면의 스토리를 다 늦게 서야 발견한 셈이다. 감독이 이런 스토리텔링을 이미 오프닝에서 친절하게 예고까지 해두었는데 말이다.   

   영화의 첫 씬은 지미가 차를 고치는 동안 새디가 정비용 도구를 건네주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지미는 존 덴버의 노래 <Take me home, Contry roads>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새디에게 들려주는데, 빌 다노프와 타피 니버트 부부 그리고 존 덴버 이렇게 셋이서 전 세계인들이 한 소절 정도는 따라 부를 줄 아는 유명한 이 곡을 만들면서 겪었던 사연이다. 지미는 이 노래 이면에 가수와 작곡가들의 ‘숨겨진 뒷 이야기’가 담겨서 좋단다. 또 '이 노래가 이 노래이기 때문'에 좋기도 하다는데 어쩌면 우리가 이미 영화 시작부터 들었으나 새기지는 않았던 지미의 취향이[로건 럭키]를 움직이는 지도이자 스티븐 소더버그가 성취하려는 목표일지도 모른다. ‘숨겨진 이야기’가 있으되 케이퍼 무비만의 매력인 범죄를 계획하고 수행하는 과정의 치밀함을 멋지게 보여주는 영화.  

   [로건 럭키]의 세계에서 최종 보상을 얻는 이들은 세상의 유행을 신경 쓰지 않고 아날로그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스포일러 될까봐 진짜 이유를 더 설명 못 함), 경제적인 이득보다 공공의료 서비스를 위해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 다니는 의사 실비아, 의리를 지킨 감방 동료, 거대한 금고를 털기 위해 첨단기술을 비웃듯 곰젤리 두 봉지와 표백용액 2개로 과제를 해치우는 폭파범 같은 이들이다. (또한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이에게 적절한 선물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영화의 끝에 이르면 딸 새디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말고 수고하고 애써서 오래 공들여 만드는 상품인 젤라또에 흥미를 갖는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주인공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소재로 등장한 아이스크림은 대량으로 찍어낸 아이스크림이었고 영화가 끝날 무렵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 뒤에 또다시 등장하는 아이스크림은 정성을 들여야만 완성되는 아이스크림인 젤라또이다.  

  [로건 럭키]에는 페이스북이라든가 구글, 트위터, 그리고 왕좌의 게임이란 익숙한 말들이 종종 들린다. 영화 [로건 럭키]의 세계는 확실히 현실 세계와 전혀 다른 영화적 세계이지만 우리가 이 세계를 실제 우리가 사는 도시와 주거지인 양 받아들이고 공감하면서 우리 자신은 어떠한지 그러니까 영화에서 남보다 새 차를 타야 위신이 선다고 믿는 새디의 새아빠 무디나 스폰서에  쩔쩔매는 매디 같은 속물들과 무엇이 그리 다른지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 이외에 촬영과 편집까지 참여했다. 감독이 모든 권한을 가져서 좋은 점이라면 의도대로 작품이 완성된 것일텐데, 그런 좋은 점이 있는 반면에 편집하면서 단호하게 장면들을 자르지 못 했는지 각 인물들의 배경 스토리를 보여주는 씬들이 길기는 좀 길다. 유능한 폭파범들의 강도 행각을 멋진 차가 고속도로 질주하듯 달리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니까. 숨겨진 스토리를 품고서 루저들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강도행각을 벌이는 영화답게 여러 등장 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독특한 개성을 충분히 보여주면서 주요한 주인공인 로건 형제의 과거 트라우마도 짚고 가느라 이야기가 ‘늘어지는’  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배우들이 이 영화에 최적화된 연기를 보여주니 사족처럼 들렸던 사연들을 로건 럭키의 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밑바탕으로 삼으라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유능한 요원, 제임스 본드였던 다니엘 크레이그의 촐싹거리면서도 전문 폭파범다운 두뇌를 과시하는 탈옥수 연기도 즐겁고 영화 후반부에 나타나는 FBI 요원 역의 힐러리 스웽크의 주위를 압도하는 독특한 발성과 표정도 분량으로 치면 엑스트라인 이 FBI 요원때문에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거라는 불안을 영화 말미에 심을만큼 뛰어나다. 그래서[로건 럭키]가 마무리되는 마지막에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나 싶은 의미심장한 상상도 펼친다.


 [로건 럭키]에 가장 딱 맞는 옷을 입은 배우들은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면서 따라오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 자기들끼만 아는 이야기를 쑥덕거린다. 물론 등장인물들끼리 나누는 대화이다. 이들이 서로 주고 받은 짧은 대화 속에 언급된 단편적인 정보들이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누군가가 그린 빅픽쳐로 연결되는 영화. 범죄 영화의 장르문법을 그대로 따르는 상업영화이면서 그 안에 상업적인 세계를 비판하는 메시지로 채운 이 영화, 이런 점이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사회에서 발언할 수 있는 자기만의 스피커를 가진 자가 이렇게 배짱을 부리는 것도 좋지 않은가? 자기가 쥔 스피커로 미친 소리를 떠드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렇게 아날로그적 루저들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허세에 찌들어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을 과시하는 멍청이들이 돈으로 타인을 기죽이려는 한심한 짓거리를 흉보는 감독과 그가 만든 영화, 유쾌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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