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거나 말거나, 극단적인 이 일이란.
'살림'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엄마가 고슬고슬 지어주시던 집밥에 30여 년을 길들여져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인정한 적은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식탁은 알아서 5첩 반상 이상 채워지는 곳이고, 국과 밥은 알아서 따뜻해지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뿐일까. 샤워를 아침, 저녁으로 해야 하는 여름날, 대충 닦은 수건을 세탁기에 던져놓기만 하면 깔끔하게 빨려서 햇볕 아래 짱짱하게 말라 곱게 게어 다시 수건장으로 들어가지는 줄 알았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거늘.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 야근하고, 손가락 마디마디 손목이 아프도록 타이핑을 하다 퇴근하는 회사생활에 비하면 '살림'은 왠지 달콤한 자두의 오동통한 엉덩이 끝부분을 베어 무는 듯한 꿈의 직장일 것만 같았다.
그랬던 내가 '살림'을 시작했다. 물론 회사생활은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결혼이란 데이트 후 아쉬운 이별의 끝만이 아니라 제법 예상치 못했던 많은 것들이 패키지가 되어 데굴데굴 굴러오는 것이었다. 결혼 2개월 차, 나의 살림 실력은 몹시도 미천해 회사로 쳤다면 수습기간 중 뺨을 맞고 회사에서 쫓겨났을 법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선 경악스러운 음쓰(음식물 쓰레기)의 세계란! 뒤돌아서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 친구를 어찌하면 좋을까. 아무리 양을 줄여서 요리한다 하여도, 양파 하나 썰어도 나오는 껍질부터 솥에 붙은 밥풀까지 긁어먹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도 슬프게 느껴졌다. 건조기라는 현대 문물이 있다고는 하나 두 사람 발붙이기에도 부족한 이 작은 집에 건조기는 사치다. 결국 쌓아두지 말고 바로바로 치우자는 나와 신랑의 약속. 맨 손으로 벌레도 잡고 음쓰도 마구 만지던 엄마의 레벨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강산이 60번 정도는 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음쓰 뿐일까. 주변 공사 덕분에 창문을 조금만 열어놔도 먼지가 하얗게 내려앉는다. 발바닥 아래 거칠게 비벼대는 먼지와 싱크대로 눈처럼 내려앉는 이 것들을 마주 보며 나는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분명 어제 닦았잖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살림의 투쟁. 다행히도 내게는 솔선수범 살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온 몸을 던져 닦고 쓸어주는 신랑이 있지만, 평일 내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두 사람에게 주말은 오로지 총체적 살림만을 위한 이틀이 되어버렸다.
살림, 살림, 살림
하거나 말거나,
'했거나'는 무의미한 이 극단적인 업무란 무엇인가. 미리 알았더라면 엄마의 '밥 먹어라' 소리에 나가보니 텅 빈 식탁을 보며 투정 부리지 말고 엄마를 도와 반찬이라도 꺼냈을걸. 미리 알았더라면 아침에 쓴 수건, 저녁에도 쓸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내 방 쓰레기 통 정도는 내가 비울 걸.
결혼은 속죄의 시간인가 보다.
아아 살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