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함께 멈춘 시간

두바이에서 맞닥뜨린 '전원 구조' 오보

by 김희욱

멈추지 않은 걱정


길거리에서 호떡과 함께 시작했던 행복 배달 프로젝트는 1년으로 한정했습니다. 프로젝트 종료 시점에 의도치 않게 세금 폭탄을 맞았습니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정대로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1년 동안의 노고를 달랠 겸 한국에 잠시 휴가차 방문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솔직하게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남은 비자 기간 2년 동안 취업을 준비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호떡을 판 저에게 진심 어린 걱정을 했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덴마크에서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의 무모한 도전이 멀리서 바라보는 누군가에게는 걱정거리가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두바이에서 마주한 비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덴마크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제 머릿속은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석사 기간 동안 생활비 마련에 집중하느라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기에 덴마크에 돌아가서 다시 취업 준비를 잘할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프로젝트 경험들을 페이스북에 일기장처럼 간직하기에는 아쉬움이 컸을뿐더러, 돌아가면 호떡 자전거 기물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막막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덴마크와 한국 사이에는 직항이 없었습니다. 저는 두바이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머리도 식히고 고민도 나눌 겸, 두바이에 사는 친구 피터를 만나러 갔습니다. 피터는 교환학생 시절부터 만난 한국 입양인 친구입니다. 덴마크 회사에서 두바이로 파견 근무를 가 있어서 경유할 수 있었습니다. 두바이 공항에 내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친구가 제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브루스, 소식 들었어? 지금 한국에서 페리가 가라앉고 있어서 배 안에 탄 사람들이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고 있대."


세월호 침식

오보가 준 혼란


소식을 듣고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세월호가 바다 한가운데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배는 점점 침식되고 있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친구 집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실시간 중계되는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친구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나눌 여력도 없었습니다. 저희는 세월호 소식에 대한 이야기만 했습니다.

뉴스에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이 떴고 그제야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친구와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1년간의 프로젝트와 덴마크 복귀 후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경유지였기에 오랜 시간은 머물지 못하고 곧, 두바이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을 때, 세월호 뉴스로 머릿속에 가득 찼던 진로 걱정은 어느 정도 사라진 듯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공유해 준 최근 소식은 달랐습니다. '전원 구조'는 오보였습니다. 사망자와 실종자 수가 다시 실시간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배 안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교 학생들도 타고 있었습니다. 배는 기울어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침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공항에서 한동안 발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오보

타국에서 맞이한 무기력함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구조 시간이 충분히 있었을 텐데, 왜 사망 실종자 수는 늘어만 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결국, 세월호는 침식되었고 안타깝게도 구할 수 있었던 304명의 목숨은 희생되었습니다.


덴마크에 돌아와서 남은 2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까마득했던 개인적인 걱정들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리셋되었습니다.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접한 소식이기에 당시의 무기력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무기력함과 슬픔을 덴마크 교민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당시 학생회를 운영하던 친구와 함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한인교회 강당을 빌려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고, 남겨진 가족들의 치유를 빌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멀리서 이 괴로운 일을 겪는 저희 모두의 슬픔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간식과 음료를 준비했고, 유가족 돕기를 위한 성금 모금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세월호 추모식 공지

멈춘 시간 끝, 호떡 자전거가 다시 길을 나선 이유


추모식에 참가한 덴마크 유학생, 교민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어서 덴마크의 안전 관리 시스템과 사회 구조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학업과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이 덴마크에서의 생활을 공유했습니다.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다시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추모식에 참가한 31명의 참가자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덴마크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 한국 사회의 안전 관리와 시스템 개선에 널리 공유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이 1년짜리 프로젝트의 기간을 연장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덴마크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덴마크에 더 많은 한국인들이 와서 경험하고, 그 경험들이 한국에 전달되면 세월호와 같은 안타까운 일들이 줄어들겠지라는 마음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멈추었던 호떡 자전거의 바퀴를 다시 돌릴 수 있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저는 프로젝트에 대한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습니다. 이왕 시작한 프로젝트, 더 잘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과연 새로운 임무를 안고 출발한 호떡 자전거는 덴마크 거리에서 어떤 변화를 마주하게 될까요?

다시 길거리로 달리는 호떡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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