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넣은 호떡의 탄생
타국에서 접한 세월호 참사는 저에게 큰 무력감을 안겼습니다. 덴마크 교민들과 추모식을 열고 덴마크의 안전 시스템을 나누며 깨달았습니다. 저는 덴마크 경험을 한국 사회에 널리 공유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명감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 사명감은 멈췄던 호떡 자전거의 바퀴를 다시 돌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저는 프로젝트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다만, 과거의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프로젝트 중단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지속 가능성이었습니다. 행복을 전달하는 배달원인 내가 스스로 생존해야 진정한 행복 배달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제 열정만으로 달려갈 수 없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바로 호떡의 상품성을 검증하는 일과 이동성 노점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길거리 장사에서 중요한 것은 가치입니다. 손님들이 돈을 지불하는 만큼의 가치를 음식에서 느껴야 합니다. 한국의 씨앗 호떡은 덴마크에서 낯선 음식이었습니다. 당시 한식 인지도가 매우 낮았습니다. '호떡'이라는 이름 자체가 현지 사람들에게 생소했습니다. 게다가 속재료가 문제였습니다. 호떡 속의 설탕과 씨앗은 덴마크 사람들이 길거리 음식에서 흔히 접하지 않는 재료였습니다.
철판 위에서 달콤한 냄새를 풍겼지만, 상품성이 너무 낮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추운 길거리에서 따뜻한 간식이 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맛을 알아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년 안에 그 믿음이 현실이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프로젝트 재개 전, 가장 먼저 한 일은 원인 분석이었습니다. 저는 덴마크 친구들에게 호떡이 잘 팔리지 않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한식에 관심이 많은 덴마크 친구의 이야기는 저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흔들었습니다.
친구: "브루스, 너의 선택은 알겠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빵 안에 설탕이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게다가 호떡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면 돈 주고 사 먹기 거부감이 들 수 있어."
저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습니다.
나: "아니, 덴마크에도 달콤한 페이스트리가 흔한데, 호떡이 왜 낯설다는 거야? 맛이 비슷해서 통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친구는 냉정하게 차이점을 짚었습니다.
친구: "페이스트리는 재료가 눈으로 보이고 덴마크 음식이라 거부감이 없지. 너 설문조사 했었잖아? 덴마크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한국 음식이 뭐였어?"
저는 설문조사 결과를 떠올렸습니다.
나: "응, 김치, 불고기, 비빔밥이 상단에 있었지."
친구: "설문조사에서도 김치, 불고기가 가장 위에 있는데, 왜 설탕 대신 김치를 넣지 않았어? "
나: "한국에서는 김치나 불고기를 빵이랑 먹지 않아. 밥이랑 먹지..."
친구는 덴마크 현지인의 시각으로 제 한국적인 편견을 깨 주었습니다.
친구: "덴마크에서는 주식이 빵이야. 현지 사람들도 한국 음식 하면 김치나 불고기를 떠올리는데, 호떡에 사용하는 게 뭐가 문제인데?"
1년 만에 안 팔린 이유를 알고 나니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나: "이 이야기를 왜 지금에서야 해주는 거야? 내가 1년 동안 길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친구는 간단히 답했습니다.
친구: "네가.. 나.. 한테 안 물어봤잖아!!!!!!!"
친구 말을 다 듣고 나니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저는 호떡은 달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덴마크 시장의 현실을 간과하며 설탕과 씨앗이 들어간 이 호떡이 언젠가는 유명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뼈아픈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언젠가는 팔리겠지'라는 희망 회로만 돌렸습니다. 인지도가 낮은 아이템을 손님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사업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내가 팔고 싶은 걸 팔지 말고 손님이 좋아할 만한 걸 팔아야 한다는 것과 내 아이템/아이디어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치를 부여해 주는 건 고객들의 몫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도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호떡 안에 김치가 들어간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되고 맛있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친구는 아이디어를 수용하지 못하는 저에게 일단 해보라고 독려했습니다.
친구: "생김치가 호떡과 안 어울리면 볶아 봐. 맛이 강하면 설탕이나 간장으로 조절해 봐."
여전히 납득은 되지 않았지만, 친구 말대로 실험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주방에 들어섰습니다. 김치 호떡 레시피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했습니다. 다른 야채나 당면을 섞어보기도 했습니다. 간은 설탕과 간장으로 조절했습니다. 현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나의 히트 상품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호떡 자전거에 강력한 시그니처 메뉴(김치 호떡)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동식 노점은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손님들에게 노출될 기회가 적었습니다. 저는 판매 방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매일 이동하는 방식 대신 고정된 장소에서 호떡을 팔고 싶었습니다. 마침 이동하며 판매했던 장소 옆에 토브할렌(Torvehallerne) 시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코펜하겐의 유기농 시장 콘셉트였습니다. 저는 시장 안의 세계 각국 음식 상점들을 보며 입점을 결심했습니다.
모아둔 돈은 많지 않았지만 시장 문을 두드렸습니다. 시장 매니저는 시장 콘셉트를 설명했습니다. 음식 종류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같은 종류의 음식으로 경쟁하지 않도록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매니저는 아직 한국 음식이 소개된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는 자리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이 허가에는 두 가지 요인이 기여했습니다. 첫째, 저는 코펜하겐 시에서 1번으로 인정받은 노점 허가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 당시 덴마크에서 김치가 '슈퍼푸드'로 소개되며 관심을 받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제가 시장에 소개하려던 김치 호떡이 매니저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김치 호떡이 탄생했습니다. 이동식 노점에서 고정된 장소, 코펜하겐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시장 중 하나인 토브할렌에 호떡 자전거 가게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기적처럼 문을 염과 동시에 호떡집에 불이 날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행복 배달 프로젝트는 이제 '생존'을 넘어 '성장'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제가 덴마크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행복 배달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