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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생활 Mar 21. 2016

문자, 인류 최고의 발명품


문자 이전에 말이 있었다


 ‘남쪽의 원숭이’라는 그 이름 뜻처럼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인류 최초의 조상인지 아니면 그냥 원숭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간에 이견이 많다. 하지만 기원전 약 350만 년 전에 나타난 걸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말을 하지 못했다는 건 확실하다. 그냥 얼굴 표정이나 손짓, 몸짓 또는 기쁨, 불쾌함, 공포 같은 느낌을 표현하는 소리 정도만 있었을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기원전 약 180만 년 전부터 나타난 호모 에렉투스(서서 걷는 사람)부터 아주 간단한 언어를 사용했을 걸로 추정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불과 도구를 사용했는데 도구 사용과 집단생활, 턱의 구조 등 여러 정황을 보면 최소한의 의사소통에 필요한 원시적인 말이 이때부터 생긴 걸로 본다. 또 어떤 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 시기 전부터 있었을 아이를 달래는 옹알이 종류가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말이라고도 하는데 옹알이를 언어로 봐야 할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어찌 되었든 문자 이전에 말이 있었고 말과 글은 인류가 진화하고 문명이 발전하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특히 문자는 정보와 지식을 넓고 길게 전하는 방법으로 인류의 문명 발달 속도를 한층 더 빠르게 한 자동차의 엔진과도 같은 것이었다. 도구 사용 기준인 석기, 청동기, 철기 삼시대 구분법과 별개로 문자 사용 전후에 따라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누는 것도 문자가 끼친 영향이 우리 인류에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최초의 문자 설형문자


 최초의 문자는 기원전 약 35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인이 만든 설형문자다. ‘설형(楔形)’은 한자로 쐐기 모양이라는 뜻이다. 글자 모양이 물건들 틈을 막거나 사이를 벌리는 데 쓰는 날카로운 V자 모양의 쐐기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 설형문자는 주로 점토판에 기록되었는데 시리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37만 점에 이르는 기록물이 발견되었고 현재도 출토되고 있다.


물건 틈을 막거나 벌리는 데 쓰인 쐐기,  점토판을 보면 이런 쐐기 모양의 글자들이 규칙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영국군 장교였던 헨리 롤린슨은 1833년에 이란에 부임했다가 설형문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후 20년 넘게 다른 고고학자들과 설형문자를 연구해 1857년에 설형문자를 다 해독한다. 발굴된 점토판들에는 천문학, 철학, 의학, 문학, 수학 등 여러 학문과 왕가에 대한 기록, 역사 등 높은 수준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또 인간의 창조, 방주와 대홍수 등 이름과 지명만 다를 뿐 성경에 있는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점토판의 기록들이 성경보다 먼저이기 때문에 성경이 과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화 내용을 흡수해 기록한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라크  텔로흐 지역에서 발견된 기원전 2400년의 점토판(왕에게 전투에 참여했던 왕자의 전사를 알리는 내용)


알파벳으로 이어진 문자의 어머니, 이집트 문자


 이집트에서도 상형문자가 만들어졌다.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쐐기문자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중에 만들어진 걸로 본다.) 예시로 긴 목의 기린은 '예언하다'를 의미했고, 깡충 거리며 뛰어노는 어린 염소는 '상상하다', 눈을 치켜뜬 악어는 '골칫거리'를 뜻한다고 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표현이고 또 그 시대에 맞춰 보면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프랑스의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이집트에 관심이 많고 19개 언어를 구사했던 언어 천재) 1882년에 해독한다



 이집트 문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집트를 정벌 중인 1799년, 나일강 주변의 로제타 마을에서 나폴레옹 군은 이집트 상형문자가 적힌 비석을 발견한다. 발견지역의 이름을 따서 ‘로제타석’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이 비석은 기원전 196년의 기록물로 고대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업적을 기리고 칭송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로제타 비석 전체는 더 크지만 부서진 일부 부분만 있다.


 이집트 문자를 ‘문자의 어머니’라고도 하는데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알파벳의 기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거의 그림 형태라 글씨를 빨리 쓰기 힘들어 이후 간소한 형태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집트 문자를 간소화 해 만든 기원전 1100년의 페니키아 문자가 히브리어, 아랍어, 그리스어의 기반이 되는데 기원전 800년 그리스에서 모음이 추가되며 초기 형태의 알파벳이 만들어진다. 이는 다시 로마로 전파되며 라틴어와 오늘날의 로마자(알파벳)로 발전하게 된다.


수 천년 간 끝까지 살아남은 중국의 한자


 대표적인 다른 상형문자는 중국의 한자다. 한자의 초기 형태인 갑골문자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기원전 1400년으로 추정된다. 다른 초기 문자들처럼 상형문자로 거북이 배딱지(귀갑)나 짐승의 어깨뼈(견갑골) 같은 곳에 글이 새겨져 있어 그렇게 부른다. 현재까지 15만 개 이상의 갑골문이 발견되었는데, 1903년 중국 고대 상나라 수도였던 은허에서 출토된 게 가장 오래된 것이다.


 2008년 중국 산둥대의 한 고고학자는 새로운 주장을 한다. 갑골문자보다 1000년 정도 더 앞선 시기에 소의 어깨뼈나 사슴, 코끼리의 뼈에 기록된 골각문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어 문자로 볼 수 있다는데 아직 공인되었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한자가 몇 천년의 세월 동안 소멸하지 않고 계속 문자로 발전하며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문명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중국 고대 상나라 때의 갑골문자(기원전 1200년 전)


 고대 초기 문자 중 이집트와 중국은 상형문자였지만 메소포타미아는 초기에 상형문자에서 시작해 쐐기(설형) 문자로 바뀌었다. 이집트 문자는 이후 소리를 표현하는 표음문자인 알파벳으로 남고, 한자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는 이집트 문자 계열에 밀려나 사라지고 만다.


한국의 최초 문자는?


 우리나라의 문자 역사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독특한데, 중국의 한자를 들여와 수천 년간 사용하다 자체적으로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라는 새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독자성을 본다면 세종대왕이 36세에 만들어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이 우리나라의 최초 문자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한글 창제 이유와 원리가 설명 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 간송 전형필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소실되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었다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만들지 않고 실제는 집현전 학자들이 만들었다고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종대왕이 친히 한글 스물여덟 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한글을 반대하는 신하들과 오고 간 논쟁을 보면 언어와 음운학에 대한 학식은 당대의 학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걸로 보인다.(세종대왕이 이룩한 여러 공적이 있지만 세종실록에서 훈민정음 하나만 세종대왕이 친히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20년 이상 집현전에 있었던 최만리의 한글 반대 상소에  "그대들이 운서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을 알며, 자모가 몇 개나 되는 줄 아느냐?" 라며 아예 앎의 깊이가 달라 말이 안 통한다고 답답해하는 듯한 마음을 비춘다. 이는 언어학적 수준이 월등한 우위에 있지 않으면 아무리 왕이라도 경륜이 풍부한 집현전의 수장격 이었던 학자에게 무시하듯이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정치적 논란이 확산되는 걸 피하고 유교와 중국에 대한 명분 싸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종대왕이 일부러 초점을 언어 쪽으로 돌리며 신하들에게 강경하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


과학과 철학의 조화, 훈민정음


 한글의 자음은 입과 입술, 혀 등 발음기관의 모양을 따라 만들고 모음은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하늘, 땅, 사람에서 본떠 만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발음되고 28자밖에 되지 않아 배우기가 쉬웠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와 원리까지 설명되어 있고, 과학과 철학의 요소가 잘 결합되어 만들어져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훌륭한 문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한글은 잘 쓰이지 않는 “ㅿ, ㆁ,ㆆ, ㆍ” 네 글자와 성조가 사라지고, 조선시대에 '언문'(상스러운 글자), '암글'(여자들이 쓰는 글)로 낮춰 부르기도 했으나 1910년대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이 ‘한글’(으뜸가는 글)로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인간이 그동안 수많은 훌륭하고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한 발명품들을 만들어 왔지만, 그중에 가장 최고를 뽑으라면 바로 문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이 사람과 동물을 구분 짓는 조금은 단순한 차이라면, 문자는 인류의 문화와 역사가 발전하는 씨앗이 되었다. 또 인류가 이룩한 모든 것들을 이어가고 더 풍성히 살찌게 해 주는 밥과 같기도 했다. 앞으로도 문자는 우리 삶 속에서 계속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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