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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Dec 07. 2021

내가 그 애를 죽게 놔뒀다

D-2(2021.12.24)



  R이 장례 마무리는 가족끼리 하도록 발인날은 가지 말자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무엇이든 하자는 대로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마 R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자연스럽게 못 가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쉽다. 그 애에게 가족이 몇이나 남아있었다고. 내가 갔어야 하는데.


  이틀이 지나자 정신상태가 나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인간이란 웃기다. 결국 이렇게 나아지고 만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주위에서 도와줬어야 하는데. 우울증이 원래 그런 거잖아."


  그냥 말 한마디일 뿐이지만, 비수로 꽂혔다. 내가 도와줬어야 하는데, 하고 나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했을 거다. 그런 말을 입밖에 낸 남자친구가 너무 미웠다. 그럼 너는 J 얘기를 하던 나에게 뭐라고 말했는데. 그런 말을 할 거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 진작에 하든가.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그 말에 내가 너무 괴로워하니 남자친구는 말을 바꿔 그런 뜻이 아니고, J의 남자친구나 가족이 돌봐줬어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봄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거였다. 내가 그 애를 죽게 놔뒀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별생각 없는 말로 큰 상처를 준 적이 있었겠지.



  J가 보고 싶다. 그 웃음소리가 그립다. 그렇지만 눈물은 많이 나지 않는다.


  오늘따라 글을 쓰는 것도 힘들다. 손을 움직이는데 손이 너무 무겁다. 다 싫다. 세상 모든 게 다 싫고 나도 싫고 인간도 싫다. 동물은 옳다. 아, 다 꺼져 진짜. 


  마음이 아플 때는 혼자 있다는 게 정말 별로구나.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까 어쩌면 더 힘든 것도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밤을 보내던 J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다고 싫은 사람이랑 같이 있을 수도 없고. 남자친구나 아버지는 의지가 되어주지 못했고 나와 R은 너무 멀리 있었다.


  조금 더 자주 볼 걸. 만나서 그냥 각자 핸드폰만 봐도 되니까 같이 있어 줄 걸. 사실 나는 J의 집이 싫었다. 무서웠다. 거기서 J가 귀신을 봤다는 게 꺼림칙했고, 그곳에 다녀오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멀기도 했고... 그래도 갈 걸 그랬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귀신 같은 걸 봤던 걸까.


  사후세계를 안 믿는 게 이럴 땐 독이다. 믿었으면 좋았을 걸. 그럼 네가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을 텐데. 왜 다들 신을 믿는지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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