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직원들이 그렇게 자주 바뀐다면서요?
칼같이 단정하고 깔끔한 손맛은 없다 뭘 해도, 옷을 입어도 가구를 들여도 공간을 찾아가도 슥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게 좋지 지나치게 깨끗하고 칼각이면, 내가 먼지처럼 흠이 될 것만 같아 부담스럽달까. 케이크를 자르면서, 라테아트를 하면서 알았다 흔히 말하는 디자인적인 요소, 내게 그런 재주는 부족하다는 걸. 가끔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인거니깐. 손으로 조물조물하는 재주는 덜해도 작은 것보다 큰 것, 좁은 곳 보다 넓은 곳을 구상하고 큰 그림 그리는 걸 더 좋아하는, 그럼에도 세심한 부분은 놓치지 않는 내 센스도 괜찮다고. 근데 성격에서는 좀 아쉽다. 특히 관계에서 칼 같지 못해 상처받을 때가 많기에.
라떼아트를 할 때마다 함께 일했던 한 친구가 생각난다. 주인이 라떼아트 못해서 메뉴에서 라떼를 뺐다며 수군거리던, 어느 순간 내가 스팀을 칠 때마다 잘하나 못하나 곁눈질로 평가하던, 나를 사장이 아닌 언니라 부르던 친구. 그때는 라떼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그 친구에게 잔을 내밀어야 했던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 입도 방정이다 원두 배전도가 약해서 라떼가 안 어울리기도 하지만, 내가 아트를 못한다며 우스갯소리로 얘기했었는데 그게 소문이 돌면서 자격지심이 됐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기엔 후자가 더 재밌었나 보다. 그 이후로 사람은 타인에게 많은 걸, 모든 걸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여전히 그러기가 쉽지는 않아 이것 또한 나의 숙제이지만.
인간은 참 간사하다 배움의 자리에 있다가 어느 정도 배움이 쌓이면 가르치는 자를 평가하는 자리까지 올라선다. 오만. 나도 그 나이 때는 더 했으니 할 말은 없다만, 그런 걸 느낄 때마다 내 자리의 역할을 그 정도밖에 하지 못하나 싶어 서글퍼지곤 한다. 꼰대 발언이지만, 이십 대 후반에 카페 파트타이머로 일할 때, 6개월 동안 창문 닦고 백 평짜리 매장만 쓸고 닦았다. 할 줄 아는 메뉴는 레시피 보며 시럽 넣고 탄산수 붓는 게 끝이었다. 외국 가서 카페에서 일할 수 있게 샷 내리는 걸 알려달라, 라떼 스팀을 알려달라 애원해도 쉬이 자신들의 경험치를 나눠주지 않았기에 그게 참 서럽고 야속했지만 지금에 와 생각하면 그것도 일리가 있다. 본인들도 힘들게 배워온 것일 테니 내가 그들의 자리를 쉬이 가로챌 순 없는 거다. 하지만 나는 꼭, 장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에게 오면 짧은 경험치지만 나눠줘야지 알려줘야지 싶어 모든 걸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이게 독이 되는 걸까 쉬이 밑천이 드러나니 쉽게 보이는 걸까 싶을 때가 있다. 여튼 스쳐지나간 그들이 머문 시간은 대개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이다. 그 기간이 마치 나의 유효기간인 것처럼.
떠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내 인생의 첫 직원은 5개월. 매장에서 남자 손님과의 스킨십을 시작으로 매니저로서의 역할을 지적했더니 다음날부터 잠수를 탔다. 모진 말을 했지만 못할 것도 아닌 말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이별에 당시 스스로를 지나치게 자책했었다. 그래서인지 최근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했던 근원이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그 친구의 인성 논란에 더 이상 자책을 멈추기로 했다. 일 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와 생각해보면 굳이 자책할 일도 아니었는데 아마도 처음이다 보니 좋은 사람, 좋은 사장이고 싶은 콤플렉스가 발동했던 것 같다.
두 번째 직원은 19살 새내기 친구, 급하게 자리를 메꾸느라 대학 입학 전 한 두 달 정도 일을 도와줬다. 맨날 새벽까지 술을 먹고 와 정신 못 차리는 날이 많아 함께 일하기 참 힘들었지만, 나 또한 그땐 그랬었기에 묵묵히 눌러 담았던 두어 달의 시간. 세 번째 함께한 직원은 아이 셋을 기르는 여사님. 아이들 등원하고 출근해서 마시는 커피 한잔이 참 행복하다던, 그럼에도 오랜 경력단절로 몸과 마음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힘들어하던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됐으나, 결국 이후에 들어온 MZ세대 친구와의 오해로 삼 개월 만에 이별. 네 번째 직원은 카페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개인 카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쉬엄쉬엄 일하고 싶다며 서너 달 짧게 다녀가셨고, 계신 동안 되려 내가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감사한 분으로 카페 오픈을 위해 또 이별.
다섯 번째 직원은 가장 애정 하는 마음이 컸던 친구, 요즘 세대를 대변하는 듯, 당당하지만 자기 할 일은 두말할 필요 없이 완벽하게 하는. 하고 싶은 것 많고 함께 있으면 기분 좋은, 긍정적인 이 친구를 참 좋아했다(물론 마지막에서야 나 혼자만의 착각임을 알았지만). 개인적인 일이 있어 떠난다고야 했지만 아무리 붙잡아도 붙잡히지 않아 어렴풋한 짐작으로는 약 한 달여간의 휴업기간을 지나며 내가 신뢰를 잃지 않았나 싶어 아쉬운 마음이 컸던 사람이다. 적은 시간 파트타임이지만 어찌 됐든 그들의 생계였을텐데, 미리 양해를 구했더라도 내 판단의 미흡함과 이 자리의 책임감을 다시금 되짚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마지막엔 오해가 있어 서먹하게 이별을 맞이해야 했지만 여하튼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고, 응원하게 되는, 인간적으로 애정했던 사람. 그리고 지금 현재 진행으로 함께하는 직원들까지, 쓰고 보니 일년 사이 정말 많이도 다녀갔다.
누군가 비아냥거리며 말한 적이 있다. 여긴 직원이 많이 바뀐다는 소문이 있던데- 하고. 한 번이면 족한데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서너번을 반복하기에 일부러 저러나? 내 자격을 논하는 건가 직원들이 왜 나갔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하나? 불쾌감이 들었지만 말기로 했다. 어차피 말해줘도 이 입장이 되어보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사실 모든 부정적 상황에서 자책이 앞서는 나로서는 직원들이 오고 나갈 때마다, 지난날의 나를 되짚어본다. 부끄러운 과거지만 위에 퇴사 사례들은 모두 내가 했던 행동들로 되돌려 받는 기분이랄까. 비인간적으로 동료를 괴롭히던 상사의 만행을 대표님 포함 전 직원에게 편지로 남기고 무단 퇴사를 해보기도 했고, 밤새 술 먹고 출근해서 회사에선 동태 눈깔로 모니터 앞에 앉아있기도 했고, 함께 일하던 동료와 맞지 않아 다투곤 했던 나와 다음 여정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배우며 투잡으로 일했던 시간, 하고픈 경험이 많아 잡고 또 잡으셨지만 냉정하고 정중하게 자리를 내놓았던 나까지. 한 날은 직원에게 이것저것 업무를 시키니 그럼 사장님은 노냐는 말이 돌아왔다. 띵-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말로 내뱉을 수 있지 싶어 황당했는데 돌이켜보면 나도 상사에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어 웃음이 났다. 곱씹어보면 모든 건 돌아온다 싶다. 내가 저지른 실수든 무지한 행동이든 말이다. 그럴 때마다 지난 날의 나의 사수가, 상사가 함께 떠오르고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여하튼 쓰고보니 직원들이 드나드는 것에 대한 변명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도 안다 직원들이 쉽게 들고 나는 이유, 상사가 실력이 부족하거나 인성이 별로거나. 조직관리, 인사관리, 자영업자 관련 책들을 여럿 찾아보았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실력이 부족해도 사람이 좋으면 그래도 붙어있고 인성이 쓰레기라도 실력이 특출나면 사람들은 붙어있는다고. 어느 것하나 가지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를 별로의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지만, 이 자리는 끊임없이 자책하고 채찍질을 하게 만든다. ‘결국은 니가 못나서 그렇다 실력을 키워라 인성을 길러라.’ 첫번째 직원을 보내며, 하고픈 말을 눌러담고 꾹꾹 누른 말들을 유연하게 꺼내는 법을 배워야했고, 감정에 휘둘리는 나의 변덕을 무디게 무디게 바꾸어야 했다. 세번째 직원을 보내면서 직원 간의 갈등 조정에서 실패한 나는, 이런 상황에서 내 역할이 어때야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했다. 이때 존경하던 이사장님이 자꾸 떠올랐는데 직원 갈등이 있을 때 마다 스스로의 낯빛이 검게 물들 때까지 들어주고 회유하고 조정해주던 그 분과 함께 일하던 시간이 참 그리웠다. 사람과의 관계, 아니 직원과의 관계에서 인간적이고 싶은데 어느 선까 지라야 하는지 모르겠고 칼같이 선을 긋고 싶은데 냉정하기가 쉽지 않다 조언을 구할 곳고 한탄을 할 자리도 마땅치 않은데다 언제든 그들이 원할 때 떠나보내야하는 입장에서 여전히 쿨하지 못해 바짓가랑이를 붙잡을만큼, 반복되는 이별은 힘들고 감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카리스마는 없고 마음을 다 열어 내보인다.
근로관계에서 가장 깔끔한 건 출퇴근시간만큼의 노동을 받고 대가를 지급하는, 그 이상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라지 않는 이 정도의 관계가 이상적이라지만, 하루에도 수백 번씩 왔다리갔다리 하는 이 사람 마음을 컨트롤하기란 참 쉽지 않다. 이제는 1인 사업자의 ‘혼자 하는 게 속 편해요’ 라는 말을 뼈저리게 공감한다. 일이 힘든걸 넘어 사람이 힘들다는 말이 뭔지 이제는 알겠다. 지금은 더 나은 서비스, 맛, 수제, 정원, 디저트 등 모든걸 내가 하고싶고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내 몸이 3개라면, 이란 가정을 놓고 직원들에게 나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만 향후 계획은 1인 운영체제로 바꿔 다시 도전하려 한다. 적어도 내 그릇이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준비가 될 때 까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험담은 만인의 기쁨이라고. 잘해줘도, 못해줘도 돌아오는 건 험담이란 걸 알게 됐을 때 인간적으로 굉장한 서운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고 이후로는 쉬이 마음 열기가 어렵기도 했다. 혹자는 조직 내 뒷담화의 시작이 분위기를 흐리는 미꾸라지의 시초라 잡아 내보내야 한다 했지만 미꾸라지를 잡으려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너무도 한심해 그냥 두기로 했다. 그들도 어차피 다 돌려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기도 했고. 여하튼 라떼아트를 논한 친구의 말은 자격지심이 되어 나 스스로를 노력하게 만들어줬고 언젠가 꼭 제대로 된 라떼 한잔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남았을 뿐이다.
여튼 이래나 저래나 이 자리는 외로운 자리가 맞다 잘해야 본전이라 같은 처지의 사람이랑 쏘주잔이라도 부딪치며 조언을 구하고, 나또한 뒷담화로 털어버리고 싶지만 내 주변에 어찌 같은 처지가 하나도 없는지 그것도 참 야속하다. 생각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머릿속은 언제나 복잡하고, 몸이 세 개가 아니라 항상 아쉽지만 그럼에도 지금껏 앉아있던 근로자의 자리 보다야 낫다, 사실 이 자리는 앉아있을 틈이 없지만 모든 행동에 있어서 수동적이지 않을 수 있고, 고난의 연속이지만 지루하지가 않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회사는 안 가기로 마음먹었다 갈길은 아직도 한참 멀고 모든 길이 과정이라고 여긴다 언젠가 이 일을 마무리할 땐 뭐라도 배우고 성장해있을 테니까. 그럼 다음 도전에는 지금보다 큰 내가 헤엄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