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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Nov 01. 2019

여행은 우리가 행복하면 최고 아닐까?

남이 정해준 여행이 좋은 것만은 아니야 

바람이 선선하다. 하늘은 화창하고 푸르다. 가을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좋아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중에 가을은 언제나 나에게 뒷전이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계절은 여름과 겨울이었다. 여름은 물놀이, 겨울은 눈썰매라는 어린이 입장에서 최고의 즐길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대부터는 봄이 좋아졌다. 벚꽃과 함께 새 학기 캠퍼스를 거니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설렘이 함께 찾아왔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 후로 눈물 콧물 찔찔 흐르는 봄이 두려워졌다. 


반면 가을은 찌든 듯한 더위나 살을 에는 추위가 없다. 미세먼지도 없으니 활동하기도 좋다. 나들이나 가족여행이라도 떠나기 최고의 계절이다. 혼자였다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사랑하는 가족들 곁에서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10월은 매주말 가족들과 인근에 여행을 다녀왔다. 나름 딸아이에게 역사책을 읽어주고, 책에 나오던 장소와 유물을 보여주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도 학창 시절에 역사에 흥미가 있었던 터라 딸아이에게 일화나 인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줄 수 있었다.

 

"아빠는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아요?"

"음.. 아빠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했어"


딸아이 앞에서 어깨도 한번 으쓱할 수 있어 좋았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예쁜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즐거웠고 행복했다. 사진 속의 우리 가족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기까지 우리의 여행은 완벽했다.




그런데 아쉬움은 여행 다녀온 후에 밀려들었다. 새로 채용한 직원 중에 교육업계에서 오래 일했고, 자녀 교육에 대한 철학과 노하우가 풍부한 분이 있다. 그 분과 유아가 읽어야 할 책, 유아일 때 함께 가봐야 할 여행지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가봤던 곳을 추천하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지난주와 지지난주에 역사책을 읽고 가족들과 그 지역에 놀러 다녀왔어요"

"그래요? 혹시 OO는 가보셨어요? ㅁㅁ에서부터 △△ 순서로 돌아보면 좋아요. XX은 몇 층으로 되어있는지 아세요?


거의 역사학자나 해설 자급 지식을 뿜어내며 나에게 질문을 해댔다.


"아뇨. 거긴 못 가봤어요"

"가서 사진만 찍고 오신 것 아니에요?"

"네, 사진 찍고 즐겁게 놀다 왔어요"

"에이, 여행 헛걸음하셨네. 그러면 안돼요. 아이한테 가르쳐줘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다소 불쾌한 감정이 들었으나 표현하지 않았다. 직원 딴에는 좋은 팁을 알려준다고 신이 나서 설명해준 건데 기분 나빠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즐겁고 행복하게 잘 놀다 왔는데.. 여행 헛걸음을 하셨네마네 하는 것은 순전히 당신 생각이지'


어찌 보면 무례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닌 걸 알기에 그냥 넘어갔다. 자기 아이 교육시킨 방법이나 노하우를 알려주었지만, 기분이 상한 터라 곱게 들리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자신의 자랑도 섞어놓았다. 더 대화를 나누면 서로 불편해질 것 같아서 자리를 피했다.


"저 빨리 처리할 게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업무 마무리하시고 퇴근하세요"




그날 저녁 아내에게 물어봤다. 


"우리 지난주랑 지지난주 여행 갔을 때 어땠어?

"엄청 좋았지. 우리 사진 찍었을 때 표정을 봐"

"그렇지? 우리 엄청 즐거웠지?"


그제야 안도감이 든다. 기분이 다시 좋아지고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여행은 우리가 행복하면 최고 아닐까?



※ 자기가 학창 시절에 수학이랑 과학을 잘했고, 그래서 자녀들도 수학, 과학이 2등급이라 어찌 자랑을 하던지..

S대 물리학 박사 받은 친구, 스탠퍼드에서 박사 받은 친구도 자기가 수학, 과학을 잘한다고 한 번도 자랑을 안 하던데.. 역시 어설프게 잘하는 사람이 자랑을 하고 싶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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