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배신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 처럼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생각에 배신당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혹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일을 당하게 되면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상실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이 일상에서 느끼는 허탈함은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자주 겪게 되는 감정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결과와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예측하고 대비해 가며 살아보지만, 엉뚱한 결과를 번복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큰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막상 당하고 나면 한동안 뒤통수를 긁적거리게 된다.
돼지갈비의 정체
베트남 직원 둘이 집 앞이라며 전화를 했다. 일도 잘하고 평소에 나를 잘 따르는 친구들이다. 뭔가 따로 할 말이 있거나 부탁할 것이 있는 모양이다. 배가 고프다기에 바비큐 먹으러 갈래? 했더니 네, 좋아요를 합창했다. 더운 날씨에 불까지 끌어안고 식사를 해야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지만 베트남 직원들은 한국식 바비큐를 매우 사랑한다.
이미 시간이 늦었고 마땅히 생각나는 곳도 없기에 근처에 있는 한국 식당으로 갔다. 오가며 보기는 했지만 가본 적은 없는 곳이다. 식당 안은 이미 거의 만석이었고 손님 대부분은 베트남 사람들이었다. 최근 이곳 푸미흥 지역의 추세가 그런 것 같다. 어느 정도 살만한 베트남 사람들이 들어와 집이든 식당이든 한국 사람들을 대체하고 있다.
베트남의 싼 인건비 덕분인지 어느 식당을 가나 어린 종업원들의 수가 많다. 이 식당 역시 앞뒤로 식당 이름이 커다랗게 새겨진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맞추어 입은 종업원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우왕좌왕 몰려다니는 게 썩 잘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다. 주방 쪽에는 서너 명이 모여서 잡담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집단 토론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매뉴얼이 아니라 토론의 결과에 따라 움직인다. 교육을 시키고 시스템을 만들어 줘도 결국은 그때그때 본인들끼리 토론하고 결정한 방식으로 한다. 그래서 성격 급한 한국 사람이 보기에는 비효율적이고 느리다.
돼지갈비 3인분과 계란찜 한 개, 그리고 생맥주와 콜라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반복해서 주문 내용을 확인한다. 꽤 철저하게 체크하네? 평소라면 내가 했어야 할 수고를 알아서 해주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만약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엉뚱한 메뉴가 나오거나 계산할 때 허망한 입씨름을 해야 한다.
띄엄띄엄 밑반찬이 깔리고 잠시 후 작은 접시에 담긴 메인 메뉴가 나왔다. 그런데 그걸 들고 온 종업원이 가까운 쪽에 앉은 베트남 직원에게 뭘 자꾸 설명한다. 아니, 설명이라기보다는 거의 교육하는 분위기였다. 돼지갈비 3인분이라고 확인하는 거겠지. 얼핏 보기에 양이 좀 적어 보이는데 대응하던 베트남 직원이 다른 말이 없길래 그런가 보다 하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봐야 돼지갈비 일 테니까. 우리가 다 아는 그 돼지갈비 말이다.
옆 테이블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술이 얼큰해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 가족들로 보였다. 파란색 플라스틱 양동이에 얼음과 타이거 맥주 캔들이 둥둥 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마친 듯 자리를 마무리하려는 분위기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밤 10시만 돼도 서둘러 귀가한다. 여전히 머리 위쪽으로는 매캐한 연기가 천장에 가득하다. 에어컨이 없는 오픈된 식당이기 때문에 바깥 날씨에 숯불의 열기까지 더해 오히려 식당 안이 더 덥다.
숯불이 여전히 오지 않는다. 급한 건 내 사정이고 이 사람들은 자기 속도대로 움직인다. 언젠가는 주겠지 하며 기다렸다. 서두르거나 재촉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기다리다가는 오직 나만 계속 기다리게 된다. 베트남에서는 이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 순간 나의 시선에 뭔가가 들어왔다. 남자 종업원 한 명이 손님들이 이미 먹고 떠난, 아직 치워지지 않은 테이블에 가더니 숯불 위에 올리는 고기 굽는 철망을 들었다. 그 위에 남겨져 있던 것들을 툭툭 털어 낸다. 그 철망을 요리 저리 살피면서 싱크대로 가져가더니 수돗물에 대강 씻는다. 물기를 툭툭 털어서 그걸 가지고 우리 테이블로, 내 눈앞으로 오고 있다.
대체 손님이 얼마나 많았으면 깨끗이 세척해 놓은 그릴이 남아 있지 않을까. 원래 위생 관념이 그렇게 철저하지 않은 나라니까 바쁘면 그럴 수도 있을 거야. 그래도 씻기는 했잖아. 그냥 못 본 척하자.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드디어 음식과 숯불, 그릴이 세팅되었다. 그런데 불 위에 고기를 올리려고 접시에 담긴 고기를 집게로 든 순간 뭔가가 이상했다. 보통 돼지갈비는 생고기를 양념에 재워서 나오기 때문에 고기와 양념이 버무려져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불규칙한 크기로 커팅된 슬라이스에 하얀 비곗덩어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위에 간장 소스 같은 검붉은 액체가 어설프게 부어져 있다.
아까 종업원이 접시를 들고 와서 무슨 얘기를 열심히 했을 때 집중해서 듣고, 살펴보고, 확인했어야 했다. 당연히 '돼지갈비일 거라' 생각하고 잠깐 방심한 대가는 혹독했다. 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위의 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해야 했고, 비계 타는 독한 연기를 덤으로 마셔야 했다. 돼지갈비가 이미 떨어졌지만, 막판에 주문이 들어오자 주방에서 남아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대충 모양을 갖추어서 내보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이 가게의 사장은 이런 상황을 혹시 알고 있을까? 문득 사장 얼굴이 궁금해졌다. 안쪽 구석 자리에 앉아서 매출 전표 뭉치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집에 한국 사람 손님이 거의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나 같이 얼떨결에 들어오는 한국 사람 말고는 두 번째 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식 돼지갈비가 무엇인지 모른 채, 단지 한국 바비큐 식당이라고 믿고 들어오는 베트남 사람들조차 머지않아 점점 그 수가 줄어들 것이다.
컴플레인할만한 가치를 못 느꼈다. 직원들 앞에서 시비가 붙는 모습을 보이기도 싫었다. 분명 맞다고 우길 것이고 결국 내 부주의로 결론이 날 것이다. 서둘러서 계산을 하고 그 식당을 나왔다. 상한 기분도, 옷에 밴 냄새도 아까 남자 종업원이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 툭툭 털어 버렸다.
그나저나 직원들은 얼마나 배가 고플까. 다른 식당으로 가자고 했지만 다들 연기에 배부르고 이상한 고기에 입맛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바로 근처에 있는 베이커리에 들러 조각 케이크 하나씩을 사들고 G*25에 들어가 코코넛 음료와 함께 두 번째 저녁 식사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망고 스무디를 먹기 위해 카페에서 열심히 주문해 보지만 처음 보는 음료가 나오는 것은 어쩌다 한 번 실수라고 친다. 거스름돈을 주지 않고 버티는 택시 기사도 그냥 팁으로 줬다고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이날 저녁 식사는 최악이었다. 또 당했다. 한국 음식을 하는 식당이고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베트남 직원들에게 낯이 뜨거웠다.
귀신이 산다고?
베트남에 살다 보면 유형적인 것이든 무형적인 것이든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물론 한국에서도 여전히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이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은 차이를 느끼게 된다.
물건에 붙은 스티커는 여간해서는 깔끔하게 떼어내기 어렵다. 플라스틱 용기를 만질 때는 마무리가 거칠고 딱딱해서 손을 베지 않게 조심해서 열어야 한다. 치킨은 튀김옷이 거칠고 두껍기 때문에 입안을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비닐 포장은 절취선이 그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자르기 쉽지가 않기 때문에 가위는 항상 옆에 두고 살아야 한다. 한 번은 이런 소소한 디테일 결핍이 귀신 소동으로 비화될 뻔한 일이 있었다.
집 청소는 주말을 이용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다. 방 두 개, 욕실 하나, 거실 겸 주방의 전형적인 투룸 구조에다 혼자 사는 작은 집이라 사실 특별히 청소할 것도 없다. 그런데 매번 청소할 때마다 이상한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무심코 그러려니 했으나 같은 일이 복될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뭐야, 이 집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들락거리나? 시간이 갈수록 의문을 넘어서 일종의 공포심 같은 걸 느꼈다.
집이 넓지 않아서 바닥 청소는 빗자루로 쓸어낸다. 나는 평소에도 좀 심하게 깔끔한 편이라 늘 집안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한다. 따라서 주말에 바닥 청소를 한다고 해서 특별히 쓰레기나 먼지가 나올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항상 먼지 부스러기 같은 것이 잔뜩 쓸려 나온다. 색깔은 갈색이고 쉽게 날아다니며 모양이 톱밥 비슷했다.
처음에는 이 집이 낡은 아파트라서 오래된 가구들이나 갈라진 벽 틈 사이에서 먼지나 부스러기가 부서져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집을 수선도 하지 않고 세놓는 집주인과 이런 집을 숙소라고 얻어놓은 회사 담당자를 탓했다.
내가 불만을 털어놓으니 직원들은 그래도 명색이 아파트인데 그 정도라면 아파트가 붕괴될 위기라면서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당연히 농담이겠만 그 집에 귀신 사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귀신이 나 없는 사이에 놀다가 이렇게 어지럽히고 간다? 베트남에는 은근히 귀신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실 얼마 전 오픈한 3공장에도 귀신이 산다고 베트남 직원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일단은 내가 움직일 때마다 정체 모를 이물질들이 내 코와 폐 속으로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니 숨쉬기조차 부담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더 그 이물질들을 쓸어내고자 더 열심히 빗자루질을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체 모를 가루들은 반복되어 나타났으며,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의구심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떤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그것들은 갈색이며 청소할 때마다 매번 거의 일정한 양이 나온다. 그리고 평소에는 발바닥에 밟히거나 먼지가 날리거나 하지는 않고 청소할 때만 쓸려 나온다. 그렇다면 혹시?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빗자루를 들고 베란다에 나가서 털어보았다. 갈색 먼지들일 날렸다. 전에도 빗자루는 털었고 먼지가 날렸지만 그 먼지는 방을 쓰는 과정에서 빗자루에 묻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빗자루를 방바닥에 살살 두드려 보았다.
이럴 수가! 범인은 몰래 들락거리는 사람도, 귀신도 아니었다. 빗자루였다. 청소할 때마다 쓸려 나오던 갈색 먼지 부스러기들은 싸리인지 갈대인지를 엮어서 만든 빗자루, 이놈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열심히 청소할수록, 빗자루질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이 떨어져 나왔겠지.
또 당했다. 허탈하고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빗자루를 이렇게 만들지? 그리고 어떻게 이런 걸 대형 마트에서 버젓이 팔고 있지? 나는 또 어떻게 이걸 몇 달 동안 모를 수가 있지? 귀신은 무슨!
문제의 빗자루는 롯ㅇ마트에서 샀다. 롯ㅇ마트는 현재 베트남 전국에 15개 대형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객력이나 매출이 좋아 성공적인 진출로 평가되고 있다. 바로 집 근처에 WIN MART 같은 베트남 토종 브랜드 매장도 있지만 간단한 식료품이나 생활 소모품을 제외하고는 차로 약 30분 거리의 이 한국 대형 마트를 이용한다. 그만큼 그 브랜드의 로열티, 시스템과 신뢰성을 믿기 때문이다.
이 빗자루를 구매할 당시 선택지는 플라스틱으로 된 것과 싸리인지 갈대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천연 재료로 보이는 빗자루, 둘 중 하나였다. 가격차이도 거의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천연 쪽을 카트에 담았다. 천연 재료라니까. 그런데 이 선택이 나를 3개월의 시간 동안 미스터리 속으로 빠뜨렸고, 청소를 하면 할수록 호흡기 건강에 더 해를 끼치는 어이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한국이라면 청소기를 썼을 테니까 이런 일이 생길 리 없겠지만, 이곳은 혼자 사는 좁은 집이라 청소기 까지는 필요 없다. 근처 베트남 마트에 가서 새로 플라스틱 빗자루를 샀다. 너무 무거워 손목이 아프기는 했지만 더 이상 문제의 부스러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무려 3개월 만에 수수께끼가 풀렸다. 문제는 디테일이었다. 제조자와 유통업자는 품질보다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소비자도 어느 정도 하자는 그냥 넘어가는 악순환은 생활의 질을 떨어뜨린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는 매장에 유통 기한이 경과한 상품이 버젓이 진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고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숨 쉬는 공기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이제라도 다행이다. 베트남에서 사는 동안 일상에서 만나는 이런 허탈한 일들, 아무리 그래봐야 전부 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미리 걱정할 필요 없이 '그러려니'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또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