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빨리 입금시켜 주세요. 다른 사람한테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돈입니다. 다시 직장을 구하는 동안 월세도 내고 생활비도 써야 합니다."
본인과 연관된 사건이 완전히 정리될 때까지 지급을 보류하라고 지시했었는데, 그 월급을 입금해 달라는 요구이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란 나를 지칭하는 것이다. 적반하장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회사 차원에서 정리되는 며칠 동안 베트남 직원A는 이런 메시지를 나와 경리회계팀 담당 직원한테 여러 차례 보내왔다.
막 베트남에 들어와서였다. 전반적으로 회사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회사가 돌아가나 싶을 정도였다. 사람 머릿 수만 많다고 해야 하나? 먼저 직무 분석을 새로 하고 이에 맞게 조직과 업무 분장을 조정하는 한편, 직무 교육을 진행했다. 틈틈이 직장 예절 교육도 병행했다. 거의 BPR 수준이었다.
대표는 베트남의 펀짬(phần trăm) 문화를 언급하면서 회사 지출의 20~30%는 새나가고 있는 것 같다며 이 부분에 주목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펀짬은 일종의 리베이트 비슷한 개념으로 어떤 계약이나 물품 구매를 할 경우 결제 금액을 부풀린 다음, 일정액을 상대방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되돌려 받는 행위이다. 물론 베트남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고 한국이라고 전혀 안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지출 내역을 점검하다 보니 실제로 우려할 만한 상황들이 감지되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한바탕 비가 퍼붓고난 오후였다. 비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여있는 바깥공기는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심각한 표정을 한 베트남 직원B가 서류 몇 장을 들고 내 방으로 쳐들어왔다. '드세 보인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싸울 때 큰 목소리로 무섭고 끈질기게 싸운다. B는 근속 연수가 가장 길고 대표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으로 한국어 수준은 중급 정도였다. 다낭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으나 대표의 지시에 따라 당분간 호찌민 사무실에 지원 나와 있는 중이었다.
회사 계정으로 운영 중인 베트남 온라인 쇼핑몰 쇼피(SHOPEE)의 지갑에 들어있는 회사 돈을 A가 개인적으로 무단 사용했다는 것이다. 경리회계를 담당하는 직원이 회사로 입금 신청을 하기 위해 내역을 살펴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한국 직원인 C부장이 온라인 쇼핑몰 부문은 자신 소관이니 신경 쓰지 말라며 다른 사람의 접근을 차단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몇 달 전 C부장이 퇴사하고 그가 구성한 팀원들이 흩어지면서 비로소 관리자 페이지에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C부장은 대표가 추진하던 한국의 숨*나 크*과 유사한 '전문가 프리랜서 온라인 마켓 프로젝트'를 위해 대표가 직접 영입한 인물이다. A는 이 프로젝트 관련 인원으로 입사한 C부장 팀의 한 명이었다. 그동안 그들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별도 회사로 독립해 나갈 예정이며 C부장이 사실상 자기들의 사장이라며 무소불위의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이런 민감한 사안은 베트남 직원들에게 맡기기보다는 직접 나서서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전부 사실이었다. 회사로 입금 처리했어야 할 판매 대금 약 800만 동을 옷이며 화장품, 심지어 이불까지 사면서 개인 돈처럼 써버렸다. 배송지를 조회해 보니 대담하게도 2층 프로젝트팀 사무실이었다. 사용 내역이 C부장 퇴사 이후 약 3개월에 걸쳐 있었으므로 C부장은 직접적인 혐의에서 제외되었다. 게다가 발생한 주문 건을 배송하지 않아 매출을 취소당한 경우가 여러 건 있어 정작 담당자로서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었다.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회사의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나 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직원들에게 입조심을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들었는지 A는 내가 자신을 조사하고 있는 낌새를 알아차렸다. 무단결근을 계속했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아마도 며칠 후 다가오는 월급날에 돈만 받으면 그대로 계속해서 안 나오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상황이 정리돼서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출근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의 의도대로 급여를 수령하고 그대로 잠수해 버리면 해결 방법이 복잡해진다. 먼저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급여 지급을 보류하도록 했다. 무단결근하고 있다는 통지를 보내고 그 근거를 확보했다. 해고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베트남 노동법은 한국 못지않게 노동자 보호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는데,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나중에 뒤통수를 맞는다. 특히 외국 기업의 경우 문제를 일으킨 직원이 노동법 위반과 권리 침해 사실을 공안에 신고하면 오히려 회사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만약 이 상태로 월급날 급여 지급을 하지 않는다면 임금 체불로 역공을 당할 수 있다. 본인의 횡령 혐의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할 것이다. 결근 3일째 되는 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A가 노리는 것을 정면으로 건드려 보기로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낸다는 직원의 휴대폰으로 '나와서 이 문제에 대해 해명하지 않으면 급여가 지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러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A로부터 답이 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2일 후에 나가겠다.'라고 했다. 입원은 당연히 거짓말 일 테고 월급을 언급하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통역 직원 한 명, 사건 당사자인 A,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옥상에 있는 직원 휴게실에 마주 앉았다. 반바지 차림의 A는 소파에 다리를 끌어올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무례하기 짝이 없지만 그건 한국 사람의 관념이다. 이곳 사람들은 그런 걸 별로 개의치 않는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할 겁니다."
"네."
"쇼피에 일어난 일에 대해 할 얘기가 있나요?"
빠져나갈 궁리를 하거나 다른 핑계를 둘러대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압도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심한 언행을 하면 그걸 문제 삼을 것이 뻔하니 조심해야 한다. 이런 리스크 관리는 이 나라에서 무탈하게 회사를 운영하려면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돈이나 사람 관계가 결부된 다소 민감한 사안일 경우 살얼음 판을 디디듯 조심해서 대응해야 하고, 느닷없이 얼음판이 깨져 물에 빠질 경우까지 대비하고 있는 것이 현명하다. 그들은 이 나라 국민이고 나는 노동허가증과 임시거주증을 받은 '돈 많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했나요?"
그를 쏘아보았다. 그는 내 눈을 마주 보지 못한다. 이 정도면 상황을 장악한 듯하다. 하지만 먼저 확실한 자백을 받아 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쓴 돈이 전부 얼마인가요?"
"400만 동 정도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C부장 지시로 쇼피 지갑에 있는 돈의 일부를 광고비를 지출하였는데 결재도 필요 없었고 아무도 신경 안 쓰길래 이후 조금씩 개인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400만 동이 전부 인가요? 내가 자료를 다 가지고 있어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를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단호한 입장을 보여 줘야 한다.
"계속해서 일을 같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정리할지 문제는 지금부터 A가 하는 걸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서면으로 경위서를 작성해서 제출하세요. 한치의 거짓 없이 솔직하게 적어야 합니다."
특히 이 나라에서 '서면'의 증거 능력은 절대적이다.
"다음 주까지 제출하겠습니다."
"안됩니다. 앞으로 3시간 주겠습니다."
2시간쯤 지나서 A가 자필 경위서 한 장을 달랑 들고 왔다. 공적으로 사용한 금액이 대부분이며 개인적으로 사용한 금액은 거의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구매 내역과 배송지를 조회한 내역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반성의 기회를 주겠고 또 거짓말을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하자 그제야 사실은 자신이 쓴 금액은 800만 동 가량 된다고 실토했다.
그런데 경위서를 다시 작성해 온 A가 이번에도 다리를 소파 위로 끌어올려 양반 다리로 앉더니 아무 말없이 한동안 정면을 응시한 채 멍하게 있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된 이상 자신도 억울한 얘기를 하고 싶다며 작심한 듯 회사와 직원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끈기 있게 들어줘야 한다.
본인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 어떤 직원은 유급 휴가를 주었는데 본인은 무급 휴가로 처리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했다. 차별적 대우를 받았다는 주장이겠지만, 직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코로나 휴가를 신청하자 대표가 어느 시점 이후에는 무급으로 하라고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프로젝트팀 직원 두 명이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할 때 판매 업자와 짜고 견적 금액을 부풀려서 200만 동 가량의 차액을 편취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자신의 상사였던 C부장의 잘못된 행태를 성토하기도 했다. 회사 또는 다른 직원들에게로 문제를 확대시켜 개인 비리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보였다. 물타기 수법이다.
퇴근 전까지 성실하게 작성한 인수인계서와 사직서를 제출하면 급여는 지급하는 쪽으로 대표와 상의해 보겠다고 하자 얼굴에 화색이 돌며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의욕이 넘치는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아직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이다. 학교교육이나 가정교육이 좀 더 이루어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측은한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A는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A를 본지는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평소 이미지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2층에 내려갔다가 책상에서 손톱을 깎는 행위를 목격하기도 했고, 주말에 자발적으로 판매 지원을 나간 것이 특근 수당을 챙기려는 목적이었을 뿐, 딴짓으로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는 다른 직원의 평가도 있었다. 그렇다고 신규 프로젝트 팀원으로서 다른 특별한 역량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변상을 시키고 공안에 사건을 넘겨야 하겠지만,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몰라고 했다. A의 평소 성품으로 미루어 보아 나쁜 마음을 품고 자신이 담당하던 온라인 매체에 비방 댓글 같은 걸 달아 회사에 해코지를 할 소지가 있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주장이나 다른 직원들을 걸고 넘어가려는 꼼수도 엿보였다. 또 따지고 보면 그 위의 관리자인 C 부장이 더 문제이고 관리 책임 또한 적지 않다. 다른 직원들의 개입은 간섭이라며 관여를 막아 놓고 막상 본인은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함으로써 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거나 사실상 부하 직원의 부정행위를 방관한 것이다.
대표의 의견도 적은 돈이고 창피한 일이니까 이 정도에 마무리 짓자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없었던 일로 하자길래 이런 직원을 다시 출근시키면 나쁜 사례가 된다고 적극 반대하였다. 대표가 신뢰하던 C부장의 실망스러운 진면목이 드러나자 이를 최대한 덮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인사팀장과 경리회계 담당을 불러 A의 경위서, 사직서, 인수인계서, 무단결근 근태계를 받고 지난달 급여를 지급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직원들 말에 의하면 퇴근 시간 무렵 A가 큰 박스를 들고나가길래 열어보니 회사 제품이 잔뜩 담겨 있었다고 한다. A는 마지막까지 회사 물건을 훔치는 도둑질로 자신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뒤, 모델 에이전시에 지급할 돈을 지급하지 않고 A가 중간에서 가로챈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증빙 없는 현금 거래를 선호하는 베트남 상거래의 관습적 특성상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그 금액이 적지 않았다. 가로챈 돈 전부하고 지난번 횡령했던 돈까지 변상하도록 했다. 이번에는 자칫하다가 진짜로 공안에 잡혀갈 수도 있다고 판단했는지 순순히 전액을 토해냈다.
손해를 전부 복구했고 이 일이 더 이상 이슈화되는 것은 회사에 이롭지 않다는 판단에 A를 공안에 넘기지 않고 모든 상황을 종결했다. 최악의 경우 한-베 직원 간의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사건이 표면화된 이후 베트남 직원들은 C부장이, 한국 직원들은 A가 부끄럽다며 엄벌을 요구하는 등 한동안 회사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이 나라에서 기업을 하려면 항상 잠재되어 있는 이런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부디 A가 자신을 선처해 준 대표에 대한 고마움과 이번 일로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