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산 COVID19

코로나 특효약은?

by 화문화답

역시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거였다. 이곳에서의 삶은 늘 그래야 한다. 잠깐이라도 방심하거나 무심코 지나치면 항상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일이든 생활이든 마찬가지이다. 그걸 알면서도 막상 잘되지 않는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2년 반이 지나도록 무사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제의 '순간의 방심'에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너란 놈, 끝까지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여러 도시가 봉쇄되었고 양성이 나오면 격리 수용소로 냅다 실어가 버리는 살벌한 분위기였다. 반항하는 사람을 테이프로 둘둘 말아 덮개도 없는 군용 트럭에 태우기도 하고, 남녀 구분 없이 7명 단위로 끊어 한 방에 집어넣는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PCR 검사소에서 체온이 높은 사람이 발견되면 핸드마이크 사이렌을 울려서 주변을 공포 분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마스크를 안 썼다가 공안에게 걸리면 미착용 벌금에 더해, 감염되었을지도 모르는 위험물을 어디엔가 버렸다는 죄까지 얹어 큰돈을 벌금으로 내야 했다.


그러던 상황이 급변했다. 관광과 외국 기업의 투자로 먹고사는 나라답게 모든 제한을 발 빠르게 해제했다.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기는 했지만 대부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여서 그 효과에 대해서 믿기 어려웠다. 회사 출입 또한 엄격한 통제를 풀어 외부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혼자서만 유난 떠는 거 아냐? 에이, 설마 걸리겠어?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고 말았다.


일주일 동안 6명 정도 면접을 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사장실 안에서 불과 1m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외부 사람들과 마주 앉았다. 가뜩이나 의사소통이 어려운데 마스크를 쓰면 표정을 볼 수가 없어 대화가 더 힘들다. 그러다 보니 나를 포함하여 통역하는 직원이나 면접 온 사람들 모두 무의식 중에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벗었다. 30분씩 6명이면 최소한 3시간 정도 바이러스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전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굳이 따지자면 어디 그것뿐이었겠는가. 하인리히 법칙에 의하면 내가 이미 300가지 이상의 방심을 했으니 이런 결과에 도달했을 것이다.


토요일 저녁 무렵 느닷없이 재채기가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력했고 몇 번 반복되면서 점점 목 상태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유사한 증상을 몇 번은 겪은 터라 이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종합 감기약을 비염 약과 함께 챙겨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별일 없겠지. 다른 때처럼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약에 취했는지 그런대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났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아침 운동도 나가지 않았다. 기관지에 이질감이 느껴지고 몸에 열이 있는 거 같아서 체온을 쟀더니 37.4도였다. 이런 체온 수치는 처음 목격하는 것이었다.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지만 그냥 단순한 감기이기를 바라면서 종합 감기약을 한 번 더 챙겨 먹었다. 어차피 일요일이라서 다른 방도는 없었다. 저녁 무렵까지도 체온은 38도 근처에서 맴돌았다. 검색을 해보니 체온이 38도를 넘지 않으면 단순 감기일 수도 있다는 글이 많았다. 맞아! 회사 직원들이 미친 듯이 기침을 하고, 열난다고 조퇴하고 좀 많이 그랬나? 그 직원들이 다 코로나 일리는 없잖아. 애써 마음을 가라앉혀 보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어! 이거 진짜 그놈 아니야?


월요일 아침 일찍 집 근처 한국 병원을 찾았다. 베트남에 있는 한국 병원들의 일부는 비싸고 수준이 안된다는 평이 많다. 한국 식당들이 인건비, 재료비, 임차료 전부 싼데 가격은 한국하고 똑같이 받는 거랑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음식 맛이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이나 병원이나 한국말이 되고 집에서 가깝다는 편의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가게 된다.


8시 30분 오픈과 동시에 병원 앞에 도착하니 출입문에 안내문이 잔뜩 붙어 있었다. 요약하자면 뭐든 밖에서 하니까 들어오지 말고 노크한 다음 기다리라는 내용이다. 유리문 너머를 기웃거리고 있으니 웬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나왔다. 좋으신 풍채에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하고 진한 밤색 꽃무늬 원피스 위에 살구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이 분이 의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어제부터 몸이 좀 안 좋은 거 같아서요."

"검사해 봅시다. 기다리세요."


잠시 후 간호사 한 명이 나오더니 등받이 없는 사각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턱을 들라고 손바닥을 위아래로 몇 번 까딱 거리고는 기다란 면봉으로 코를 찔렀다.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뒤로 빼자 이번에는 뒤통수를 잡고 더 깊숙이 밀어 넣는다. 한국에서 검사받을 때에 비하면 베트남에서 코로나 검사는 심하게 거칠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운 날씨에 긴장감까지 더해 얼굴 위로, 등으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더운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제발 두 줄이 아니기를'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지나고 검사 키트를 들여다보던 간호사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통역인듯한 여자분이 나오면서 무심한 말투로 한마디 툭 던진다.


"양성이에요."


망했다. 비대면 진료 하고 5일간 약을 먹으라고 한다. 비대면 진료?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뭘 해야 하나? 아, 여기 베트남인데 복잡하겠네. 예상되는 다가올 일들에 짜증이 났다. 잠시 후 통역 여자분께서 A4 종이 한 장과 볼펜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 영문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어떤 증상이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 전부였다. 비대면 진료 말이다. 손가락에 산소 포화도 측정기로 보이는 집게 같은 것을 잠시 끼웠다 빼간 것 외에 체온 측정이나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약 부작용은 없는지 등속의 일상적인 질문은 없다.


그러고 있는 사이 젊은 남자 한 명이 와서 나처럼 사각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콧구멍을 내어주고 잠시 후 음성확인서를 손에 쥐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부럽다.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비대면 진료' 받고 있는데.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운전기사한테 회사로 가라고 문자를 보내고, 회사에 출근 못 한다고 전화를 하는 동안 처음 나왔던 의사분이 약 봉투를 들고 나왔다. 발포 비타민, 진통제, 뿌리는 코 세정제, 세 알씩 들어있는 조제약 5일분이 들어 있었다. 약 먹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 영수증을 건넸다. 총비용은 1,100만 동 우리 돈으로 약 6만 원 정도이다.


"다음 주에는 출근해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7일에서 10일 후까지도 양성이 나오기도 해요. 약 잘 먹고 가급적 집에 있으세요."


'가급적'이라는 말의 참뜻이 뭘까? 양성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출근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 그대로 다시 퇴근이다. 받을 때는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약 봉투에는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 내역이 전혀 적혀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약값 얼마, 검사비 얼마, 합계 얼마 그게 끝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통증이 시작되었다. 나이 탓인가? 내가 좀 심한 건가? 발열, 두통, 오한, 기침, 인후통, 흉통, 근육통... 할 건 다하는 것 같았다. 죽을 맛이었다. 얼굴 한가운데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들어앉았다.


제발 병원에만은 실려가지는 않기를 빌었다. 이곳 병원 사정이라는 것이 상상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대유행 초기에는 트럭에 실려서 격리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하는데, 수용소도 병원도 아닌 집에 있어도 되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비몽사몽 하는 사이 며칠이 흘렀다. 오늘이 대체 며칠째더라? 체온을 재보니 다행히도 36.9도로 내려갔다. 전에는 36.7에도 화들짝 놀랐었는데 지금은 38도 아래로 내려온 것만 해도 위로가 된다. 목에 수건을 두르니까 목 통증이 좀 나은 거 같기도 하다. 기침이 살짝 잦아들었다. 아 이제 끝나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초췌해진 얼굴을 선글라스와 모자로 가리고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월요일 아침 병원에 다녀오고 6일 만에 처음 맞는 바깥공기이다. ATM에 가서 현금을 좀 찾고, 드라이클리닝 맡긴 세탁물을 찾고, 파리바게뜨에 들러 샌드위치와 빵을 샀다.


그렇게 불과 20분 남짓의 외출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힘을 주거나 삐끗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허리 부근이 뜨끔했다. 이건 또 뭐지?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극심한 허리 통증이 시작되었다.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그렇다고 편히 눕지도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 고통은 호흡기 쪽의 전투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그야말로 이제는 침대에 모로 누워서 버티다가 물이라도 마시려고 냉장고에 가려면 기어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증상 발현 이후 아프기 시작해서 보통은 3~4일이면 변곡점을 지나 상태가 호전된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 일반의 범주에서 예외인듯했다. 내 몸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놈은 내 몸 전체로 전선을 확대시키면서 새로운 전쟁을 걸어오고 있다. 호락호락 물러가지 않을 기세이다.


양쪽 귀 아래, 턱 쪽으로 대추알만 한 게 잡힌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근 통증이 양쪽 어금니 근처로 이어져 씹지도 못할 정도로 이가 아프다. 잇몸과 이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베트남에 오기 전 집중 치료를 받았던 아래쪽 어금니가 아니라 이번에는 위쪽이 문제다.


허리 통증과 치통은 일종의 후유증인듯하다. 이놈은 내 몸 곳곳을 헤집고 돌아다니다가 평소 내가 취약한 부분들을 파고든다. 콧속에서 시작해서 목과 기관지 깊숙이 들어갔다가 고막이 터져나갈 듯한 두통과 두피 염증을 일으키고, 이어서 근육과 신경 곳곳을 지나다니다가 허리와 잇몸까지 흔들어 놓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사악한 바이러스가 인류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니.


꼬박 이틀을 더 지났다. 허리가 아플 때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면 상태가 호전되었던 기억이 나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체온 조절이 안 되는 상태에서 괜찮을까 했지만 당장은 허리 아픈 게 우선이었다. 결과적으로 좋은 처방이었다. 속이 메스꺼워지는 부작용이 뒤따르기는 했지만 허리가 움직여지고 부드러워졌다. 씻고 청소기 돌리고 옷 갈아입고 허리가 아픈 게 좀 가셨을 때 할 일들을 부지런히 해치웠다.


그동안에도 혹시 앰뷸런스에 실려 나갈 걸 대비해서 틈틈이 씻고, 주변을 정리하고, 지갑과 여권을 머리맡 보이는 곳에 챙겨 놓았었다. 상태가 위중해지면 누구한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할 것인가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해 두었다. 한국에 있는 아내는 많이 아프면 영사관과 연락을 취해보라고 했지만 그런 기관보다는 차라리 베트남 직원을 부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입맛이 있을 리가 없지만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기에 냉장고를 열었다. 이래저래 꼴이 말이 아니지만 살아야 한다는 일념이다. 내가 이렇게 삶에 집착했던가? 본능이겠지. 다른 사람들 보다 좀 더 세게 앓아서 걱정이 되지만 이대로 잘 회복해서 최대한 후유증 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10일이 지났다. 정신이 돌아오고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삶에 대해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이라면 심리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가족들의 도움도 있었을 것이고, 의료적 대응이 빨랐을 것이기에 이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곳의 의료 시스템이 한국에 비하면 떨어지는 수준이라서 늘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병원에 갈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어쨌든 아주 제대로 코로나와의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알리지 않을 수 없어 가족들에게 알렸는데 걱정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를 아껴주는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응원의 메시지 덕에 잘 버텨낸 거 같다. 역시 아플 때 특효약은 관심과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