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나니 사장

분노조절장애 한국인

by 화문화답

"너, 이 ××. 내가 갈 테니까 기다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간이 창 밖을 향한다. 한바탕 비가 퍼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강렬한 햇살이 내리 꽂히고 있다. 중간에서 통역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말을 길게 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특성 때문에 항상 미팅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소통의 정확도를 높려면 말을 두 배로 많이 해야 해서 힘도 두 배로 든다. 게다가 오늘 회의는 유난히 집중되지 않는다. 개망나니 A의 전화가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때였다. 엘리베이터 쪽에서 띵하고 알림 음이 울렸다. 순간 무슨 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다른 조직의 사무실에 쳐들어가는 폭력배들이 등장하는 그런 영화 말이다. 이런 장면이 대낮에 회사 사무실에서 펼쳐지고 있다.


개망나니 A가 두 사람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한 명은 늘 데리고 다니는 젊은 여성이고 다른 한 명은 현장 일을 하는 체격이 좋은 베트남 인부였다. 나타났다기보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봉지 터지듯 터져 나왔다.


A는 깡마른 체구에 적은 머리숱, 날카롭게 찢어진 눈, 햇볕에 그을린 거무죽죽한 피부,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었고, 얼굴에는 터질 것 같은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회의 테이블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쌍욕을 해가며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걸레통을 물었는지 그의 입은 계속해서 쌍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그가 회의 테이블까지 약 5미터를 걸어오는 동안 사무실의 모든 직원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저 사람한테 맞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 만약 그가 같이 온 여직원과 내 옆에 앉아 있던 통역 직원이 막아서지 않았다면, 아마도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남자 직원들과 뒤늦게 달려온 경비가 그의 양팔을 잡아 다시 엘리베이터에 태워 데리고 내려갔다. 어떤 직원은 이 장면을 휴대전화를 들고 촬영했다.


"상도의를 좀 지켜라. 이 ××야!"


그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마지막으로 소리를 질렀다.


일주일 전쯤이었다. B부장에게 3공장 마당을 시멘트로 덮는 작업을 하는 날, 내부 출입이 안 되는 시간이 있으니, 이를 개망나니 A한테 알려주라고 지시했다. A사장이 3공장 내부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평소 A사장과의 친화력을 과시하던 B부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통보를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하러 온 인부들이 현장에 들어갈 수 없자, A는 사전에 통보도 없이 출입을 못 하게 하면 자신들의 공사에 차질을 빚게 된다면서 B부장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 사실 이 업체는 이미 약속한 공사 기간을 한 달이나 넘기고 있었다. 길길이 뛰는 망나니의 기세에 겁을 잔뜩 먹은 B부장은 '사전에 통보할 것을 지시받았는데, 자신의 실수로 이를 하지 않았다.'라고 자신의 실수를 밝히는 대신 침묵으로 꽁무니를 뺐다.


자연스럽게 망나니의 공격 대상은 곧바로 나를 바뀌었다. 3공장 리뉴얼 공사가 지지부진하고 계속 문제를 일으키자 대표가 나에게 마무리를 부탁했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내가 리뉴얼 공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망나니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욕부터 해댔다. 내가 갈 테니 기다리라며.


이 일련의 흐름을 볼 때, B부장은 개망나니가 쳐들어와서 나를 공격하는 사태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즉시 내게 보고하고, 그에게 충분히 사과해서 오해를 풀어주거나, 그게 안 된다면 경비에게 지시하여 망나니가 회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침묵했다.


호찌민 외곽에 있는 3공장 증설은 늘어나는 생산량에 대비해서 대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였다. 나를 포함한 여러 담당자는 해당 건물을 임차할 때부터 반대했다. 시기와 방법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도 예식장으로 쓰던 아주 낡은 건물이었고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 공장으로 리뉴얼하기에는 시간도 문제지만 대강 잡아도 큰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였다.


대표는 임차료가 싸다는 이유와 나중에 아예 사들일 거니까 공사비가 아깝지 않다면서 계약을 강행하고는 직접 나서서 공사를 추진하였다. 인테리어 업자인 망나니 A한테 리모델링 공사를 의뢰했는데, 이 업체는 호찌민 사무실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이미 부실 공사와 공사비 과다 청구로 검증이 끝난 업체였다. 게다가 이 건물을 대표한테 소개한 사람이 망나니였다니 시작부터 정상적인 경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완공 날짜가 계속 지연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2층을 받치는 구조가 약하여 만약 다수의 사람들이 작업하거나 재고를 쌓아두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1층에서 2층 바닥을 받치는 철골 기둥 여러 개를 세우는 방법으로 보강해야 했는데 이 공사가 가장 컸다. 당연히 업체가 추가로 요구하는 비용도 많이 증가했다. 결국은 대표와 개망나니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공사 속행을 거부하는 사태에 이르고야 말았다.


그 사이에도 5천만 동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 매달 임대료로 꼬박꼬박 나가고 있었고 공장 가동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늪에 빠지고 말았다. 업체와 비용을 둘러싼 다툼이 이어졌고 수습이 어려워진 대표는 결국 나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해 왔다. 그렇게 반대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전문가가 아니었음에도 미비한 부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에어컨 설치,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화물 엘리베이터 설치, 벽면과 바닥 마감 공사, 직원 휴게실로 쓰일 공간의 천장 마감, 비상계단 설치, 마당에서 건물 내부로 넘어오는 물막이 공사, 빗물 배수 처리 시설, 소방 시설...


철골 기둥 세우는 공사에 매달려 있느라 다른 공사들은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기성고 청구와 지급은 꼬박꼬박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돈을 내보낸 건지 어이가 없었다. 견적서이나 시방서가 제대로 작성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계약서조차 약식으로 도장만 찍은 수준이었다.


먼저 이 업체를 불러 현황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계속 말을 바꾸고 추가 공사를 요구하는 대표' 탓을 할 뿐 더는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이 업체에게 리모델링 공사에서 빠져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현재 착수한 공사의 마무리까지는 계속해서 작업하도록 정리했다.


그리고 진행되지 않은 공사들을 하나씩 추진하기 시작했다. 일괄수주로 한 업체에 공사를 의뢰하지 않고 개별 공사마다 해당 업체를 선정하여 진행하였다. 직원들에게 현황을 공유하고 협조를 받아 주로 로컬 업체를 선별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컨트롤을 잘하면 비용 절감은 확실하게 할 수 있다. 또 어느 정도 가닥을 잡고 하는 부분 공사들이라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렇게 개 *을 밟아가며, 모기떼에 뜯겨가며, 땀과 먼지로 목욕해 가며 2개월을 보냈다.


거의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면서 건물이 그제야 살아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앞마당 공사가 남아 있었다. 대형 컨테이너 트럭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려면 시멘트로 흙 마당을 덮는 공사가 필요했다.

이 마지막 공사를 하는 날, 그동안 불만이 쌓여있던 개망나니 A의 분노가 나한테 폭발한 것이다. 본인이 아니면 못할 거로 생각했던 일들이 예상과는 달리 척척 진행되고 있으니, 그동안 이 회사에 빨대를 꽂고 있던 입장에서는 눈에 불이 났을 것이다.


베트남에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업체가 없는 것도 아니고 왜 하필 이 업체였을까? 잠깐만 얘기를 나누어 봐도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대표가 이 인테리어 업체를 알게 된 것은 지인의 소개였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한 안이한 대처가 회사에는 손실을 끼쳤고, 나에게는 상처를 입혔다.


형님 동생 하며 친분을 과시하던 대표와 망나니 사이는 잔금 지급 문제로 협박 수준의 대화를 주고받다가 결국 원하는 금액을 전액 지급하고서야 끝이 났다. B부장은 뒤늦게 나한테 사과했지만 그런 사람하고 같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다. 인사권자로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했다.


해외에서 사업을 할 때 조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한다. 특히 베트남에서 사업한다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소개'이다. 펀짬(phần trăm) 문화가 만연해 있는 이곳에서는 대부분 '뭔가'가 있다. 개망나니 A처럼 한 번 잘못 엮인 사람은 결국 독(毒)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