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전원 교향곡
어린 시절 고향 집은 ㄱ자형 본채와 별채로 구성된 전통 한옥이었다. 현무암 자연석으로 둘려 있는 죽담(댓돌)과 디딤돌을 딛고 쪽마루에 올라서서 방으로 출입했다. 넓은 마당에는 감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 등속이 담을 따라 서 있고 뜰 앞에는 아버지가 키우시는 화분들이 3단으로 줄지어 놓여 있었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대청마루였다. 아무리 더운 날에도 대청마루에 누워있으면 앞뒤로 부딪히는 맞바람에 더울 틈이 없었다. 여름에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고 겨울이면 가을철 수확한 농작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였다. 특히 늦가을 서리 맞은 감을 따서 산더미처럼 쌓아 두었다. 부모님은 동네 사람들을 불러 이 감을 한 보따리씩 나누어 주곤 하셨다.
대청마루에서 마당을 바라보는 풍경은 계절에 따라 달랐다. 겨울에는 손바닥만 한 함박눈이 내려와 발목 높이만큼 쌓였고, 여름에는 처마에서 댓돌 끝으로 빗방울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그 대청마루 끝 각기둥에는 나무로 된 벽걸이형 아날로그 온도계가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섭씨, 다른 쪽에는 화씨로 표시된 눈금과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 사이의 빨간색 수은주는 여름 내내 26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오늘 참 덥다 싶어서 온도계를 보아도 수은주는 항상 그 언저리에 머물고 있었다.
요새 여름철 기온은 아마도 26도 아래로 내려오는 날이 드물 것이다. 6월인데도 벌써 낮기온은 30도를 상회하고 있다. 세상이 그만큼 많이도 변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 시절 장맛비는 6월 말쯤 시작되어 한 달 가까이 길게 내렸다. 천천히 조금씩 내려와 세상과 사람들의 숨을 돌리게 하고 휴식을 선사해 주었다. 반면 요새 장맛비는 며칠 동안, 그것도 집중 호우 형태로 사납게 내린다. 인정머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변한 것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지 사람 때문에 모든 게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혹해진 날씨마저 세상살이를 더 힘들게 한다. 간밤에 내린 비는 좀 야단스러웠던 모양인데 지금은 빗줄기가 아주 부드러워졌다. 토닥토닥 내리고 있다.
언 땅을 적시는 봄비에는 처연함이 담겨있다. 애처롭게 매달린 잎사귀마저 보내야 하는 가을비는 쓸쓸하다. 여름에 녹음(綠陰)을 안고 내리는 여름비는 토닥토닥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취해 깜빡 낮잠을 자기도 하고, 그 소리에 실려 먼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름비에는 그런 '쉼'이 있다.
시골에 비가 내리면 농사일을 할 수 없어서 모든 식구가 집에서 쉰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부침개를 부쳤다. 여름철 시골에 흔하디 흔한 감자나 호박을 썰어 넣은 밀가루 반죽과 '곤로'를 들고 나와 대청마루에 자리를 잡으면 어머니표 시골 맛집, 맛의 향연이 시작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곤로'는 손잡이를 우측으로 당기면 심지가 올라오고 여기에 불을 붙여 등유를 태워서 열을 얻는다. 갑자기 솟아오르는 불꽃에 앞머리칼을 태워 먹기도 하고 넘어지기 쉬운 구조여서 화재 위험도 있었지만, 볏짚이나 장작을 때던 아궁이를 벗어나 이동 취사에 쓸 수 있는 당시에는 최첨단 도구였다.
불에 달군 프라이팬에 돼지비계를 둘둘 돌려서 기름칠한 다음, 준비된 밀가루 반죽을 한 국자 부으면 고소한 냄새와 함께 타닥타닥하고 기름 튀는 소리가 났다. 마당에서는 빗소리가 토닥토닥, 곤로 위 프라이팬에서는 부침개 익는 소리가 타닥타닥, 어머니의 전원 교향곡이 시작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부침개는 먹거리가 변변치 못하던 그 시절 여름비가 주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먹고 남을 만큼 부치셨고, 남은 것은 소쿠리에 담아 보를 덮어 놓으셨는데, 나는 고망쥐처럼 종일 들락거리며 식은 부침개를 먹었다.
어머니의 전원 교향곡이 그리워진다. 오늘은 종일 이렇게 여름비가 내리려나 보다. 나에게 비는 여전히 강수량 이상의 것이며 마른 영혼을 적셔주는 휴식이다. 처연하지도 쓸쓸하지도 않으면서 쉼과 여유와 풍요를 담아 내리는 여름비라서 더욱 좋다. 이제부터는 장맛비, 소낙비 말고 꼭 '여름비'라고 불러야겠다. 토닥토닥 여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