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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Oct 10. 2024

내 골프 실력의 숨겨진 진실

골프야, 넌 누구니

다시 골프채를 내려놓다


누가 물으면 '뭐, 그냥 남들만큼 해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지금까지 나를 평균 스코어 정도 치는 보통 골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착각이었다. 절반도 안 되는 좋은 결과를 가지고 마치 그게 전부인 듯 나머지를 덮어 버렸다.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골프 실력의 숨겨진 진실을. 


씁쓸한 심정으로 10년 만에 잡았던 골프채를 다시 접었다. 화려한 부활을 꿈꾼 지 9개월 만이다. 그래도 적잖은 돈을 들여 새로 장만한 골프채였기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커버를 잘 씌워서 다용도실 한쪽에 밀어 넣었다. 순간 스치는 허무함과 상실감을 애써 외면했다. 언제 다시 꺼내 들지 모르겠지만 잠시만 안녕이다.


내가 이런 결심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올해 4월과 9월에 친구들과 다녀온 두 번의 골프 투어였다. '서서 하는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골프'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까짓 게 뭐라고 왜 자꾸 나를 울리는가.



접대 골프 부작용?


내가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은 것은 약 20여 년 전이다. 나 같은 골통(골프 신동)은 처음 보았다며 장기 수강을 유도하는 레슨 프로의 간계(計)에 속아 무려 6개월 동안 레슨을 받은 후,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레이크사이드 CC에서 머리를 올렸다.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성장률 4.5% 대비 9.1%를 기록하며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게다가 나는 대기업 과장으로서 소위 슈퍼 갑으로 불리고 있었다. 지금의 사회적 기준이나 눈높이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는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접대 문화가 성행했었다. 나도 한 달이면 서너 차례 주말 골프를 다녔고, 그중 번은 일명 접대 골프였다.


돌이켜보면 이게 나의 골프 실력에는 독이 되었다. 슈퍼 갑에 대한 동반자들의 일방적 배려와 과장된 칭찬에 힘입어 나는 내가 진짜 골프를 잘 치는 줄 착각했다. 연습장에서 땀을 흘리며 기본기를 다져야 할 때 소쿠리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누리던 시절이 지나고, 이후 사회적인 분위기나 이직 등 개인적인 상황 변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골프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골프와의 인연은 이대로 끊어지지 않았다. 퇴직 후 시간이 넘쳐나게 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골프를 생각하게 되었다. 잊지 못할 골프 자체의 묘한 매력도 있지만, 유난히도 약골인 내가 이 나이에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이다. 또한, 주변의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골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골프백을 꺼내 먼지를 털어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커뮤니티센터의 골프연습장에 등록하였다. 때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한 달 정도면 옛날 실력을 회복할 거라는 자신감 있었다.



현실 자각 타임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라운딩할 거라는 들뜬 마음을 안고 그 모임에 합류하였다. 나이 들어서도 골프 멤버 4명을 만들 수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근거 없는 속설도 있지 않은가. 골골골(골 때리는 골프 골통들)이라! 원래가 개성이 강한 친구들이지만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골골골'은 나보다 일찍 퇴직한 친구와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와 여행 기분을 살린다는 취지로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골프장을 순회하며 연 2회 정기적인 골프 투어를 고 있었다.


지난 4월, 나는 처음으로 투어에 참가하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눈앞에 놓인 세 자리 숫자의 스코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슬픈 현타의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10년의 공백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마음을 달랬다. 친구들도 조금만 연습하면 옛날 감각이 살아날 것이라고 애써 위로해 주었다. 맞아,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는 거야. 10년이라는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어.



고난의 골프 투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점점 빨리 간다는데, 내가 겪어보니 실제 그렇다. 하루하루는 긴 것 같지만 눈 한 번 깜빡하고 나면 세월이 저만큼 도망가 있다. 순식간에 9월이 다가왔다.


A컨트리클럽을 둘러싼 산들은 낮고 헐벗어 있었다. 그나마 언제든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검붉은 빛을 띤 채 바짝 말라있다. 체감 온도 40도, 습도 90%! 우리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그늘에 옹기종기 모였다. 비수기라는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면 성수기에는 대체 얼마나 많을까. 그중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란다. 예약한 시간보다 한참 지나서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캐디들이 카트 옆에서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1인 1 캐디 시스템이다. 무엇보다 그린피, 카트비, 캐디피, 심지어 캐디팁까지 몽땅 합쳐도 10만 원이 채 안 된다. 한국과는 여러 가지로 대비되는 상황이다. 비행기 타는 게 힘들다는 점을 빼면 소소한 허세(?)를 부릴 수 있을 정도로 큰 부담이 없다.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고 있는 동반자들과 달리, 나는 바짝 긴장한 채 몸을 풀었다. 이놈들 여유만만하군. 이번에야말로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어. 첫 홀 티업이 시작되었다. 두 명은 페어웨이로 잘 보냈고 한 명은 공이 잘못 맞아 일명 '쪼루'가 났다. 나는 드라이버를 움켜쥐고 4번째로 티그라운드에 올라섰다.


그리고 길고 험난한 18홀이 끝났다. 온몸에 힘이란 힘은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첫 라운딩부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타 버릴 듯한 무지막지한 더위에, 전날 새벽 늦게 도착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극도의 피로감이 있었지만 결국 핑계에 불과하다.


나는 이런 결과를 두고 그 원인을 왜곡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골프라는 게 매너 운동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그렇게 개* 매너일 수가 없었다. 나는 라운딩 내내 부글부글 끓으며 혼자 헤매고 다녔다. 원래 골프가 그렇게 '자신만의 플레이'를 하는 거라고 일축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들의 비매너 플레이에 나의 멘털은 바닥까지 무너졌다.


뒤에 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자기들끼리 앞서 나갔다. 나는 언감생심 말도 꺼내지 못하는 멀리건을 그들은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반복해서 쳤다. 멀리건은(Provisional Ball) 샷 한 볼이 OB나 페널티 구역으로 향할 경우, 볼을 찾지 못할 것을 대비해 동일한 위치에서 잠정적으로 샷 하는 것이다. 어프로치를 하려고 그린을 쳐다보면 앞서 간 그들이 퍼팅하고 있었다. 캐디가 '볼!'이라고 몇 번을 외쳐야 비켜 주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눈 뜨면 술부터 들이붓는 친구들이라 술자리가 이어졌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내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이라도 바꾸자


레몬심리가 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신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믿고 있었던 확신은 자아정체성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정체성에 더 가까우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자 자신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따라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려면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


그래! 바로 그거야. 스코어로 싱글 골퍼가 안 된다면 매너로 싱글 골퍼가 되자. 그래서 '매너 꽝'인 저들에게 시범을 보여주자. 이것이 진정한 골프라고. 게다가 마음속에 악마를 들여놓으면 나만 괴롭다. 모처럼의 귀한 시간을 그렇게 허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음 날 라운딩에서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나로 인해 진행 속도가 떨어질까 봐 웬만한 거리가 남은 퍼팅은 셀프 컨시드를 주었다. 동반자가 좋은 샷을 했을 때는 큰소리로 굿샷을 외쳤다. 공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으면 달려가서 같이 찾아 주었다. 카트 운전을 도맡아서 하고 기다렸다가 같이 태우고 가려고 애썼다. 그늘집에 가면 내가 먹을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먼저 챙겼다.


능구렁이와 구미호를 합친 것의 제곱 정도 되는 동반자 친구들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즐거워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골프는 골프다. 골프 외적 요소로 본질을 가리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샷을 할 때면 쏟아지는 불안한 시선들, 퍼팅에 실패할 때마다 은연중에 나타나는 비웃음, 거리가 짧은 티샷을 보며 '힘없어요?'라고 안타까워하는 캐디의 표정을 끝내 극복하기 어려웠다.



노력은 나를 배신하였다


도대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아웃라이어에서 말콤 글래드웰이 주장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나의 골프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그래서 여전히 노력이 부족한 것일까?


골프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연습장을 다니면서 처음 맞닥뜨린 상황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림 같았던 옛날 스코어가 나올 거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거의 날마다 열심히 연습했다.


주로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센터에 있는 실내 연습장을 이용했다. 실전 감각을 익히기 위해 스크린 골프장도 활용했다. 근처 인도어 연습장에 갈 때면 평일 낮에 웬 사람이 그리 많은지 긴 대기 시간에 깜짝 놀라곤 했다. 저녁에는 레슨 프로그램과 프로 골프 경기 중계를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이럴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다른 걸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가 돼도 벌써 되었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나빠져서 스크린 골프 연습라운딩에서 무려 110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나는 이 숫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막상 필드에 나가면 이 정도는 아닐 거야. 그래도 과거에 먹었던 잔디 밥이 있는데.'라는 근자감을 가지고 4월 투어에 참가했다. 결과는 참패.


두 번은 용납할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즉시 다음번 모임인 9월 투어에 대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냥 노력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을 했다.


드디어 조금씩 증상이 개선되는 징후가 보였다. 하지만 어떤 날은 드라이버가, 또 어떤 날은 아이언이, 내내 잘 맞던 우드가, 툭하면 퍼터가 말썽을 일으켰다. 이게 좋아지면 저게 나빠지고 하는 식이다. 이런 일관성 난조에도 전체적으로는, 길게 보면 실력이 향상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굽히지 않았다.


3개월쯤 경과했을 무렵, 스크린 골프의 스코어가 72타까지 내려왔다. 처음 기록했던 110타 보다 무려 38타를 줄인 것이다. 아! '100일간의 피나는 노력'이 결실을 맺는 걸까? 드디어 싱글 골퍼가 된 것이다. 18홀 72타를 기준으로 한 자리 숫자를 오버한 81타 까지를 싱글이라고 한다. 비록 스크린 골프 스코어였지만 그게 어디야. 오르막과 내리막, 바람 등 필드의 변수를 감안한다 해도 오차 범위 이내일 것이다.


이런 걸 가리켜 칼을 갈았다고 하던가? 이븐파(72타)를 기록한 라베 스코어(life best score)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충만한 자신감으로 '골골골'의 두 번째 투어에 참가했다. 결과는 또 참패.


그렇게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를 맞았다. 나의 노력에 대한 결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해 보면, 올해 4월 처음으로 동참한 투어에서 평균 110타를 기록해 보기 좋게 망신을 당했고, 절치부심 칼을 갈고 참가한 9월 두 번째 투어는 평균 100타를 기록하여 '고난의 골프 투어'로 남았다. 결국, 나의 노력은 나를 배신하였다.



인생처럼 타협을


투어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왼쪽 다리 통증이 심했다. 발을 디디면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텃밭에서 일하다가 뜨끔하더니 허리까지 아팠다. 정형외과 검진 결과 4번과 5번 척추 간격이 좁아져 있고 디스크 증상이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종합검진에서 허리 CT를 찍었을 때 들은 얘기와 동일하다.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그 정형외과의 의사는 '연식이 오래돼서 그렇다'면서 가급적 골프를 하지 말라고 했다. 불쾌했지만 환자는 아프니까 약자이다. 입을 꾹 다물고 약 처방과 물리치료를 받았다.


꼼짝 못하고 누워있다가 보니 그동안의 회한(悔恨)이 몰려왔다. 10년 만에 다시 골프채를 든 나는 허리 부상과 함께 내상까지 입었다. 대체 나에게 골프는 무엇인가? 나의 골프는 무엇이 문제일까?


물론 필드에서 정타율이 아직도 60~70%에 그친다. 일단은 이게 적어도 80~90%는 되어야 뒤땅, 탑핑, 생크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공이 산이나 물로 날아다니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잔디 밥'이 좌우한다. 방향성만 괜찮다면 정타율은 필드 경험이 많아지면 개선된다고 본다. 진짜 크리티컬 한 문제점은 비거리와 멘털이다.


처음에는 내가 나이가 들어 힘이 없고 체구가 작아 파워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훨씬 나이가 든 분들도, 아마추어 여자분들도 나보다 비거리가 더 나간다. 어쩌다 한번 200미터 정도가 나가기도 하는데 그건 코끼리 뒷걸음질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티업하는 레드티에 가서 칠 수도 없다. 치마 입으라고 놀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티그라운드는 홀에서 먼 순서로 블루티, 화이트티, 레드티가 있는데 보통 프로 선수들이나 장타자는 블루티에서, 일반 아마추어들은 화이트티에서, 여자분들은 거리 핸디캡을 적용한 레드티에서 친다. 최근 프로 골프의 트렌드도 윤이나, 장유빈 같은 장타자가 상금 랭킹 1위에 올라 있다. 비거리가 돈이 된다는 얘기다.


물론 레슨도 받아 봤다. 하지만 '좋아요'와 '아니 이번에는 잘 안 맞았어요'같은 결과론적 외침을 반복해 가며, 20년 전에도 들어본 듯한 무의미한 이론을 늘어놓다가, 땡 하고 타이머가 울리면 '더 연습하시고요'라는 의례적인 말을 남기고 가버리는 레슨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서, 더 좋은 선생님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분명 어느 부분인가 스윙에 오류가 있고, 또 어느 순간이 되면 개선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한 번은 시즌 3승을 기록하고 있는 어느 유명 프로 선수의 인터뷰를 보며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오늘 어땠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골프 어려워요."라고 대답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하물며 나 같은 아마추어는 오죽하겠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멘털이다. 원래가 남을 많이 의식하고 자존심이 센 성격이다. 골프는 자신감이라고 하는데 누가 조금만 거슬리는 언행을 해도 멘털이 쉽게 흔들려 버리고 만다. 어쩌면 레몬심리의 말처럼 사회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인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하지 뭐


어쨌든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만큼 했으면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복이 아닌 타협의 길을 택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살다 보면 인생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죽어라 연습하지 않는다. 가급적 모임에는 빠지지 말고 필드 경험을 쌓는다. 비거리에 연연하기보다 코스 매니지먼트를 잘해서 스코어를 관리한다. 나보다는 동반자를 배려하는 매너 싱글 골퍼가 된다.'


지금 이대로 상황이라면 드라이버 160미터, 3번 우드 140미터, 7번 아이언 110미터를 기준으로 코스를 공략해야 한다. 당연히 홀마다 남들보다 한두 타는 더 쳐야 하기 때문에 목표를 싱글 골퍼(81타)가 아닌, 보기 플레이어(90타)로 정하고 이 스코어를 지향하는 골프를 해야 한다.


이렇게 플레이를 하면 예를 들어, 160미터 파3 홀에서 다른 사람들은 6번 아이언을 잡는데 나는 드라이버를 쳐야 한다. 짧은 아이언일수록 홀컵에 붙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긴 채를 잡은 나는 온그린 확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내가 드라이버를 들고 올라가면 다른 팀 사람들까지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볼 것이다.


아이고 뭐 그러면 어때. 어차피 그래 봤자 앞으로 내가 앞으로 골프를 같이할 동반자는 친구들이고,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는 아들일 것이다. 창피해 봐야 그게 그거다. 그리고 스트레스로 따지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 번은 내가 힘들어 하자 일행 중에서 가장 잘 치는 친구가 다가와서 말했다. "나도 요즘은 골프가 재미가 없어. 조금만 안 맞아도 스트레스받아."라며 나를 위로했다. 



골프 말고 다른 희망 사항


퇴직하면서 나는 몇 가지 취미 생활 목표를 정했었다. 그중 하나인 골프는 이제 이 정도 수준에서 타협하기로 결론이 났다. 일단은 휴식기를 좀 가진 다음, 마음이 돌아서면 새로운 전략에 따라 다시 시작할 것이다. 당연히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있다. 마치 골프처럼, 아직도 좋아하는 노래하나 완주하지 못하는 기타이다. F코드를 빼고는 어느 정도 기초는 된 거 같은데, 전주나 간주 부분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반쪽짜리 연주가 되어 완성도와 만족도가 떨어진다.


온라인 강의를 들어보고, 혼자 연습도 해 보았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기타 교습 학원에 3개월을 다녀 보기도 했다. 젊은 강사 선생님께서 실용 음악이란 이런 것이라면서, 악보도 없이, 즉흥적으로, 그리고 무성의한 강의로 일관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중단했다. 레슨비가 한 시간씩 4회에 20만 원이었다.


작곡할 것도 아니고 프로 연주자가 될 것도 아니다. 내 수준에 맞게,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을 뿐이다. 이를테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같이 내가 좋아하는 7080곡 10개 정도를 선정한 다음, 치기 쉬운 악보를 만들고, 그 곡을 완주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골프도, 기타도 지나온 내 인생 같다.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큰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며, 높은 지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저 진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을 뿐이다. 퇴직한 지금도 여전히 무엇하나 쉬운 게 없고, 맘먹은 대로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하고 싶지는 않다. 웃자고 하는 것들에 죽자고 덤벼들 필요는 없다. 


골프보다는 결과가 좀 낫기를 희망하며 이제부터는 기타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그나저나 누구, 나에게 기타 가르쳐주실 분 안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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