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Den lille Havfrue)
- 독일 문학의 단골 소재인 운디네는 17세기 연금술사 파라켈소스가 정립한 4정령설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4원소의 정령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 수명을 갖는 대신 영혼이 없다. 따라서 죽으면 천국에서 영원을 누리는 인간과는 달리 정령들은 영영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때문에 정령들은 인간의 영혼을 선망하며, 인간의 영혼을 얻고 싶어 한다. 이와 같은 설정은 당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예술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푸케의 동화 『운디네』(1811)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물의 정령 운디네는 기사 훌트브란트와 사랑에 빠진다. 정령은 인간과 결혼하면 인간의 영혼을 얻는데, 상대가 물을 모욕하거나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면 물의 정령은 인간의 영혼을 잃게 된다. 훌트브란트가 운디네를 냉대하고 인간 여성과 사랑에 빠지자 그녀는 인간의 영혼을 잃고 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자, 운디네는 다시 나타나 그를 물속에 빠트려 죽인다.
운디네가 훌트브란트를 물에 빠트려 죽이는 이유는 사랑을 배신한 것에 대한 분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인간의 영혼을 잃게 만든 것에 대한 복수가 더욱 컸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근세 유럽에서 정령은 영원한 삶을 갖지 못하는 존재로 표현되었고, 그만큼 그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찬,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였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Carl Gustav Jung)은 남성과 여성은 이성에게 완벽한 이성상을 투영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첫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완벽한 이성성을 처음으로 투영하는 경험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막연한 이상과 동경을 상대방과 동일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상이 무너질 때, 상대방에게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첫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난다.
그렇기에 동화 『인어공주』(1837)에서도 인어공주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현대 판본에서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지만, 작중에서는 불멸의 영혼에 대한 인어공주의 갈망이 나온다. 작중 설정에 따르자면, 인어는 인간보다 월등한 수명을 지닌 대신, 수명이 다하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반면 인간은 수명이 훨씬 짧은 대신 수명이 다해도 불멸의 영혼을 통해 다른 세계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인어공주는 불멸의 영혼을 갈구하게 되고,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왕자를 '불멸의 영혼'에 투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랑은 얼마 안가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인어공주는 왕자에게 얼마간 귀여움을 받지만, 이내 왕자는 이웃나라 공주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결혼을 약속해버리기 때문이다. 마녀와의 계약에 따르자면 왕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인어공주는 절망한다. 이때 인어공주의 자매들은 자신의 머리카락과 맞바꾼 칼을 인어공주에게 주며 왕자를 찌르면 다시 인어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인어공주는 왕자를 차마 찌르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인어공주』가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 동화의 진짜 결말이 아니다. 현대의 판본들은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고 끝을 맺거나, 혹은 디즈니의 만화영화처럼 왕자와 이어진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각색하지만 사실 이 동화의 결말은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려던 찰나,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고 선함을 택한 것이 '공기의 딸'의 눈에 띄어 불멸의 영혼을 얻는 것이다.
『인어공주』는 푸케의 『운디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동화의 두 주인공 모두 물의 정령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불완전하고, 불멸의 영혼을 갈구한다. 또한 이를 상대방에게 투영한다. 둘 모두 사랑을 통해 불멸의 영혼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두 작품의 끝은 판이하게 다르다. 운디네는 사랑이 좌절되자 상대를 키스로서 질식시켜 죽였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왕자를 죽여 물거품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자를 죽이느니 차라리 물거품이 되는 길을 택했다. 둘 모두 인간의 사랑에서 불멸의 영혼을 얻으려 했지만 한쪽은 이마저도 얻지 못하고 다른 한쪽은 끝내 불멸의 영혼을 얻었다.
바로 이것이 두 작품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앞서 말했듯,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상을 투영한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하면서, 마침내 사람은 이상과 사랑을 분리하게 되고 비로소 성숙해진다. 이것이 운디네와 인어공주의 차이다. 운디네는 자신의 이상과 사랑을 분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자신의 이상과 사랑을 분리하였고, 비로소 성숙해졌다.
동화『인어공주』는 연하의 남성 에드워드 콜린(Edvard collin)과 한스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자신의 이야기를 동화로 엮은 것이다. 에드워드 콜린에게 내심 연정을 품고 있었던 그는 콜린에게 여자와 같은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로 고백했으나 거절당한다. 거기에 콜린은 고백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
지독한 방식으로 실연당한 안데르센은 인간의 사랑이 불완전한 것에 주목했다. 특히 운디네에서 그녀가 인간과 결혼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랑을 잃고 인간의 영혼까지 잃은 것에 대해 주목한 안데르센은 자신의 이상과 사랑을 겹쳐 생각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안데르센에게 있어서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고, 이를 통해 이상을 실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데르센은 왕자와의 결혼 대신 선한 행동을 통해 불멸의 영혼을 얻는 결말을 택한 것이다.
The little mermaid lifted her glorified eyes towards the sun, and felt them, for the first time, filling with tears. ··· she kissed the forehead of her bride, and fanned the prince, and then mounted with the other children of the air to a rosy cloud that floated through the aether.
인어공주는 하늘을 향해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들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에 눈물이 차는 것을 느꼈습니다. ··· 그녀는 공주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왕자님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공기의 딸"들과 함께 하늘에 떠다니는 장밋빛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 링크
『인어공주』의 원래 결말 부이다. 인어공주는 공기의 딸들에게서 영혼을 받고 나서 난생처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녀는 왕자와 공주를 축복하고 막 동이 트는 장밋빛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이상이 사랑과 분리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어공주는 사랑하던 그를 떠나보낸 것이다. 소설에서 인어공주가 왕자를 떠나보낸 것처럼, 아마 안데르센도 이 소설을 통해 사랑하던 그를 떠나보냈을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