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bow Apr 08. 2021

등장인물과 함께하는 여담- 9/100

어디에나 고양이

9/100 등장인물과 함께하는 여담-

대책없이 고양이  




고양이는 여러 장면에 많이 나온다.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많이 한다. 지금 막 생각나는 것은 학창 시절에 보고 너무 마음이 아렸던 <고양이를 부탁해>영화다.


다락방에서 미술을 하고 싶지만 전공할 수는 없는 등장인물이 하염없이 그저 그리고 끄적거리는 데 열중했던 장면. 앉은 뱅이 책상에서 이불을 덮고 노란 전등하나 키고 고양이는 자고 있었나 어쨌나. 좌절과 열정이 동시에 느껴졌던 장면. 나와 그 장면을 동일시했었나보다.


정말 밝히기도 부끄럽고 남아 있지도 않을 성인이 된 후의 내 첫번째 소설이 있었다. 학교 문학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경린 작가가 그 문학상 출신이었고 그 시작이 소설가가 된 시작이었다. 어쩌다 학교 식당에서 굴러다니는 문학상 문집을 집에 가지고 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읽었다고 보기엔 띄엄 띄엄 목격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거다. 그 소설을 읽어 내기가 참 씁쓸했다. 우리 시절 아이엠에프가 터져 학창시절, 예리한 감수성에 상처를 입고 꾸역꾸역 삶을 살아가며 그다지 큰 광명을 바라지도 못하고 꿈도 없으면서 혹은 꿈도 거세 당했으면서도 무언가를 찾아 길거리를 방황하는 젊은이. 그리고 그 소설에서는 길에 다니는 비둘기를 약간 소설 화자와 동일시 했던것 같다. 88올림픽 평화의 상징으로 하늘로 날아갔던 비둘기는 8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같았고 또 동시에 현재는 닭처럼 걸어다니고 날지도 못하며 천덕꾸러기가 되어 회색빛이 된 비둘기. 이 쯤이면 오늘은 고양이와 비둘기를 제목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여튼 그래서 써보지도 않았던 소설을 몇 시간안에 써서 내겠다며 소설가가 된 위대하고 독하고 대단한 사람들의 소설을 쓰게 된 우연들을 믿었던 철없던 내 자신은 첫 장에서 끄적거리던 것을 장수만 채워서 내버렸던 것이다. 하이퍼 리얼리즘처럼 대충 방황하고 꿈도 없고 그러나 싱그러운 그러나 우울한 내 자신과 주변을 투영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안됐다. 배수아 소설가는 컴퓨터 타자 연습을 하다 소설을 썼다했고 타자연습삼아 썼던 첫 소설로 바로 등단했다고 했다. 뭐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수도 없이 많다. 나도 만약에 소설가가 된다면

전설처럼 꾸며내야겠다고 지금 다짐해본다.(?)


여하간 그래서 하려는 얘기는 그 말도 안되는 소설에는 ‘네꼬’라는 고양이가 등장했다. 일본어를 부전공할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고양이의 일본어 ‘네꼬’가 한국어 ‘내 거’랑 비슷했고 그 때도 고양이에 관심이 있지 않았지만 뭔가 예술적으로 썩어가는 싱그러운 젊은이에겐 고양이 한 마리쯤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그 때도 했던 모양이다. 항상 발이 시린 나는, 아니 그 소설의 화자는 고양이가 항상 시린 발 위에 앉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화자는 책상에서 앉아 있을 수 있었고 고양이 보다 못한 남자친구는 소설 속 화자를 알게 모르게 괴롭힌다.


실제 내가 너무 많이 투영 되어 있었지만 고양이는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근데 쓰고 나면 거짓말처럼 그게 나중엔 현실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모모(ㅇㅇ) 작가가 엉덩이에 돼지 꼬리가 있는 남자를 상상해서 소설을 썼고 그러자 엉덩이에 돼지 꼬리가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게 되었다는 소설만큼 소설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도 모르게 그 단어들의 조합(학교 문학상에 제출한)들에 상상해서 썼던 고양이가 진짜로 내게 생겼다는 것이다.


더 소설같으려면, 전설이 되려면 소설에서처럼 내가 항상 발이 시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내 발을 베고 잠을 자야 하는데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소설은 소설이다. 하지만 정말 감격스러운 장면이 있기는 했다. 정말로 노란 치즈 고양이, 내 고양이가 내 발을 껴안고 잠을 잔 것이다. 그 당시

‘앗, 정말 이게 이루어 지는 것인가?’ 했었다. 물론 대부분 그 때 뿐이었고 숨겨진 사실은 내가 발이 시려워서 전기 방석을 발 밑에 켜놓았고 그 때는 어린 고양이었던 삼바가 발에 라도 있겠다며 뜨끈한 전기방석에 누워 내 발을 껴안고 잔 것이었다.(이 땐 어려서 그랬다, 지금은 침대 옆에 자리를 제대로 안 만들어 놓으면 뭐라고 하면서 깨문다.)


아, 고양이 이야기는 한 편으로 끝낼 수는 없다. 쓰면서 진짜 영화에 없어선 안될 등장인물인 고양이가 생각났기때문이다.


-계속

이전 16화 등장인물과 함께하는 여담- 검은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