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의 너부리
보노보노의 너부리
오늘같이 봄 햇살이 나른한 날이면 까무룩 누워있다 잠이 들면 너무도 단 맛일 것 같다. 파란 하늘같은 바다에 돌멩이인지 분홍색 조개 모양을 배 위에 얹고 반쯤 감았는지 떴는지 모를 눈으로 귀여운 코맹맹이 목소리로
‘봄은 어디 숨었다 오는 것일까?!’이런 비경제적인 물음을 해도 모두의 사랑을 받는 보노보노.
고3때 인가 토요일 보충수업을 끝내고 밥먹으며 틀었던 TV에서 CSI를 보곤 짧은 충격을 받았다. 저런 드라마가 있었다니. 그리곤 대학 때 미드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가끔은 일드의 세계에도 빠졌으나 미드의 범죄 시리즈는 너무도 날 빨려들어가게 했다. 미드에 목말랐던 나는 cd를 잔뜩 구워 하루에 끝을 CSI와 함께 했다. 그 덕에 악몽은 덤이었지만. 그런 범죄의 세계는 날 과하게 집중하게 했지만 그도 잠시. 오래된 밤에 잠자리에 잘 안드는 병은 고치지 못했으니. 그러다 틀어놓게 된 것이 <보노보노> 였다. 몇 년 후 서점에선 ‘뭐뭐 해라~, 미친듯이 해라, 당장 해라’ 대신 ‘~ 안해도 돼, 괜찮아, 보노보노처럼 살기’ 이런 방향으로 그 흐름이 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난 큰 욕심인지 허상인지 꿈인지에 오르려다 보기좋게 낙상하다 그 어느 즈음인가 구사일생으로 잡은 밥벌이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어쩌다 산 보노보노 시리즈 양말에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너부리 양말을 신었을 땐 너부리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너부리처럼 약간은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하니 정말 너부리에게 과하게 몰입됐다. 매일 화병이 다시 돋는 사람처럼 항상 화난 목소리로 유일한 친구인 보노보노와 포로리를 발로 뻥뻥차고. 쭈구려 앉아서 이빨을 빛내며 누굴 발로 뻥뻥 차줄까 심술에 가득차 있지만(난 화병은 있긴 하고 얼굴도 심술난 너부리랑 비슷하긴 하지만 바로 빵빵 누군가를 차줄만큼 배짱이 있지도 않고 너부리만큼 귀엽지는 않으니 발로 뻥뻥차고 다니면 안된다.) 사실은 보노보노가 ‘어……? 그런가……? 아…. 어…?’ 하고 있을 때 너부리가 사실은 일을 해결하고 힘든 일은 도맡아 한다. 보노보노가 이상한 버섯인가를 먹어 심술쟁이가 됐을 때도 벼랑에 있는 해독 풀을 고생고생해가면서 따온 것도 너부리다. 씩씩거리면서 ‘거추장스럽고 바보같은 보노보노 녀석’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해결사 일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보노보노를 좋아하고 보노보노의 모습을 좋아하고 너부리도 좋아하지만 스토리 상으로는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잘 모르던데. 그 이유는 왜 일까? 아마도 심술이란 심술은 다 하면서 일하고 생색을 내지도 않고 화만 내 버리니 사람들은 너부리가 사실은 고된 일을 한다는 걸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이런 면에서 너부리에게 과도하게 몰입한 부분이 있다. 나는 표정에 따라 굉장히 인상이 달라지는데 사실 그런 면에 대해서 잘 인식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웃는 게 예쁘다는 말 한 마디로 실체 없는 감정을 키웠던 흑역사도 있다. 그리고 감정과 생각이 원체 잘 드러나 ‘해파리 인간’이라는 표현을 알고 무릎을 쳤던 적도 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가 심통난 심정이 얼굴에 가득한데 전세계적 바이러스 난세에 영상 미팅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내 말할 때의 표정과 얼굴,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의 표정 등을 보고 약간 충격을 먹기도 했다. 저래서 너부리랑 닮았단 이야기를 들었구나.
너부리는 사실 레서 판다라는 동물을 따서 그린 너무도 깜찍한 캐릭터인데 너부리가 심통이 난 얼굴을 갖고 누구나 그렇게 뻥뻥 차버리고 싶은 배경도 그럼직하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데 아버지는 너부리에게 집 청소를 해 놓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그리 살갑게 대해주지도 않는다. 언뜻 보면 폭력 아빠처럼 너부리도 아빠에게 엉덩이를 뻥뻥 차인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새삼 무섭다.) 하지만 너부리 아버지도 우울증에 걸린 너부리 엄마를 위해 바람따라 여행을 하게 해준 낭만적인 남편이다. 그래도 너부리 입장에서 보면 그런 낭만적인 아빠의 다정함도 느낄 수 없고
엄마는 항상 그리워 할 뿐이고 잠깐 왔던 엄마도 여행을 떠난다. 우울해질 수도 있는 너부리 이지만 아빠의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물려 받아 뻥뻥 차여도 같이 놀아 주는 친구들을 만나
우리에게 귀여움을 선물해준다. 하지만 심통난 캐릭터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법.
그래도 너부리는 없으면 안되는 인물이니, 조금 심통이 나 있어도 자세히 보면 심술만 있는 것이 아닌 굳은 표정의 주위 사람을 한번은 살펴보길 바란다.(딱히 내 험악한 인상을 좋게 봐달라는 말은 아니지만 조금은 그러하다.) 그의 심장은 보노보노만큼 여리고 귀여울 수도. 동전의 양면처럼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그게 전부가 아니란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