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고양이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 '검은 고양이'는 아빠가 내가 6학년 때 추천해준 책이다.
아닌가 5학년 때인가.
반장을 하면서 그랬나, 뭔가 그 때 소위 '날라리'라고 하는 고학년 패거리들에게 위협을
받을 때 였을까, 여튼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저지르려고 했던 일은 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크게 소년원에 갈 만 할 일은
아니었는데 누군가가 죽을 정도로 미워했던 거 때문이었나.
여튼 아빠는 과하게 도덕적인 이상이 높은 사람이고 특히나 타인에 대한 자기 희생에 대한
열정이 있으신 분이다. 가끔 신부님들이 나보다 더 신부냐? 라고 농을 할 정도다. 어떻게 보면
제도권안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보다 산전수전 겪어가며 일반 사람(?, 평신도라고 부른다)이
신부보다 더 위로를 줄 수도 있는데 그런 역할을 한다고 본다. 물론 그 지점에 있어서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세계관을 알게 모르게 나에게 강요되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의 무게감같은 거...)
여튼 '검은 고양이'는 서양 세계에서 악마까진 아니어도 거슬리는 것, 등등의 상징이 있다. 예를 들면
'우울증의 상징'이 '검은 개'인 것과 비슷한 듯하다. 그림자도 검은 색과 가까우니 그림자처럼, 또 어디에나
있을 법한 검은 개가 따라다니는 것과 같다고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은 아내를 죽인다. 성가시게 했나, 여튼 그랬다. 그리고 그를 성가시게 한 존재가
있었는데 길을 가다보면 있었는 지도 모르게 옆에 있는 존재가 검은 고양이였고 그 사실이 그를 매우
불편하고 성가시게 했다.
아내를 죽이고 시체 처리를 어떻게 할까 그는 고민을 한다. 그리고 굉장히 창의적이고 만족할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것은 지하에 굴뚝(?) 수리를 하면서 아내의 시신을 거기에 넣고 굴뚝처럼 완벽히 벽돌로
발라 버리는 것이다. 1인칭 시점인데다 요즘 유행하는 사이코패스처럼 몇 명을 죽인 사람은 아니라
자신의 일이 알려질까 조마조마하는 긴장감이 어마어마했다. 아마 어렸을 때 읽은 책이어서 그랬으리라.
그 땐 만화나 어린이 드라마에서 무언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으면 너무 긴장돼서 채널을 돌렸다가 평안해진 상태만
확인하곤 했을 정도였으니.
여튼 시신을 처치하고 해본 적 없던 벽돌 쌓는 일을 잘 마쳤다는 뿌듯함에 주인공은 아주 흡족해했다. 그리고 그가
매우 성가셔했던 검은 고양이도 보이질 않았다. 며칠 후 형사가 실종된 아내에 대해 물어 보러 왔고 그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벽돌까지 와서 주인공은 자신이 했다고, 또 동시에 눈 앞에서 형사를 속일 수 있다는 자신감에 마지막에 형사의 질문이 다 끝나갈 때쯤 벽을 탁탁친다. 그리고 들렸던것은.
'야아옹'
검은 고양이가 거기 들어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디든지 스스로 갇혀버리는 고양이라는 걸 알기에 더 무릎을 탁치게 만든다.)
--검은 고양이---
는 아마 그의 마지막 양심일지도 모르고, 사실 그에게 양심이 있었다는 것을 믿기 어렵지만, 아니라면 검은 고양이처럼 죄를 다 덮을 수 없는 그 꼬리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단편 소설이다. 지금 되돌이켜 보면 볼 수록 탁울한 단편 소설이다.
한강 실종 대학생관련 뉴스를 볼 때 마다 나는 <검은 고양이>를 생각한다. 예전 한강 실종 여성 사건이 사실은 살인 사건이었는데 경찰은 자살로 결론짓고(경찰이 업무가 너무 많은가보다, 많이 피곤하신 경찰, 검사, 판사 나으리들은 쉬시게 하여라...) 3년이 지나 살인범은 자백한다. 그에게 검은 고양이는 뭐였을까.
당신의 검은 고양이는 무엇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