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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Apr 15. 2018

건축은 우리 모두에게 말을 건다

<건축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내가 처음으로 가슴 깊이 건축적 경험을 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자코비언 복고Jacobean Revival 스타일의 학교 예배당을 방문했을 때였다. 목재 아치, 어두운 패널, 스테인드 글라스는 딱딱한 목재로 만든 신도들의 의자와 함께 어우러져 예수 순교의 고난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각된 설교단은 군함의 간판과도 같이 어지러운 학생들의 바다 위로 솟아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 건물이 기억속에 남아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건물의 만족스러운 기능 때문만은 아니다. 기능은 다른 건물도 가지고 있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었을까? 건축은 예술이지만 우리가 연극, 책, 그림을 볼 때처럼 집중하여 바라보지 않는다. 일상의 배경인 대부분의 건축은 전체보다는 부분적으로 경험된다. 저 멀리 첨탑의 아련한 모습, 연철로 만든 난간의 섬세함, 솟아오른 기차역 대기실의 공간들이 그러하다. 때로는 잘 만들어진 문손잡이, 작지만 그림 같은 전망을 보여주는 창문틀, 장미 문양이 새겨진 신도들의 의자처럼 건축은 작은 디테일로 느껴진다. 이런 부분들을 보면 <어떻게 이런 것들을 고안해냈지?>하는 생각이 든다. 

  건축은 늘 주변에 존재하지만 우리들은 건축의 경험을 생각으로 담아낼 개념적 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틀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건축가들의 이론과 의도, 비평가들의 발언, 순수한 미적 판단, 각자의 건축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을까? 건축가들의 논리는 일반적으로 설명보다는 설득을 지향하기때문에 대체로 신뢰할 수 없다. 또한 비평가들의 논리는 종종 지엽적 의견에 불과하다. 고전 건축의 치열 장식dentils, 홍예squinches, 연꽃 모양 곡선ogee curves 등과 같은 건축 용어는 아방가르드 탈구조조의의 난해한 전문 용어처럼 명쾌한 의미를 전해 주지 않는다. 물론 모든 직종은 그들만의 기술적 전문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법률 용어나 의학 용어가 텔레비전과 영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과는 달리 건축가가 화면을 통해 건축적 의미를 전하는 경우는 드물고. 화면에 나온다 하더라도 소설 '파운틴헤드The Fountainhead(1943)'에 등장하는 가공 인물인 하워드 로크Howard Roark나 영화 '더 걸 인 더 레드 벨벳 스윙(1955)에 나오는 실제 인물인 스탠포드 화이트Stanford White처럼 우리를 계몽시켜 주지 못한다. 

  건축적 이해가 왜 중요한가? 건축이 대부분 대중 예술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방송 매체에서 아무리 요란스럽게 스타 건축가의 작품을 비춘다 하더라도 건축은 개인적 취향의 편향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고딕 성당은 건축 마니아나 예술 감정사들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성당의 기괴한 괴물상에 놀라고 경건한 성인상에 교화되고 빛나는 장미창에 경탄하고 교회 안 회중석에 울려 퍼지는 성가에 마음이 움직였던 수많은 중세의 일반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건축이 위대하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머릿말 


  https://youtu.be/swOxKu80J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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