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완서의 산문집 두 권을 샀다. 퇴근길에 들른 알라딘중고매장에서다. 4년에 걸친 동업관계를 정리한 미팅을 마치고나서였다. 매일 보는 하늘과 거리 풍경이 다르게 다가오는 귀갓길이었다. 악수하며 이별했지만 마음이 헛헛하고, 내일부터 며칠동안 앓아누워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터벅거리며 지하철역을 향하는데 중고책방이 눈에 들어왔다. 가방에는 이미 2권의 책이 있고, 사무실에도 읽다만 책이 있었다. 책은 꼭 읽기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라는 지론을 따랐다. 지하 매장으로 내려가서는 여기저기 둘러볼 것도 없이 수필을 모아놓은 서가로 갔고, 박완서의 산문집을 보자 지금 내가 읽고 싶은 글은 요즘 작가, 요즘 책, 요즘 글이 아닌 오래 묵힌 이야기라는 걸 느꼈다. 대뜸 2권을 샀다. 13,600원이었고 카드로 긁으니 재난지원금으로 결재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요긴하게 쓰는 재난지원금. 오늘따라 낯설은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책을 펼쳤다. 이제 첫 문장을 읽고, 당연하다는 듯 첫 단락을 읽으며 책 안으로, 1931년에 태어난 작가의 글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오래된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내 헐거워진 마음을 내려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