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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Oct 29. 2021

용기를 내면 마음이 연대할 수 있을까

셋, 책일가

    친구들,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저는 요즘 여유를 되찾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저는 항상 무엇이든 강박적으로 꽉꽉 채우곤 했거든요. 일정도 빡빡하게 채우고 할 일도 가득가득 쌓아두고 또 체력은 완전히 소진되어 방전될 때까지 사용하는 그런 삶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러니까 사람이 세상 까칠하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거 있죠? 맞아요. 드디어 알아냈습니다. 제가 글만 쓰면 징징거리는 이유요. 여유가 없으니까 그랬던 거 같아요.      


사실 항상 다른 성공한 사람들과 저 자신을 비교하며 채찍질했거든요. 누구는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4시간 이상을 자 본적이 없다던데, 누구는 하루에 500칼로리를 먹고도 하루 종일 춤을 추고 다녔다던데, 누구는, 누구는, 누구는.......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보면 저라는 사람이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능력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하면서 그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친구는 저를 보고 같은 마음을 품었었데요. 저는 여러 가지 일을 거뜬히 즐겁게 지침 없이 해내는 것 같은데, 자신은 그렇게 해낼 엄두조차도 나지 않아서, 그냥 태생부터가 다른 거구나 라고 생각했대요.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났다고, 그렇게 이야기해 주었어요.     


너무 신기했어요. 왜냐면, 저도 그 친구를 엄청 부러워하고 있었거든요. 조금은 질투도 했고요. 왜냐면, 저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이 자꾸만 불현 듯 솟구치는데, 그 친구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이 평온하고 고요하게 살아가는 줄 알았어요. 저는 타고난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을 최대한 잊으려고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는데, 그 친구는 타고나기를 그런 것 없이 깨끗하고 당당하게 태어난 줄 알았어요.      


인간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모두 같은 정도의 장단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게임을 시작할 때 모두에게 똑같이 100이라는 점수를 주고, 힘과 공경력 민첩성 등의 분류 중 어디에 투자할지를 정하게 하는 것처럼요.      


이번에 번역한 책은 ‘마음의 연대’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요. 시골 마을에서 한 농부가 죽었고, 그 아내가 용의자로 지목되는데요. 증거를 찾는 과정에서 남자들은 살해 동기라고 볼 수 있는 학대의 흔적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여자들은 단숨에 알아차려요.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와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어요. 다들 똑같으니까.
 다들 겉에선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 똑같은 삶을 살아가니까.”
 - 125     



어쩌면 우리가 저마다 외롭고 괴롭고 또 힘들어하고 있는 이유는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낼 용기가 없어서 ‘공감과 연대’라는 보상을 얻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요?


지금은 큐레이션 책방의 대표이신 분이 광고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 한 번도 편하게 잠들어 본 적이 없다고, 부사장 자리 사퇴를 결심하신 건 변화하는 세상에서 팀을 더 많은 성공으로 이끌 능력이 부족했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렇게 말씀하신 걸 봤어요. 여러 연예인이 자신의 이름이 붙은 식단을 따라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며 실제로 활동할 당시 병을 얻어 고생했으며 쓰러지는 것은 일상이었다고 고백하는 영상들을 접했어요.      


<<마음의 연대>> 가 쓰여진 19세기에는 여자들이 대학에 가지 않는 게 보편적이었다고 해요.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집안일과 농사일을 돌봐야 하고 육아도 물론 여자의 몫이었다고 해요. 거기다가 대부분은 남편의 학대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고, 그런 고된 일상 속에서도 아이들을 평균 10명 정도 출산했다고 해요. 그리고 그 누구도, 왜 그들만 그렇게 고되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고 해요. 여성 기자였던 ‘수잔 글래스펠’이 농부 존 호색 살인사건을 취재하며 용의자로 지목된 호색 부인의 생애를 조명할 때까지, 그저 모두가 농부의 아내로서 감내해야 하는 비극적인 삶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해요. 그래서 그 사건 취재를 마지막으로 기자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어 <<마음의 연대>>를 집필하셨다고 해요.     

 

우리는 과연 최선을 다해 살아야만 하는 걸까요? 조그만 자극에도 뻥 하고 터져버릴 풍선처럼 있는 대로 부풀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요? 여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한 달에 한 권 나오는 책도 두 달에 한 권으로 미뤄질 것 같은 요즘인데, 여유로워진 제 삶을 보고 세상이 손가락질하며 비난할까 봐 아직은 두렵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끈기를 가지고 현주소와 목적지를 계속 확인하다 보면, 언젠간 여유로운 최선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언제나 만연한 리밍님의 여유도, 부단한 노력의 결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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