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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수 Aug 01. 2022

농산물 때문에 치솟는 소비자물가?

최근 휘발유와 경유는 물론 외식물가와 주요 공산품·가공식품 물가까지 일제히 올랐다. 그런데 과연 정부의 농산물 비축  가격안정 정책은 소비자물가지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숫자 속에 진실이 있다.


농산물이 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가구에서 소비를 목적으로 구입하는 대표 품목들의 가격 변동을 가중평균해 만든다. 가구 구입 비중이 높은 품목의 가격이 많이 오르면 소비자물가지수도 크게 상승한다. 구입 비중이 낮은 품목은 가격이 올라도 지수 상승폭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통계청은 458개 품목의 가중치를 설정하는데 이 가운데 농축수산물은 78개 품목이 포함된다.


농축수산물 가중치는 1990년대까지 150을 넘었으므로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물가지수도 크게 올랐다. 그러나 2021년 농축수산물 가중치는 83.8로 낮아졌다. 이젠 한 가구가 평균 1000원을 쓸 때 83.8원을 농산물에 쓴다는 얘기다. 반면 공산품은 물론 서비스업과 기타 품목의 가중치는 농축수산물보다 훨씬 크다. 개별 품목별로 봐도 월세는 44.3, 휴대전화 이용료는 31.2 등이다.


가구당 지출 패턴, 소비자 행동 패턴이 다 바뀌었지만 물가가 오를 때마다 정부가 농산물 가격에 유독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 20년 전에 머물러 있는 발상이다. 농산물 가격 조정에 나선다 하더라도 소비자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서다.


더구나 농산물 가격은 공산품과 다르다. 연중 같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다. 작물마다 수확기가 다르다. 수확기에는 공급이 늘어 가격이 낮아지고 비수확기엔 가격이 오른다. 하늘의 뜻이기도 하다. 집중호우·가뭄·태풍 등 자연재해로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현재 농산물이 ‘비싸다’ ‘싸다’는 것은 당장 전월 대비, 전년 동기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오류가 크다. 평년(지난 5년간 가격 평균)이나 길게는 10년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농민은 농산물 가격이 치솟든 폭락하든 이익이 거의 비슷하다. 오르면 오른 대로,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이익은커녕 손실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장처럼 찍어낼 수 없어서다. 농산물의 수요와 공급은 결코 탄력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당장 가격 변동이 있다고 해도 크게 수요와 공급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자를 예로 들어보자. 감자 생산비가 1㎏당 600원, 생산량이 3.3㎡(1평) 당 10㎏이 손익분기점이라고 치자. 어느 해 감자 가격이 1㎏당 1200원으로 생산비보다 크게 높아졌다면 그건 그해 감자가 적게 나왔다는 뜻이다. 대부분 자연적인 현상이 이유다. 병해충·가뭄·태풍 등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생산 주체인 농민은 1년 365일, 수십 년간 농사를 위해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불가항력적 어떤 원인’으로 생산량이 좌지우지된다.


농업을 서비스·제조·유통과 같은 논리로 바라봐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농산물 가격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물가 상승 주범은 농산물’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식량주권을 지키고 더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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