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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슬로 Nov 22. 2022

핑계댈 수 없네

22.11.21

이제 엄마 아빠가 모두 상담을 받기 시작하셨다. 아빠는 상담을 다녀온 다음 한주간 하루도 안 빼고 혼자 새벽기도에 갔다. 나를 슬프게 했던 사람, 상황은 더이상 곁에 없다. 그리고 상사가 말했다. S님은 지금 프로젝트 목표들 다 끝내고 남을 만큼의 역량이 있으니 성장 멈출 생각 말고 더 잘 정리하고 표현하는 데에 집중해 보라고. (결국 전 못해요 실력 없어요 등의 핑계는 이제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10분씩 3번 인터벌 달리기를 뛰고 와서 땀범벅이 된 채로 화장실에 뛰쳐들어가 샤워를 하는데, 어떤 생각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아, 이제 무엇에도 핑계를 댈 수가 없네.

변화를 위한 모든 상황이 갖춰졌다. 절대 안 변할 것 같은 부모님도 변하고, 자기파괴적인 관계의 패턴도 끊어버리려고 어쨌든 모든 걸 다 제쳐놨다. 회사 일은 나만 잘하면 된다. 자, 이제 무슨 핑계를 댈 수 있지? 없다! 이제 내 몫만 남았다.


한편 아빠에게 어제 말했다. 사람들이 나 빼놓고 다들 연애고 결혼이고 잘만 하는 것 같다고. 그러자 아빠가 답했다.

"그럼 이건 어때? 아~저는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어요ㅠㅠ 란 말을 하는 멋진 사람이 되는 거지. 네 할일을 열심히 하면 빛이 나서 모두들 너를 주목하고 끌려오게 되고, 이직의 기회도 주어질 수도 있고. 다 좋지 않니?"

그러면서 네 친구들 절반이나 결혼했냐? 라고 묻는 것이다. 누군가를 정말 만나고 싶으면 아빠도 여러 인맥을 통해 적극적으로 나설 순 있지만, 아직은 그 방법을 쓸 타이밍은 아닌 것 같다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다.


돌아보니 조급하고 불안했던 과거의 우리 엄마 아빠는 어디 가고 지금은 허허 우린 걱정 안해~ 하는 180도 달라진 엄마 아빠가 남았다. 다른 집은 연애 왜 안하냐, 결혼 빨리 해야지? 라고 닥달한다는데 우린 뭔가 부모 자식 입장이 바뀐 것 같아서 괜히 뻘쭘해졌다. 아빠의 말을 듣고 다니 마음 속을 부유하던 여러 문장에 마침표가 찍힌 느낌이었다.


결국 다시 돌아와 이 자리엔 나 홀로 남았다. 상담 선생님이 방금 한 그 말, 얼마나 심오한 말인지 알고 있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변화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걸어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아직 나는 나를 사랑하는게 좀 어렵고, 눈으로 보이지 않으면 믿지 못한다. 사랑과 평화가 온전히 자리잡기엔 아직은 생채기가 좀 많이 남기도 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히브리서에서 이야기했다. 언젠가 사랑과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가득찰 나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또 나아가는 것이겠지. 오늘의 심오함을 간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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