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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슬로 Mar 23. 2024

플러스와 마이너스

24.03.22

또 한 해가 지나 연말평가 이야기를 듣는 시즌이 왔다. 2023년은 본격적으로 PI 생활을 하며 프로젝트를 소화해낸 한 해였는데, 정말 매 분기를 생각하면 죽고 싶단 생각이 끊인 적이 없었으나 정말 놀랍게도 모든 프로젝트가 평타 이상은 치며 마무리된(...) 그런 묘한 한해였다. 우습게도 퇴사와 자살 충동과 온갖 스스로를 해하고 싶은 욕망이 한 해동안 들끓었는데, 11월에 일주일 휴가를 다녀오고 그 사이에 대만도 다녀오자 모든 것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이토록 별거 아닌 우울이었다니? (사실 그 때 휴식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절대 어릴 적 아파도 학교는 가야지 식으로 스스로를 대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음...)


아무튼 요는 상사가 "(2년 넘게 봐 왔는데) 이제야 드디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맞춰졌다" 라는 거였다. 아니 그럼 대체 그 전엔 어쨌다는 건가? 물론 이제 평균에 수렴했다니 다행이긴 한데... 갑자기 지나간 세월들이 부끄러워졌다. 사실 나는 회사 면접에서 만장일치 합격 판정을 받고 들어왔다고 전해들었었다. 근데 그런 사람이 늘 마이너스인 모습만 보였다면 상사 입장에선 상당히 곤란했을 터. 게다가 나는 상사가 직접 데리고 있으려고 뽑은 사람도 아니었다. 원래는 다른 분의 팀 산하로 보내려고 뽑은 사람이었으나 여러 운명의 장난과 어른들의 사정(?) 으로 인해 지금 상사 밑으로 오게 되었던 거였고.


아무튼 그런 사람을 2년 넘게 지켜보고 키워냈으니 우리 상사의 인내심은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도 않고, 유관부서들이 일은 다 떠넘겨서 혼자서 맨날 울면서 일했던 그 3-4분기 프로젝트. 죽고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살게 했던 그 프로젝트... 오히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은채 내가 잘 끝내서 상사는 거기서 내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정말 웃기게도 그때만큼은 내 높은 의존성이 사라지고 혼자 의사결정이며 계획 세우는 것까지 다 하더란다. (내가 그랬다고???) 그러니 지금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하라고 했다.

(오메)


아무튼 올해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의존성 줄이기. 둘째.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고 숲을 보기. 놀랍게도 두가지 모두 늘 상담에서도 다루었던 얘기다. 인간 삶의 성공은 의존을 어디로 돌리느냐.. 에 달려있다고 <아티스트 웨이> 에서 그랬었는데 사실 건강한 의존을 부모님에게서 못 배웠던 나로선 세상에 나와 만났던 '믿을만한' 사람들이 모두 내 의존 대상이었던 것 같다. 걔중엔 정말 의존은 커녕 나에게 분노와 상처만 남긴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 상사는 그동안 내 의존을 건강하게 받아 주셨다. 상담 선생님도 그랬고... 그 의존을 떼어내는 과정이 그렇게 지난하고 고통스러워서, 내 3, 4분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테일과 숲. 사실 이건 내 불안하고도 연관이 깊은 문제라는 걸 듣자마자 바로 알았다. 나는 작은 부분이라도 잘 해결되지 않으면 넘어가지 못한다. 이게 좋을 때도 있는데 아닐 때도 있다. 그냥 대범해져야 하는데 아직 그게 잘 안되어서, 이래저래 방법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디테일 에 불안해하지 않고 숲을 보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 찾은건 스프링노트에 업무 주제 하나에 대한 내 생각을 쭉 써서 정리하는 것. 그거를 최대한 기분 좋은 세팅 하에서 하는 것이다. 최근엔 홍대 <아이덴티티커피랩> 에서 내 최애 커피 유튜버인 삥타이거 선생님이 내려주시는 비싼 커피 마시며 정리했다. 브금도 죽여줬다.  그러니 잘 되더라.


아무튼 올해는 갑자기 회사에 시어머니(??)도 늘어나고, 상사는 더 바빠지고, 인도 사람인  디렉터도 새로 오고, 갑자기 정신차려보니 팀엔 나 혼자 남았는데 (이제 1명 더 오긴 하지만) 프로젝트는 쏟아지고.. 변화가 많다. 근데 돌아보니 1분기가 가고 있는데 펑펑 우는 날은 좀 있어도 전처럼 번아웃이 오지 않아서 너무나 신기했다.

이 모든 난리부르스를 다 아는 상사에게 물었다.


 "근데 저 이제 멘탈 좀 많이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아요?"


"ㅇㅇ님은 계속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요. 많이 올라온거예요."


그렇군. 그나저나 서른셋이 되니 회사일은 좀 괜찮아져도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연애 및 결혼 꼰대로 변해버리는 일로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그들이 꽂아댄 비수로 멘탈 다 털리는 날이 잦긴 했는데 .. (사실 오늘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하루 날림) 그래도. 그래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나 제로가 되었다는 건 이제 밑빠진 독 같은 삶은 안녕이라는 것... 이제 채우고 꺼내 쓸 수 있는 삶이라는것... 그것은 아주 좋은 자산이 된다는 것.

내 인생을 지적하는 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것...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2024년은 채우는 한 해로 살자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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