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헝가리 - 부다페스트(2)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
우리가 영웅광장에 도착할 때쯤에는 우산이 없으면 순식간에 홀딱 젖어버릴 정도로 비가 내렸다. 먹구름이 잔뜩 낀 영웅 광장의 가브리엘 동상은 천사가 아니라 천둥번개를 몰고 올 악마나 마법사처럼 보인다.
광장에는 공사가 한창이라 영웅들의 얼굴도 가까이에서 보지 못했고, 우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옆에 보이는 미술관으로 뛰어들다시피 들어갔다. 무작정 들어간 그곳에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겸 전시를 보기로 했다. 정말 멋지고 잘 찍은 사진들이 많아서 한참을 재미있게 보고 있던 중, 어딘가 불편해지는 전시물을 맞닥드리게 되었다.
빔 프로젝터가 하얀 스크린에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쏘아댄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어폰을 끼거나 핸드폰을 응시하며 힘 없이 걸어가고 있고 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간혹 한숨을 쉬는 사람들도 보인다. 설정인지도 모르겠으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파란 눈동자의 꼬마 아이가 이 전시물을 보고 엄마에게 뭔가를 물었다. 엄마한테 대답을 들은 그 아이는 나와 잠깐 눈이 마주쳤고, 이내 엄마의 손을 잡고 다음 전시실로 이동했다.
그 아이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시물 하나에 마음이 불편하고 속상해진다.
영웅광장 옆 Kunsthalle 미술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