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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자왕 Sep 17. 2022

내향형 아내와 외향형 남편이 만났을 때

참 재미있는 이야기

오늘은 5년간 남편과 살면서 전혀 몰랐던

어제 처음 듣고서 컬쳐쇼크가 왔던

그런 이야기를 기록에 남기려 한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향형 인간인 나와

결혼 초기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10팀이나 있었던 초외향형 남편과 함께 살면서


정말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혼자만의 충전시간이 필요하다며' 나는 일명 [안나의 시간]이란 것을 만들어 일주일 내내 아이들과 시달리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 혼자 까페에 가는 시간을 만들었고


남편은 본인의 모임에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을 시도때도 없이 시도하며 기쁨과 낙담 사이를 오가곤 했다


처음엔 서로 너무 달랐지만

이제 5년 정도 살고 보니

나도 남편의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어

그들이 꽤 익숙한 내 사람들이 되었고


남편도 육아에 시간을 들여야 하다보니

10팀이었던 모임이 5팀으로 이제는 3팀까지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가 되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다른 모습에서

조금씩 닮아가는 모습이 되어 갔다

지난 5년동안


둘째도 이제 3살이 되고

이젠 육아만 하던 우리가 아닌

저녁에 무엇을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봐준다면 일주일에 2번 정도는 개인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책을 읽거나 야근을 하거나 그런 시간들이 확보될 때마다 기뻤는데, 이상하게 남편은 예전보다 오히려 더 불만족 스럽고 행복이 없는 듯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도 본인이 왜이렇게 불행한 기분이 드는지 알지 못하였고, 여행을 가면 나아질지, 혼자 스쿼시를 배우면 좋아질지, 이런저런 비책들을 생각해보았지만 어느새 "됬어, 안할래" 라며 낙담하기 일쑤였다.


지속적인 우울감 속에 있는 남편을 보며

나도 힘이 자주 빠졌고, 어떤 기회가 되어

"당신은 10년전보다 훨씬 풍족한 삶을 살고 있고, 3년 전보다는 훨씬 누릴 수 있는 시간도 많아졌어. 지금 느끼는 불행은 외부적 요인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뭔가를 더 해준다고 해서 더 나아질 수 없을 것 같아. 이젠 내가 당신 스스로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고 극복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없는 것 같아" 라고 말하게 되었다.


남편은 평소와 다른 나의 모습에 스스로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저녁에 같이 술 한잔 하면서 남편의 지난 시간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남편도 본인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깨달은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1. 남편은 누워서 유투브를 보는 것으로는 전혀 [회복]이나 [쉼]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 퇴근하고 집에 와서 내가 아이들과 놀고 있는 동안 남편은 쇼파에 누워서 유투브를 보거나 커뮤니티 글을 보는 일들이 많았다. 속으로 나는 '쉬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고, 1시간 정도만 내가 애들을 보다가 오빠가 충분히 쉬면 이제 나도 좀 쉬어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 그런데, 1시간이나 핸드폰으로 유투브를 봤던 남편이 애들을 봐달라고 하면 뭔가 스트레스가 가득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보는 것이다. (왜지? 그렇게 1시간이나 놀았는데, 왜 스트레스가 안 풀려 있는거지?)


외향형 사람에게 '누워서 유투브를 보는 것'은 전혀 '쉼'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왜지? 나는 혼자서 그렇게 쉬는 시간을 하루종일 얼마나 갈망하는데? 너무 이해가 안되서 그러면 앞으로는 누워있지 말고 서 있으라고 했다ㅋㅋ


그럼, 외향형 사람은 언제 힐링이 되는데? 라고 말을 하니, 지금 나와 술을 마시는 이 시간이란다. 나와 산책을 하거나. 친구들과 고기를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시간이란다.


그리고 최고의 시간은 친구들과 만나는 그 시간에 내가 함께 하는 것이란다. (오 마이 갓) 친구들은 상추고 나는 고기라나.. 상추만 먹어도 되긴 하는데 고기를 먹으면 환상적인 것처럼, 그 모임에 내가 가야 안정감과 행복감과 기쁨이 함께 있다며...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남편은 지난 2-3년간 우울함이 자주 왔었는데 그럴 때마다 스쿼시를 칠까? 책을 읽을까? 하면서 대안들을 찾았었다. 그런데, 왠지 모를 공허함에 과거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도 잘 시도하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혼자 하는 것"이어서 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몇가지 시도해볼만한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1. 매주 월/목 내가 아이들 하원을 하고 저녁 시간에 남편은 친구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고정적인 시간이 확보되는 것이라고 하길래 (약속을 미리 잡아야 하니) 아예 요일을 정해버렸다.


2. 첫째와 남편의 단둘만의 시간을 좀 가져보기로 했다. 내가 계속 아이 둘을 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그나마 말이 통하고 나를 닮은 첫째와 남편이 단둘이 대화할 때 남편이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둘째와 같이 있으면 둘째가 훼방만 놓으니 대화고 뭐고 되질 않더라. 그래서 그날은 둘째가 잠들었길래 첫째랑 같이 남편이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걸 옆에서 들어보았는데, 남편이 첫째를 보면서 귀여워하는게 느껴지더라.


3. 매주 하루는 둘만의 오전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이건 약 한달전부터 계속 하던 것인데, 아이들 등원을 시키고 1시간 정도 남편 회사 주변에서 산책을 하거나 모닝커피를 마시고 내가 10시까지 출근하는 것이다. 아이들 없이 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에 남편이 '내 삶의 한줄기 희망' 이라고 표현할 만큼 그 시간을 참 기뻐하는 것 같았다.


4. 마지막으로 빠른 은퇴를 꿈꾸던 남편이었는데, 남편만 먼저 은퇴하는건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나 없이 혼자 노는건 재미 없어할 사람이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머리로만, 이론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외향형' 사람인 남편에 대해 거의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남편 본인 조차 모르던 본인의 모습을 알아가는 단계인가보다.


아무쪼록, 나와 남편이 함께 만나 서로 깍이고 둥글둥글 예수님 닮은 사람 되라고 우릴 붙여주셨으니 그 가르침에 따라 조금 더 남편을 알아가고, 아껴주는 우리가 되어야지-


오늘의 기록은 여기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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