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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 1승, 누군가의 모든 우주

[리뷰] 영화 <1승>

by 박 스테파노

영화 <1승>을 OTT 스트리밍으로 만났다. 개봉일이 작년 12월 초이니 비교적 짧은 개봉을 거쳐 IPTV나 OTT 등 스트리밍 시장으로 풀렸다. 짧은 기간들이 말해 주듯 영화는 31만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대중에게 잊히고 있다. 주연이 송강호에 박정민이라는 캐스팅에도 평단의 평가는 물론 관객의 호응도 얻지 못한 결과다. 그 이유를 찾는 일은 영화 시작 얼마되지 않은 시간에 쉬이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재미도 의미도 찾기 어렵다.


영화 <1승>은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한국에서 스포츠 장르가 흥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속설의 증명 레퍼런스가 하나 더 늘어난 의의만 남았다. 영화의 서사는 뻔하고 직선적이다.


해체 위기를 맞이한 프로 여자 배구단이 관심 종자 신흥 재벌(박정민) 에게 매각되고, 그 구단주는 관심 끌기를 통한 이익 창출을 도모한다. 선수를 팔아 적자를 메우고 문제 선수를 복귀시켜 최소한의 전력을 유지한다. 그리고 내세운 공약이 '리그 중 1승에 총 20억 현금 이벤트'다. 그를 위해 지도자의 꿈을 버리지 못한 실패한 배구 인생 우진(송강호)을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예상 가능한 도전기가 펼쳐진다. 이 영화의 서사는 이것이 전부다. 특별함도 참신함도 없고 아주 작은 반전도 기대하면 안 된다.


영화 <1승> 공식 포스터, 제공=(주)루소이소니도스


여러 편이 걸린 개봉 극장 멀티플렉스에서라면 절대 선택할 수 없는 이 영화의 미덕은 그야말로 시간 소진과 생각 덜기다. 그 이상의 영화적 의미를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송강호와 박정민 캐스팅이 유일한 승부수처럼 보여 그 외의 조단역의 연기 밀도는 학예회 수준에 머물러 있다. 스포츠 물의 특성상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을 겸비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려면 많은 시간과 자본 투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국가대표>, <우리 생애 초고의 순간> 같은 흥행의 성적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자본의 한계에 놓였다면 서사와 이야기를 더 세밀히 다듬어 <4등>이나 <도약선생> 같은 의미 있는 작은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업의 테두리에 갇힌 한국 제작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흔한 단선 서사의 졸작이 영화 <1승>이다. 2023년에 개봉된 농구 영화 <리바운드>와 다른 듯 유사한 망작의 표본이 되었다. 물론 <리바운드>보다 더 단순한 구조와 평면적 인물들로 인해 사유의 소비를 덜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라 할까.


좋은 평가 힘든 영화를 보면서 아무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학 평론가 오길영의 표현에 따르면 영화와 문학의 재현의 의미는 '힘의 포착'에 있다고 한다. 바로 우리의 삶과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포착하는 것이 예술의 작용이라는 이야기다. 그 힘의 포착을 위한 영화, 문학의 여러 기능 중 '환기'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어설픈 습작이라도 이 환기를 통한 힘의 포착이 하나라도 가능하다면 존재 의미가 깊다. 그것이 장면이든 인물이든 대사, 문장이든 주제, 소재든 상관없이 말이다.



영화와 문학의 재현 목적은 '환기'


영화를 보고 글을 남길 때 작품의 일반적인 성과를 떠나 거론할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작품의 일반적인 성과는 작품성이라는 평단의 평가와 흥행성이라는 대중 반응의 성과 모두를 아우른다. 완성도와 연출력이 엉성해 '작품'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을 이끌어 낸 것들은 적지 않다. 반대로 배급과 마케팅이라는 자본ㆍ산업의 장벽에 가로막혀 대중들이 경험할 기회조차 상실한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한쪽으로 치우친 성과의 경우 말과 글로 보탤 이야기는 어렵지 않다. 좋은 소재가 된다. 그러나 그 두 가지 모두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경우는 스쳐 지나가게 두기 마련이다. 기억에서 쉬이 잊히는 것이니 기록으로 굳이 붙잡아 두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런 스쳐 보내는 영화들 중 이따금 글로 풀어내는 것들이 있다. 그 이유는 영화의 일면이, 아주 작은 부분이 사유를 자극시키는 경우다. 문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환기'같은 것 말이다.


일종의 환기는 타임 아웃 같은 순간에 다가 온다.제공=(주)루소이소니도스

문학에서 '환기(喚起)'는 작품 속에서 특정 대상, 상황, 이미지 등을 통해 독자에게 추상적인 개념이나 감정, 주제를 간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는 직접적인 설명 대신 상징, 암시, 분위기 조성 등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 환기는 작품의 주제를 강화하거나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환기는 독자로 하여금 작품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해석하고 공감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해 준다. 작가는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을 자제함으로써 독자의 주체적인 사유를 유도하고, 작품의 깊이와 다층성을 확보한다. 이는 문학이 지닌 미적 격조와 사유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법 중 하나다. 영화라는 서사의 장치도 문학의 미학이 준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어설픈 영화에서 딱 한순간만이라도 포착할 수 있다면 소중한 시간을 그저 날리는 허탈은 방지할 수 있다.



각자의 우주가 모두의 우주가 될 때


영화 <1승>이 주는 환기는 영화 속 우진의 스승인 문오성(김홍파)의 대사에서 만났다. 오프닝 내레이션에서도 나오는 대목인 배구공에 대한 사실적 설명을 우진의 도발 수락 인터뷰에서 말한다. 배구공의 지름은 20.5cm, 270g, 스파이크의 최대 속도는 120km/h, 상대 코트까지의 도달 시간은 0.5초인데, 그 짧은 시간의 무게와 속도는 코트 안의 선수들에게는 우주와 같다고 말이다.


그 우주와 같은 무게를 이겨내야
간신히 1승을 할 수 있어.


배구는 선수들의 피와 땀이 담긴 노력이 우주와 같은 공 하나를 받아 1점을, 1세트를, 그리고 1 승을 따내는 일이라고 설명하며 1승이 가진 수많은 가치를 역설한다. 공 하나의 우주를 받아 내 다시 상대에게 우주의 무게와 속도로 돌려주는 행위에는 코트 안팎에서 경기에 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우주의 설명을 위해 개인 사연의 빌드업과 작은 소동, 힘든 도전 임무의 완수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현이 영화 <1승>이다.


이 영화에서의 환기는 이 대사 하나에서 마주하는 아주 작은 응원의 힘이 아닐까. 루저들이라 평가받는 각종 실패자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응원이 당연해지는 순간에 묘한 의지를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우주를 감당해 낸다면 결국엔 정상에 올라 오르막의 정점에 설 수 다. 극 중 우진의 마지막 말처럼 정상의 밑에는 절벽만 존재하지 않는다. 계곡을 건너 시대와 평지도 만나고 꽃과 새들과 인사 나누며 길을 걷다 보면 다시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게 인생이다.


모두의 우주가 하나의 공에 담긴다.제공=(주)루소이소니도스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애초에 불가능한 것으로 들리기 쉽다. 영화와 문학을 통해 환기를 얻고, 아무리 변화의 힘을 포착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꿈쩍이라도 할 리가 만무해 보인다. 하지만 보이는 세상이라는 것은 각자가 만든 우주를 투영한 모습이다. 세상의 변화는 자신이 만든 우주를 변화시켜 투과하는 영향력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관점과 시선이 달라지니까.


최근 여러 사안들로 세상도 마음도 시끄럽다. 시끄러운 세상은 복잡한 마음들의 아우성 때문이다. 그 복잡한 마음은 언제나 자신의 우주 안에서 생성하고 소멸하는 별과 같다. 이럴 때일수록 내 우주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중요하다. 각자의 우주가 바뀌면 모두의 우주는 당연 변화하게 되어있다. 이 우주를 바꾸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바꿀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이다. 역설적으로 영화와 문학의 작용이 의미가 깊어질 수 있는 날들이다. 스스로 작가라 생각 삼는 모두의 환기가 필요한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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