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 어디 있느냐, 네 번째 동방박사여

늦은 아침 생각의 시창작 19

by 박 스테파노

https://brunch.co.kr/@parkchulwoo/1109


도시는 언제나 불빛을 쫓아 고층 빌딩의 네온사인과 끊이지 않는 광고판의 환광이 하늘의 별을 대신하고 사람들은 그 불빛에 눈이 멀어 출근길 지하철에서 서로의 얼굴을 잊고 손에 쥔 커피와 스마트폰만 바라본다


그러나 그는 길을 멈추고 출근길 인파 속에서 발을 멈추고 구걸하는 노인의 떨린 손을 붙잡았다


사파이어는 더 이상 보석이 아니었고 그것은 그가 건넨 작은 지하철 티켓 하루를 연명할 수 있는 따뜻한 빵이 되었고 루비는 더 이상 왕의 예물이 아니었으며 폭우 속 골목에서 아이의 발을 덮어준 붉은 우산이 되었고 새벽 알바를 마치고 귀가하는 소녀의 어깨에 걸쳐진 낡은 외투가 되었고 진주는 진열장 안이 아니라 도시의 눈물 같은 가로등 불빛으로 흘러내려 쓸쓸히 걸어가는 이의 그림자를 따라갔다


사람들은 불빛을 보았고 그는 얼굴을 보았다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의 중심을 찾았고 그는 다리 밑의 잠든 사람을 찾았다

사람들은 축제와 세일을 노래했고 그는 편의점 앞에서 울고 있던 아이를 안았다


신문에도 기록되지 않았고 뉴스에도 남지 않았으나 도시의 그늘진 구석마다 그의 발자취는 조용히 남았고 사람들은 잊었지만 작은 손의 체온과 낡은 구두의 먼지 속에 그의 손길은 아직 따뜻했다


너 어디 있느냐

오래된 물음은 여전히 도시의 소음 속에서 메아리치고 그는 말하지 않고 대신 멈춰 선 발걸음으로 내어 준 지갑의 빈자리로 올려다 본 눈빛으로 대답했다


너 어디 있느냐

이 물음은 오늘도 내 귀에 남아 빌딩 숲 사이를 바삐 오가는 내 발걸음을 잠시 붙잡고 나 또한 멈춰 서서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라고 낯선 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가장 작은 이들의 울음 속에서 내 자리를 찾으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그저 빵을 사러 갔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