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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Jan 05. 2025

네 번째 동방박사의 이야기 - 너 어디 있느냐?

주님 공현(公顯) 대축일

오늘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주님 공현(公顯) 대축일’이라고 합니다. 공현(公顯)이라는 말은 '공공연히 드러나심'을 뜻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주현절'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의 탄생은 사실 피난길 도중이었습니다. 호적 등록을 위한 길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결국 신생아 학살 명령 등에 따라 피신에 나선 길 위에서 탄생을 맞이합니다. 이 탄생을 처음 만난 이들은 이름 없이 가난한 어린 목동들이지만, 사회라 이르는 세상에 드러난 사건은 동방박사의 알현에 의해서입니다. 그 동방박사의 방문을 기념하는 축일이 '주님 공현(公顯) 대축일’입니다.


인천교구 조광호 신부 '주님 공현'


동방박사들은 이교도이며 이방인들입니다. 마기(Magi)라고 불리듯이 이들은 점성술, 천문학, 연금술에 능한 과학자이자 선지자들이었지만, 유대교 사회에서는 우상을 숭배하는 불신자들로 여기기만 했습니다. 조로아스터교 등 이방 종교의 교종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듯이 예수는 탄생부터 이방인들에게 우선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기에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라는 커다란 신비까지의 복선이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과 부활은 특정한 민족과 교파의 점유물이 아닌 '모든 이의 모든 것'을 뜻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세 사람으로 특정되었는데 이는 이들이 가져온 선물이 황금, 몰약, 유황이라는 세 가지이기에 비롯되었습니다. 이 동방박사의 알현과 관련해서는 여러 문학작품과 명화들이 있습니다. 그중 러시아 민간 설화에서 비롯한 '네 번째 왕'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훗날 소설, 동화로도 작화되었고 이름마저 붙여 말하곤 하지만, 정확한 출신과 정체는 전설 속에 있습니다. 파사(페르시아)에서 온 조로아스터교 사제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이야기를 추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알현


동방박사 세명과 약속한 장소에 늦게 도작한 네 번째 동방박사는 일행을 따라잡으려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사파이어, 루비, 진주 보석 세 가지를 예수 탄생 선물로 준비해 일행을 쫓지만 좀처럼 따라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길을 가다가 병이 깊어 신음하던 히브리인 부녀를 만나 외면하기 어려운 마음에 치료를 돕고 사파이어를 내어 줍니다. 그때 히브리인이 축복과 감사를 전하며 먼저 간 동방박사 일행은 예루살렘이 아닌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일러 줍니다.


다시 발길을 재촉해 베들레헴으로 향한 파사의 동방박사는 헤로데 왕이 벌인 태어난 지 2년 미만의 죄 없는 아기들의 학살을 목격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 아기엄마의 구조 요청을 듣고 그 집에 방문한 경비병에게 루비를 주어 돌려보내어 그 아기와 엄마를 구합니다. 이에 감사를 전하며 예수의 가족들은 에굽(이집트)으로 도피했다고 전합니다. 이에 박사는 마지막 진주를 내어 주고 낙타를 구해 애굽으로 향합니다.


애굽에 도착했지만 예수나 동방박사를 찾을 순 없었습니다. 이방인들과 타민족을 노예 삼는 애굽에서 노예로 팔려간 모자의 이야기를 듣고 노예상에게 대신 노역을 하겠다 자청하며 그들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노예의 시간이 33년이나 흘러 비로소 노구의 몸으로 자유를 맞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그곳에 도달하자 사람들이 바위산 골고다 근방에 몰려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 봅니다. 그곳에는 십자가 세 개에 죄수들이 매달려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가운데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죄명은 '이스라엘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힘들게 고개 들어 그 죽어 가는 사람과 눈을 마주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그의 눈은 '괜찮아요. 잘했어요'라고 인자하게 말을 건네는 듯했습니다. 비록 예수에게 준 선물은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가장 비천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준 것이 곧 그에게 준 큰 선물, 복음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영화 <네 번째 동방박사의 비밀> (Paulist production)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만 천국에 간다는 말은 복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갈이 됩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의 신비 실천입니다. 믿음과 기도의 모습은 사람의 생김이 저마다이듯 나름의 모양을 갖춥니다. 무엇이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단이자 사이비들입니다.


세상의 가장 미천한 사람들에게 모습을 내 보이며 자신의 죽음으로 세상 구원의 신비를 완성하는 예수의 생애가 시작되는 축일입니다. 누구는 구중궁궐 같은 요새에 숨어 서로의 갈등과 폭력을 방패 삼아 자신의 알량한 잇권과 권력을 지키려는 세상이 힘겹습니다. 그 괴물을 추종하는 자들이 예수와 십자가를 앞세우지만, 개신교 교단이나 대형교회 사목자 누구도 꾸짖음이 없습니다. 천주교 시국선언언에서 인용한 창세기의 말씀으로 대신 꾸짖어 봅니다. 선악과를 베어 물고 숨어든 아담에게 하느님은 묻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

영화 <네 번째 동방박사의 비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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