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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면 두렵지 않아

기도가 필요한 때

by 박 스테파노
좋은 면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게 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 시점에서 다시 생각하면 되니까.

- 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재습격」 중 -


초등학교4학년 때부터 성당에서 복사를 했었습니다.

사제의 곁에서 미사 시중을 드는 그 자리를 위해 두서너 달 매일 새벽미사를 드리고 출석을 수녀님께 확인받아야 했지요.


그때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발목까지 덮은 석촌호수 옆길을 따라

성당으로 이십여 분을 걸어가던 길.

그 길에서 '기도'를 알았습니다.

깜깜하고 무섭고 드세게 추운 길 위에서

유일하고 강력한 위안이 되는 것.


기도.


주머니 안에 묵주를 돌리고

때로는 손가락 꼽아가며 되뇌었던

로사리오기도 안에 내 모든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고2 때까지 큰 미사 향잡이를 하고

고3 때 잠시 사제의 길을 고민했던 신심 가득한 청소년기를 선물로 받았었지요.


그때 배운 '기도'는 아직 유효합니다.

어두운 골방 생사를 가늠하기 어려울 때도

모두가 나를 떠나갈 때도

가슴 찢어지는 상실이 있을 때도

결국 기도만이 유효하였습니다.


잠시 잊었던 기도,

어느 해 머물던 창밖으로 교회 십자가 첨탑을 보며 떠올렸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한 하루하루였고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이지요..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란 두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오늘 여기에는

그 두려운 미래를 만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항상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소중한 오늘은

두려운 미래를 항상 밀어 내기 때문입니다.


아직 두려움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여쁜_아내와_나누는_간만의_아침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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