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재미있고 쉬운 글이다
20여 년을 '경쟁'과 함께 살아왔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무엇이 인생의 목표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상도 그 경쟁의식에 늘 물들어 있었다. "못한다"가 용납이 안 되는 세계에서 "모른다"는 직무유기이고 근태 빵점의 조직원이 되고 말았다. 그런 날들의 일요일 저녁은 숨이 턱 막히는 시간들이었다. 그때 잠깐 눈을 감고 늘 "남들과 경쟁 안 하고 이겨내지 않아도 그냥 살아 내는" 꿈을 꾸었다.
싸워서 이기지 않아도 살만한 날들을 위해 역설적으로 매일 누군가를 밀어내어야 했다. 어느 정도 그런 임계에 왔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예상치 못한 배신과 능멸은 그 세상마저 부럽게 만들었다. 지금 유일하게 긴 시간 노동이 가능한 것은 머리와 손가락뿐인데, 세상의 '글값은 똥값'일뿐이었다. 다양화되고 솔직해지는 시대가 '다정함'도 가치를 인정받는 진화심리학을 던져 주었다. 그럼에도 다정하고 친절한 글은 돈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먹고살만한 정도의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은 고등학교 1학년 말의 문과, 이과를 선택하는 고민 다음으로 좀처럼 답을 내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자기 코딱지도 못 파내는 주제에 여기저기에 '있는 체' 하며, 글을 이렇게 저렇게 쓰라고 늘어놓은 말들을 만났다. 아마 그때 '에디터픽' 같은 것을 자주 받으며 우쭐대던 시기였던 것 같다. 오십이 넘어서도 이 작은 경쟁에서 이겨낸 으쓱댐. 그 이상의 의미 있는 해석은 필요 없다.
문장이 짧아야 한다, 아니 풍성해야 한다, 줄이고 줄여야 한다, 문단을 잘 나누어 쓰고, 첫 문장을 엣지있고 힙하게 써라 등. 주변에서 많이들 하는 팁이죠. 언론인 출신들이 유난히 "문장 길이"를 강조하고, 베스트셀러 편집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임팩"을 주문합니다. 만약에 "비즈니스 문서 잘 쓰기"라고 물어보시면, 저도 팁과 조언을 공식처럼 드릴지도 모릅니다. 글쓰기에서 무엇이 중요할까요?
-어느 플랫폼에서 으스대던 본문 중-
광고 카피라이터를 하다가 전업 글쟁이가 된 편성준 작가의 글을 올해 들어 찾아 읽는다. 성실한 작가는 매일 페이스북에 가슴 따끔하지만 다정한 글들을 내어 놓는다. 그 자체가 묵상이 되고 성찰이 되는데, 글들의 무게는 무겁지가 않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라는 그의 저서가 말해 주듯, 글은 혼자 무게잡거나 홀로 잘 나버리면 "잘 썼다"라는 존중을 받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글 쓰기는 '읽는 사람'의 공감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편 작가가 소개한 할리우드 스토리 컨설턴트 리사 크론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라는 책에서 '좋은 스토리는 무엇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완벽한 원고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다만 이전 원고보다 조금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노력"
생각이 많은 주말 저녁 모처럼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일종의 안심이라고 할까.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았다는 작은 반증은 아닐까 싶을 때 빠르게 인정하고 방향을 고쳐 잡는 것이다. 나는 최근까지 '분노'로 글을 써대었다. 글쓰기 플랫폼 얼룩소 초대 대표였던 선배는 연말연시 덕담으로 "글로 분노를 치유하는 날"을 기원하여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분노를 토해 내는 글'이 치유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 좌절과 낙담을 이 나이에도 거듭하다 보니 그런 글을 써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을 쓰기로 했다. 영화 이야기, 음악 이야기, 그리고 알려 주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차분히 앉아서 손가락으로 열심히 적어 대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싶다. 어제보다 나은 글을 쓴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어제보다 더 차분하고 평화롭게 적어 내리는 일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응원하기의 금전 보상과 좋아요 공감의 보상이 아닌 더 큰 소득을 만나게 된다. 바로 '어제 보다 조금 더 나은 나 자신'이 그것이다. 화를 내면서 글을 쓴다던지, 누군가와 무언가와 비교하여 질투로 적어 내는 활자는 좋은 글이 될 수 없거니와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좋은 글이란 좋은 사람이 쓰는 글일지도 모른다.
이전보다 타인의 글을 많이 읽게 되었다. 편성준 작가도 중시하는 개념인 'UX 라이팅'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읽어 주는 사용자가 내 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Use eXperiece'라는 사용자 경험은 모바일 퍼스트 환경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사용자 경험 분석을 통해 모바일앱들의 각종 버튼, 텍스트 구획, 페이지 구성 등을 최적화하는 것은 일반화된 필수 기능이 되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UX 라이팅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모바일 기능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업, 공공, 조직이 대하는 엔드-유저의 모든 목소리의 총합을 이야기한다. 이때 글쓰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누구의 시선에서 입장에서 이야기를 쓰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이 된다. 읽는 사람의 입장, 구성,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폼내고 드러내려는 욕심만 가득한 글은 일단 재미가 없다.
리사 크론도 "아무리 좋은 내용도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석학들의 따옴표에 현란한 그래프, 그리고 시대의 트렌드를 담은 이슈를 담은들 사용자들의 눈에 담기지 않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회식자리에서 사장님의 일장 연설이 금과옥조 같은 이야기인들 직원들의 귀에 담기기엔 어렵지 않은가.
최근 글친구들의 하소연들에 '글의 수준'에 대한 얘기들이 제법 되었다. 메인에 노출되는 작가들의 글들과 비교하여 너무 어설픈 자신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인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글을 품평할 자격도 안되고 경쟁 부문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기에 글의 수준을 깊게 생각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들은 선정된 글들의 상당수가 '좋은 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활자로 평가를 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 글들의 오리지널티를 확인하는 노하우가 나름 있다. 사실 더 잘 쓰려는 욕심에 자신이 완벽히 체득하지 못한 단어와 문장들은 쉽게 눈에 띈다. 조급함에 서사의 구조는 무너지고, 논리 구조는 널을 뛰며, 단어의 선정이 갑자기 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글들은 읽어 내리기가 참 어렵다.
좋은 글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글감의 특이성이나 저자의 명찰이 담보해 주지 않는다. 너무나도 쉽게 글을 추천하며 '의미'를 이야기하지만, 그 의미 이전에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미도 읽어내기 어렵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리 자신에게 의미가 있다고 사용자에게 모두 유의미하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의제의 설정과 정리가 그래서 참 중요한 것이다. 에디터의 역량은 이런 큐레이션의 능력이 척도가 된다. 디지털 글시장의 '변별'은 여기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그리고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쉬워야 한다. 쉽다는 기준이 여러 가지이겠지만, 허세의 수식어들만 줄여도 글은 쓰기도 읽기도 쉬어진다. 일전의 '심심한 사과'의 논란만 보더라도 알겠지만, 쉽고 어려운 표현은 문해력이나 독해력이 아니라 작문 능력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일상에서 한 번도 쓰지 않는 단어들을 문장 사이에 끼어 넣는다고 갑자기 자신이 가진 학식과 견문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UX 라이팅의 측면에서도 '재미'와 '쉬움'은 중요한 덕목이 된다. 큰 그림과 거대한 것을 제시하는 담론보다 디지털 시대의 좋은 글은 더 정교하고 섬세해야 한다. 논거나 사례, 혹은 경험의 제시 없이 교과서에나 나오는 개념을 나열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후속 행동을 유발하지 않는다. 이미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과 반응을 유도하고, 상호작용하는 글이 값진 글이 되는 세상이다. "나는 당신들과 달라"라는 생각은 교만이 아니다. 착각일 뿐이고, 그 착각엔 늘 노잼이라는 현실의 반응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