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이란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
일단 '좋은 글'을 어떻게 정의할지부터가 어렵다. 늘 쓰면서 문뜩문뜩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문장이 짧아야 한다, 아니 풍성해야 한다, 줄이고 줄여야 한다, 문단을 잘 나누어 쓰고, 첫 문장을 엣지있고 힙하게 써라 등. 주변에서 많이들 하는 조언이다. 언론인 출신들이 유난히 '문장 길이'를 강조하고, 베스트셀러 편집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임팩트-와우 포인트'를 주문한다. 만약에 '비즈니스 문서 잘 쓰기'라고 물어보면, 나도 팁과 조언을 공식처럼 내어 놓을지도 모른다. 과연 글쓰기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돈다면 기본으로 돌아가서, "왜 쓸까?"부터 살펴보면 좋겠다. 누구나 나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경우를 생각해 보고 부끄럽지만 이야기 꺼내 본다.
모친의 전언과 기록에 따르면 나는 만 4살 때 글을 썼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따라 그린 것'이지만, 문자를 종이에 그렸으니 글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부친은 조부의 사업 부도로 졸지에 9남매 형제들과 아내와 두 형제를 거두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중동파견 건설 근로자'였다. 다행히 사무직이긴 해도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기 전의 문화와 환경이 다른 곳에서의 10년 간의 근무는 상상도 어려웠다. 그런 부친에게 유일하다시피 한 행복은 당시 인편으로 오는 가족들의 편지였다고 회상하곤 했다.
그래서 ,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글을 그려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친이 큼직하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몇 자 적어 주면, 그대로 따라 그리는... 그렇게 그리다시피 한 편지가 '첫 글쓰기'가 되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고된 아버지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그리움으로 시작되었다. 그 그리움이 조기교육이 되었는지 글쓰기가 어느새 일상이 된 날들을 채우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런저런 글쓰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초심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어느새 글쓰기가 '인정받기'위한 수단이 되어 있었다. 세상이 읽어 주는 나의 문장, 타인이 평가하는 나의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렇게 되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글이 후져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알지도 못했던 현학적 표현이 늘어나고, 문장의 길이가 신경 쓰이고, 서술어를 단정적으로 쓰다가 추론으로 고치기도 하고, 비판에 글을 내려 버리기도 했다.
수 년전 개인사로 크게 넘어지고 나서, 힘든 날에서도 유일한 버팀이 되었던 글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글은 결국 '나의 생각'이고, '나의 말'이었다. 생각과 말은 아날로그라 발생 즉시 날아가는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이니, 그것들을 단편이라도 붙잡아 놓는 것이 나의 글이었다. 글은 이 처럼 '나의 생각'을 담아 두고 날라 주는 보석 상자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럼 '좋은 생각'이란 무얼까?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좋은 생각은 "고유한 나만의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남다른 것일 수도 있고, 독특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나만의 것'이면 고유한 것이 되지 않는가? 봉준호 감독이 인용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만의 생각을 나만의 글로 써 내릴 수 있을까? 사실 이 부분에선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나의 말투'로 쓰려고 노력한다. '말투'는 상황과 장소, 목적에 따라 바뀌어야 하듯이, 글도 목적과 글감, 독자에 따라 문체가 형성되니까. 그러다 보니 글도 변하게 되었다. 지금보다 젊을 땐 강하고 간결하게, 조금 나이 든 요즘엔 부드럽고 자세하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연습 방법으로 두 가지를 해 보았다.
1. 써 놓은 글을 경우에 맞는 "나의 말투"로 여러 번 소리 나게 읽어, 퇴고하기
2. 말하고 싶은 생각을 녹음하고 받아 적은 후 가다듬기
그저 개인적인 생각과 연습 방법을 적어 보았다. 주로 '문체'에 대한 고민이다. 그런데 고민이 한 편에는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겠지만, 이 지점은 식견, 지식, 견해, 경험의 영역이라 보다 광범위한 노력이 필요하기 마런이다. 우선 간단한 습관 만들기를 추천한다.
1) 메모의 습관화 (화장실이건 침대 위에서도)
2) 리뷰를 줄거리ㆍ내용 요약 위주로 작성하기 (느낌 빼고)
3) 그리고 많이 읽기 (특히 고전)
노트북을 열었다 닫았다. 늘 글쓰기는 어렵다.
가장 '솔직한 글'이 지나고 보니 가장 '좋은 글'로 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