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로운 Feb 08. 2024

지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아놓기

2월 7일의 일상기록

안보던 축구를 본다고 늦게 잤지만,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무슨 재미있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고 일단 무거운 몸을 일으켜 준비를 한다. 대충 씻고 나와서 대충 안 추울법한 옷을 골라입는다. 내일은 휴가를 썼으니 오늘까지만 입을 옷을 고민하면 된다. 두툼한 기모 스타킹에 두꺼운 니트치마와 하얀 스웨터를 골라입었다. 요즘 옷 안에 핫팩을 붙인다. 하루종일 뜨끈하다. 뭔가 내 안에 믿음직스러운 무언가를 품고다니는 기분.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빨리 준비한다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출발하진 못했다. 


6호선 지하철을 탄다. 짝꿍이 타는 곳까지 데려다준다. 우린 다른 곳에서 지하철을 탄다. 도착지는 같은데 말이지. 8시 20분의 지하철은 만원이다. 다들 어디서 오는걸까. 다행히 몇 정거장 가지 않아 우르르 내리기 때문에 6호선을 쭉 타고 가면 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매일 고민한다. 아, 이시간을 위해 책을 가지고 올까 말까. 짧은 그 구간에 책을 꽤 많이 읽을 수 있다. 다만 가방이 생기기 때문에 9호선 지옥철에 몸을 밀어 넣어야 하는 퇴근 시간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오늘은 퇴근할 때 노트북을 가지고 올 예정이니, 책은 가지고 가지 말자 생각한다. 출근하는 동안 유튜브를 듣는다. 부자되는 방법, 부동산 이야기를 처음 들을 때에는 모든 이야기에 귀가 번쩍 띄였는데, 지금은 이 영상을 봐도 저 영상을 봐도 결국 핵심은 같은 이야기다. 더 많이 벌고, 훨씬 적게 쓰고, 악착같이 모을 것.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발로 뛰면서 보고 느끼며 배울 것. 직접 공부할 것. 휘둘리지 말고 내 기준을 세울 것. 


내리기 한 정거장 전 쯤 경제 유튜브를 끄고 아이유 노래를 듣는다.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어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리면 바로 회사앞이다. 이건 참 좋다. 이것도 복이다. 나는 매일 버스에서 내릴때마다 생각한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회사라는 곳은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는 곳, 이라기보다는 폭탄이 내손에서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남에게 최선을 다해 넘기는 행위를 하는 곳 같다. 저 폭탄이 터져도 "나는 최선을 다해 막았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누가 더 많이 스레드를 남기는가? 대회의 장이 열렸다. 결국 퇴근 직전 폭탄이 터졌다. 모두가 예상한 폭탄이었다. 그럼에도 다들 내 손에서 터지지는 않기를, 나때문에 터졌다는 말을 듣지는 않기를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것 같았다. 나역시도 그 중 하나였고, 다행히 내 손에서 터지지 않음에 감사해야 하는 것 같다. 남의 손에서 터졌기 때문에 내 구정 연휴는 평화를 찾았다. 하마터면 내일 쓴 연차도 날아갈 뻔한 순간이다. 


점심은 건너편에 위치한 쌀국수를 먹었다. 매운 쌀국수, 고기가 진짜 많이 들어서 마음에 드는 곳. 예전 회사 동료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하는 일이 힘들지만 즐겁다는 그 분의 얼굴에는 뭔지 모를 여유가 흐른다. 좋은 집이 있어서 그럴까? 나는 잠시 생각한다. 아니,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저런 느낌이다. 나도 그걸 느꼈던 적이 있었지. 그걸 못잊어 이렇게 남아있지. 그 맛이 어찌나 달콤했던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사회 초년생의 객기였을까? 꿈이었나? 내 착각이었나? 지금은 사실 분간이 되지 않는다. 


총총 퇴근을 했다. 내일은 드디어 동생과 살던 집을 완전히 정리하는 날. 내일 아침 일찍 집에 가서 남은 쓰레기를 버리고, 대형폐기물을 신고하고 버리고, 관리사무소에 가서 정산을 마칠 예정이다. 그러고 나면 보증금을 엄마에게 돌려줄 예정이다. 그렇게 나는 완벽하게 부모님에게서 독립한다. 내가 꿈꾸던 것이, 아주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들을 지나고 지나 이렇게 실현되었다. 내가 미래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온실속에 앉아있을 때보다 훨씬 힘들겠지만, 나는 하나씩 이뤄내고 그 모든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감과 뿌듯함을 온몸으로 만끽할 것이다. 


오늘 저녁은 가볍게 닭가슴살을 해동해서 구웠다. 닭가슴살을 굽고 있으니 짝꿍이 돌아왔다. 네가 없이 지내는 조금의 순간이 나에게는 단물빠진 껌같이 느껴진다. 작은 것을 해도 즐겁다. 그냥 즐겁다. 뭐든 해낼 수 있을것 같이 기쁘다. 책읽고 공부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지만 나는 솔로를 보며 지겨운 하루를 잊는다. 


그래도 운동은 어쩜 이렇게 가기가 싫은걸까?

끙끙거리는 나를 짝꿍이 짊어지고 헬스장에 도착한다. 문앞까지 갔으니 열심히 걷고 오른다. 또 이러고 나면 뿌듯한 하루. 


지나가는 생각들을 잡아놓기 위해 일상 글을 써보기로 한다. 오늘의 마음이 잊혀지지 않게 써보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는 어느 날을 위해 써보고. 






매거진의 이전글 청국장 만원, 새우젓 만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